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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교육

“부끄럽지 않은 교사로 영원히 기억되길…”

평교사로 교직생활 마무리 “자랑스럽다”
제자만 4000여명…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

   
 
때론 개인의 역사가 곧 지역의 역사를 대변할 수도 있다. 영원히 용인의 교육자일 것만 같은 강창희 교육감을 만났을때 스치는 생각이다. 용인신문 자매지인 월간 ‘The Good People’ 7월호에 실렸던 용인의 뿌리를 찾아서 | 경기도교육위원 강창희편을 독자들의 요구로 용인신문에 발췌 게재한다. <편집자주>

#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내 첫 번째 제자들이 환갑을 넘겼지. 허허. 그 어렵던 시절에 힘들게 공부했던 애들인데 지금은 다 교장도 되고 국장도 되고 사장도 되고... 얼마나 기쁘고 보람된지 몰라. 선생이란 월급 받으려고 다니는 직장인과는 달라. 제자들 잘 가르쳐 잘되는 것 보는 것 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어. 선생은 그저 제자들 잘 가르치겠다는 생각만 하면 돼.”

4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선생으로만 살아온 강창희 경기도 교육위원.

용인에서 태어나 용인초등학교와 태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사상계사에서 기자로 근무하던 중 대장암에 걸려 다시 용인으로 귀향, 태성중·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 때가 1960년이다.

“내가 용인에서만 살다보니 아직까지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이 주변에 많이들 살아. 개네들에게 난 영원히 선생이야. 내 가끔 50이 넘은 제자들에게 ‘술 좀 그만 먹어라’ ‘일찍 들어가라’는 둥 잔소리를 하거든. 그러면서 내가 그러지 “나이가 그만큼 먹었는데 욕해서 미안하다” 그럼 그 놈들이 “선생님이 저희 걱정하시는 맘에 잘되라고 그러시는거죠”하고 웃어. 나이가 환갑이어도 난 선생이고 그 녀석들은 제자더라고. 같이 늙어가는 마당에 말이야. 허허.”

# 평교사로 퇴직한 게 가장 잘한 일
“1960년부터 87년까지 27년간 태성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었어.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만 있다 나온 셈이지. 절대 후회는 안해. 오히려 자랑스럽지”

용인을 대표하는 교육자인 강창희 선생이 평교사로 퇴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당연히 교장을 지내고 퇴직하시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1995년 강창희 선생은 경기도 교육위원이 됐다. 그리고 97년부터 98년까지 초선위원임에도 불구하고 부의장에 선출됐고 이후 2000년부터 경기도 교육위원회 의장으로 2년간 역임했다. 지난해 제4대 도 교육위원으로 재선출된 강 선생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2010년 8월이면 교육위원으로서 임기를 마무리 짓고 조용히 생활할 계획이라는 강창희 선생은 “이제는 양심·정직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해. 용인에서는 태성하고 용동중학교가 무감독 시험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무감독 시험은 아이들의 양심을 믿는다는 말이잖아. 즉 기본예의와 인성교육에 선생들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말이야. 양정여자고등학교가 50년째 무감독 시험제도를 실천하고 있는데 그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정숙하고 예의바른지 몰라. 교문에 들어서기 전에 스스로 옷 매무시를 단정히 가다듬고 들어간다니까. 학교 분위기부터가 틀린거야. 결국 인성이 바탕이 된 교육이 필요하단 말이야.”

얼마남지 않은 교육자로서의 길을 마무리 하는 강 선생이 후배 교사들과 제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 스승다운 스승, 부모다운 부모

지긋지긋하게 가난하던 시절 똑똑한 제자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는게 가장 안타까왔다는 강 선생은 “머리는 있는데 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하는 애들이나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제자들에게 공무원을 하라고 권유했다”며 “그때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던 제자들이 지금은 서기관도 되고 국장도 되고, 사무관도 됐다”며 흐뭇해한다.

“제자 중에 지금 용인시청에만 서기관을 포함해 국장, 과장이 25명이야. 이만우 국장이나 이용만 의회사무국장 등 모두 내 제자들이지. 경기도청에도 국장이 여럿 돼. 내가 애들을 가르치던 시절 용인바닥에 넥타이를 맨 놈이 몇이나 있었어. 이제 다들 자리잡고 자기 위치에서 잘 살고있는 모습을 보니 그게 가장 뿌듯하지.”

강창희 선생은 최근들어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가끔 제자들이 ‘한글도 읽고 쓰지 못하면 먹고 살수가 없다’며 눈물 흘리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해. 그 때 선생님의 가르침과 회초리가 아니였으면 지금 자신들이 있었겠느냐고 말이야. 아마 요새 부모들은 ‘폭력 교사’라고 할꺼야. 허허. 그런데 선생은 좋은 말만 하는게 선생이 아냐. 대충 일하고 월급만 받는 교사는 절대 되면 안돼. 제자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체벌도 해야 해. 그게 스승인거야.”

평생을 교사로 살아온 강창희 선생이 후배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스승다운 스승, 부모다운 부모가 되라는 말이다.

#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고 싶다

자율성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능력을 믿어준 선생님. 집안일을 도와야 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학생을 위해 쉬는 날 없이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 월급을 받지 못해 몇몇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간신히 생활을 해야 했지만 제자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선생님. 스스로 깨어있는 스승이 되고자 늘 연구하고 공부하던 선생님.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에 대한 제자들의 애정이 남 다르다 보니 그에게 결혼식 주례는 끊이질 않는다.

“얼마전에는 내가 주례를 서줬던 제자의 아들이 결혼한다고 또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을 하지 뭐야. 허허. 아버지와 아들 주례를 다 하게 됐다니까.”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마다 ‘인생을 잘 살았구나’라는 보람도 있지만 ‘내가 그만큼 나이가 많이 먹었구나’라고 느껴져 부끄럽기도 하는 그.

“지금은 어디를 가도 제자들이 많으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지정환 교육장이 지금 내가 교육위원이라로 ‘위원님’하겠어. ‘선생님’하지. 난 평생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야.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아마 교육자로서 인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될려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잘 됐는지 안됐는지는 역사가 평가해주겠지…. 가끔 혹시 제자들 기억속에 내가 나쁜 선생님으로 남아있을까 걱정될 때가 있어. 혹시 나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가진 제자 만난 적 있어? 그럼 꼭 좀 알려줘.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