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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교육

“틀에 박힌 교육은 가라” 열린 마인드 교육

자유를 찾은 아이들…개성 존중의 ‘물꼬’
명사들의 진솔한 ‘특강’…동기부여 제격

# 대학총장이 고등학교 교장으로

“기존의 틀에 박힌 교육에 거부감을 느껴 탈출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오는 것이지요. 이 학생들은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자유를 찾은 아이들이에요. 나는 이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해 두발도 자유롭게 허락해주고 있어요. 머리 하나로 전학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이에요.”

지난 2005년 대학 총장을 지낸 분이 고등학교 교장이 되면서 대학 총장들의 고교 교장의 물꼬를 튼 일이 있다.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 이돈희 전 교육부장관, 송자 전 연세대 총장 등 줄줄이 고교 교장으로 몸을 낮출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주인공은 다름아닌 전 수원대 총장이었던 이달순 수원 계명고등학교 교장(수원대학교 명예교수 · 정치학박사).

그는 화제를 불러 모으며 고교 교장이 된 이후에도 독특한 학교 운영을 통해 끊임없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켜왔다.

교육 마인드가 너무 신선해 감동과 감탄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
이 교장이 맡고 있는 계명고등학교는 정규 고등학교가 아닌, 고등학교 학력 인정 평생교육시설이다. 1975년 안양에서 ‘평촌재건학교’란 이름으로 등록된 학교로 정규 고교 입시 탈락자나 중퇴자들이 온다.

또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도 이 학교의 학생들이다. 만학도는 방학 없이 2년만에 졸업하는 2년제로 운영한다. 대부분 직장인이나 가정주부 등이 많기 때문에 1교시를 10시에 시작하는 배려를 해 준다. 야간반도 운영한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 오는 성인 학생들은 열의가 대단하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공부해 4년제 진학률이 높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교장을 주목하는 것은 만학도 때문이 아니다. 이 학교 보통 또래의 고등학생 아이들에 대한 이 교장의 사랑과 열정 때문이다.

이 교장은 여기 학생들을 ‘정식 교육에서 못 견뎌 온 아이들’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이런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껴안아 용기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 바쁘다.
“여기 오는 아이들은 공부가 싫은 아이들이에요. 공부가 싫은 아이들에게 공부는 고문이에요. 대신 이 아이들에게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요. 나는 그 재주를 살려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전문직만 있느냐며 모든 학생들을 대학 입시로 내모는 교육의 모순을 비판하는 이 교장은 교육 제도의 개선과 열린 교육 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아이들이 우선 학교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을 개설했다.

# 명사들의 흥미진진한 특강

“학교 공부가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아이들이니 아이들에게 공부 자체가 재미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바꿔주는 우리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계발활동교육’과 ‘동아리 교육’이라는 재밌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을 신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계명고 개발활동교육은 이 교장이 평생 맺어온 인연들을 모두 불러모아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고안해 낸 프로그램.40년간 중앙대, 수원대에서 정치학 교수를 지낸 것은 물론 대한체육회 이사, 대학농구연맹 회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등 정치학계 스포츠계의 폭넓은 사회활동을 통해 쌓아온 인맥을 동원해 200여명의 계명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는 한명씩 초청 강연을 하게 하는 것이다.

벌써 이수성 전 총리부터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 허재 KCC 농구감독, 김용서 수원시장, 원유철 경기부지사 등 많은 인물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그런데 특강에는 고리타분한 교훈적 이야기는 금물이라는 원칙이 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이야기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주고,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도 그대로 들려줘 아이들 모두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심어줘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 문화예술인은 물론 조용필, 허준호 등 인기 연예인, 골프, 축구 등 스포츠 스타, 미용, 간호, 포장, 요리, 미술, 웅변 등 각계 각 분야의 초 호화 전문가들이 강사진에 포진돼 있다.주목을 끄는 프로그램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배낭여행 동아리처럼 아이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동아리로 만들어 주면서 아이들의 끼와 재능을 살려주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대학을 가든 취업을 하든 배낭여행의 시기가 분명 왔거든요. 각 국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회화를 가르치고, 볼거리, 먹을거리, 배낭여행 상식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줘요. 애들이 재미있어 해요.”

