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24
좋은 일들
심보선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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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계절. 좋은 일 없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절. 우리는 질문하지요.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무엇일까. 시 속의 좋은 일은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입니다. 과연 한 존재의 “후생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한 걸까요. 문득 떠올리게 되는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거나,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을 보였던 순간. 방법으로서의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살아가는 나날.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이 되거나,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에 빠지곤 합니다. 시간은 투명한 빛과 함께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이겠지요. 또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요. 그때 우리가 나누게 될 ‘안녕’이라는 안부.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