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8 (일)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9 |가두의 시 |송경동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9

가두의 시

송경동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 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 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 먹는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
시인에게 ‘거리’는 어떤 공간일까요.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에 관한 물음이 맞겠습니다. 이 시에 ‘거리의 사상’이라는 관점을 성급히 입히는 것보다, 우리가 꿈꾸는 행간은 ‘삶’ 자체이겠지요. 선거가 끝났습니다. ‘정치’와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나날인데요. ‘국가’라는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도 묻게 되지요. 사상가 크로포트킨은 인류의 사상사를 시계추의 진동에 비유합니다. 수면(睡眠)의 시기 이후 각성의 계기가 도래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그는 ‘비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비판’만이 생각하는 사회와 차원 높은 도덕의 시작을 알리는 참된 징후라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가하면 대안 없는 비판은 하지 말라, 이 문장에는 비판 자체를 봉쇄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사실 꼭 날선 비판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구둣방의 사내의 “손톱 밑 검은 시(詩)”, 미싱사 가족이 전하는 “눈물의 시”, 노숙인들의 긴 행렬이 보여주는 “직립의 시”, 저물녘 상인이 외치는 “절규의 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시들이 곧 ‘사랑’이라니, 오직 구성원들의 '사랑'만이 해답이라는 시인의 결론.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