이교장의 이 같은 노력 결과 아이들에게 놀라운 결과가 생겨나고 있다. 뭔가 희망을 가지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부를 억지로 시켜서는 안되요. 재미있게 해주니 아이들이 발동이 걸려 공부를 무섭게 하기 시작했어요.”

훌륭한 명사 특강 등 동기 부여를 해주니 아이들이 달라졌다는 이 교장. 이제 이 아이들 사이에 경쟁심이 생겼다.

# 100% 출석률, 난리가 났다

“애들을 맡겨놓은 엄마들은 학교만 재미있게 다니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제 대학 진학률이 100%에요. 대학을 가겠다는 아이 50%, 취업을 하겠다는 아이 50% 정도인데 대학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은 전원 진학합니다.”

계명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 가는 아이도 직업 라이센스를 딴다. 한자, 펜글씨, 워드프로세스는 기본이고 별도의 직업 라이센스를 따서 졸업장과 함께 2개 이상의 소위 ‘증’을 가지고 졸업한다. 정규 고교 아이들보다 훨씬 난 듯 보인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이 학교에 자신의 아이들을 보내기를 꺼려했었다. 그러나 이 교장이 취임한 이래 학생이 불어나고, 100% 출석에 난리가 났다.

그게 두발 자유 때문이겠는가. 이 교장의 열린 마인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었고, 부모들의 마음까지 활짝 열었다.

3년제 보통 아이들이 470명, 2년제 만학도반이 140명, 전교생은 총 600여명이다.계명고등학교는 입학식 날 숫자를 채워 식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교장이 부임한 이래 입학식장이 꽉 차게 됐다. 중간에 전학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애당초 계명고등학교를 지원해 입학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고교는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취미를 살려주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하잖아요. 다양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죠. 내가 그런 것을 실행하니 아이들에게 소문이 나고 학부모들도 신뢰를 하는 거에요.”

# 아이들과 인간적인 만남

이달순 교장이 이 학교로 오게 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이 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조선일보)인 故 최은희여사의 외아들이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우리나라 여성 기자들의 최고 영예로운 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최은희 여사는 일제 치하의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한 여성 선각자이다.

1963년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강사로 시작해 같은 대학 교수,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수원대학 학장 교수 총장 등 40여년을 대학 강단에서 지낸 원로 정치학자 이 교장은 정년 후 수원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었다.

그런 그에게 교장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나를 교육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교수는 그저 지식의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왔었죠. 그런데다 입시 위주 교육의 망국론을 주장 하던 내가 어떻게 흔쾌히 승낙을 했겠어요. 그런데 계명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교육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학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계명고등학교에 오니 가르칠 맛이 난다는 이 교장. 이 학교에 와서도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는 아이들을 상담을 통해 어떻게든 순화시켜 제자리에 붙들어 둔다. 퇴학이라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문제아로 만드는 것이지 아이들 차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생각이 시원스럽고 명쾌한 이 교장. 그는 청년 나이가 부럽지 않은 열정과 추진력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0넘은 세월이 그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교육의 희망을 본 그에게 이제 틀에 박힌 교육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제도 개선을 실천하려면 장관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교육감이라도 당선되면 뭉쳐진 힘으로 미력하나마 입시위주의 풍토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말 교육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맑은 모습으로 열변을 토하는 이 교장.
“아이들 스스로 이 학교에 왔으니 나는 별것 아니라는 인식을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도 공부하면 세상이 반갑게 봐준다고 느끼도록 해 줄 겁니다. 이런 아이들을 세상 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학교는 참고 또 참고 순화시켜야 합니다.”

아이들과 끊임없이 인간적인 만남을 가지려 노력 하는 이 교장.

이 교장은 계명고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인격과 도리를 가르치면서 인간적인 정을 두텁게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