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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9 |겨울 편지 |안도현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9


겨울 편지

안도현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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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부터 겨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펼쳐보니 푸른 댓잎과 흰 눈의 풍경이 그려져 있네요. 펑펑 눈 내리는 사이 ‘나’는 무엇을 했을까요. 술을 마셨답니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담백하기 그지없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거기와 여기라는 말 사이에는 허공만이 자리하겠지요. 그 허공이 겨울 편지의 지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눈을 감고,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는 “구이(九耳) 들판을 상상해 봅니다. 청둥오리와 족제비와 바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고요한 술잔을 마주하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청둥오리와 족제비의 족적이 선명할수록, “바람의 발자국”은 희미해 동선을 그려볼 뿐이지요. 그대에게 무심한 듯, 조곤조곤 읽어주고 싶은 겨울 편지 한 장.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