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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2 |칠 조심 5|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2

칠 조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칠 조심”―
내 마음이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내 기억은 종아리와 뺨과
팔과, 입술과, 눈에 온통 얼룩져 버렸다.

내가 너를
그 모든 성공과 실패보다 더 사랑한 것은
너와 함께 있으면
누르스름한 흰 빛이 하얗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 어둠 또한
친구야, 맹세하건대, 어떻게든 하얗게 될 거야,
헛소리보다 전등갓보다도
이마에 감은 흰 붕대보다도 더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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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지만 수선스러운 마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조심하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걸까요. 오늘의 시는 “칠 조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사뭇 결연하기만 합니다. 종종 아니 수시로 우리가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사이, 기억은 온 몸에 흔적과 얼룩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사회적 기억 또한 같은 이치로 작동하는 것이겠지요. 시적 주체가 ‘너’라고 지칭하는 그 무엇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너’와 함께 하는 동안 밝음을 잃은 빛이 하얗게 되기 때문이지요. 문득 친구를 호명하며 용기어린 전언이 이어집니다. 이토록 짙은 세상의 어둠도, 결국엔 하얗게 되리라는 믿음을 맹세하기 위해서 이지요. 시인의 고요한 부르짖음에도, 세상은 마치 믿음이나 맹세라는 단어를 잊은 듯 입에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에 흰 붕대를 감아주는 손길로 마음으로 함께.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