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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1 |꽃처럼 무거운 마음-2014년 봄 |김중일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1


꽃처럼 무거운 마음
ㅡ2014년 봄
김중일


꿈속에서 밝혀놓은 촛불이 다 타 버리자 해가 떴다 기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떨어진 달처럼 무거운 마음 내가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마음이 내 정수리 위에 비행접시처럼 떠 있다 그 그림자는 잠시 지구를 덮고 내 정수리 속으로 서서히 내려앉는다, 가라앉는다 나의 뇌수를 고요히 헤집자 온갖 기억이 새떼처럼 날아오른다 나의 코끝을 스치자 물양동이 같은 내 얼굴 속에 그득했던 눈물이 출렁이며 넘친다 내 목구멍을 꺽꺽 긁으며 내려가다가 멀미처럼 울컥 솟구치는 마음 다시 내 기도를 막으며 가라앉는 마음 지구 반대편 하늘까지 뻥 뚫린 우물 속에 물양동이처럼 던져진 마음 내 무릎을 꺾고 내 발등을 찧는 돌처럼 무거운 마음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연루됐을 때 온몸이 다 녹아 줄줄 흘러내리고 있을 때 깊은 밤이 뻗은 힘센 팔이 나를 포옹하듯 꿈속으로 잠깐 끌어당기고, 꿈속에서야 나는 겨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고 꿈밖에선 어떤 말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눈코입귀 흔들리는 꽃잎처럼 떨어지는 마음 꽃잎 없는 꽃처럼 무거운 마음 마음이 걷다가 빠진다는 구름의 크레바스 틈새로 후드득 꽃잎처럼 빨려드는 마음 돌처럼 무거운 질량의 마음 하늘까지 뚝 떨어진 마음 내 발목에 매달려 걸을 때마다 모래 위로 끌리는 마음 날 매달고 바다 속에 산 채로 던져진 마음

온몸이 통째로 마음이 되던 날
찬바람이 붙여놓고 간 촛불로도 밝힐 수 없는 몸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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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봄입니다. 여기저기 반가운 꽃소식 들려오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왜 시인의 전언처럼 ‘꽃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중력에 관한 이야기. 겨울을 뒤로하고 피어나는 꽃 잎 한 장의 무게를 떠올려 봅니다.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마음이 무겁다, 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을까요. 세월이 가는 동안, 세월이 더디 가는 동안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떨어진 달”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돌처럼 무거운 질량의 마음 하늘까지 뚝 떨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해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외면하는 자와 외면에 대해 침묵하는 자 모두 “바다 속에 산 채로 던져”지는 형벌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진상(眞相), ‘참된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온몸이 통째로 마음”인 투명한 꽃잎처럼, 한 줌 용기들을 모아 기억 투쟁!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