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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즉 하이 테크는 하이 터치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의 하이테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하이 터치와 조화를 요구한다. 하이 터치란 시와 음악, 가족과 고향, 이웃 같이 우리가 인간임을 축복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종교나 부적 등 기댈 수 있는 것을 강하게 갈구하고, 자기성찰을 강화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하이테크놀러지는 일상의 편리함을 더하지만, 그것이 진화하면 할수록 더 빠른 속도감과 조급함을 느끼게 하며, 거기에 따른 갼활?또한 커지게 된다. 그래서 아름답게 채색된 예전의 기억과 사물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2001년에 개봉하여 한국 영화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친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옛것에 대한 향수가 중요한 키워드다. 80년대의 문화, 패션, 생활상 같은 것들이 친구의 우정을 테마로 화려하게 펼치는 이 영화로 인해 ‘친구찾기 붐’은 더 활발해졌고, 영화 속 패션은 리바이벌하고 있다.
단순한 폭력 액션영화로 그칠 수도 있었지만, <친구>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가 짜준 털옷을 연상케 하는 낡은 느낌의 색색가지 니트 상품(지하철에서 열심히 뜨게질을 하고 있는 여성, 혹은 남성들을 신기한 눈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퀼팅과 십자수. 갑자기 늘어난 손칼국수, 거의 사라졌다 부활한 낙지볶음집, 그리고 드럼통을 사용하는 다양한 구이집들은 넘쳐나는 손님들로 아우성이다.
테크놀러지와 기술의 시대에서는 단지 수단으로만 간주하던 근원적 가치가 다시 신성한 가치로 부활하면서,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역사에 대한,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이 다양한 문화 체험으?연결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시작한 답사여행은 역사 답사에서 자연 답사(우리 꽃, 풀, 나무, 곤충 찾기)로, 또 철도청에서 기획한 ‘5일장 돌아보기’, ‘오지 탐방’, ‘영화 현장 찾아보기’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빨리 먹어 치워버리는 패스트푸드에 반해서 일어난 ‘슬로우푸드(slow food)’운동에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내가 먹는 이 음식은 어떻게 재배한 것인가, 이 음식은 내 몸에 들어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남긴 음식은 자연에 어떤 피해를 줄까, 천천히 먹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먹는다’는 행위에 이와 같은 철학을 담는다면 우리의 자연환경은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전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슬로우푸드 운동 외에 ‘정신, 환경 되찾기 모임’같은 현상들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휴가나 방학을 이용하여 자기안의 나를 찾는 ‘참선 프로그램’이 사찰이나 명상센터를 중심으로 개발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그러하다. 인도 요가들의 고대 건강요법을 근거로 한 바디제품과 향수들의 판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제품을 사용하면 구도자처럼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판매 전략이다.
종교성의 새로운 형태들, 불교의 몰입, 몰아의 여러 방식들, 은둔의 새로운 형태들, 그리고 심리적 이단 집단과 여러 다양한 라이프 서비스 등도 오늘날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자아를 설계하는데 기여하는 가치들, 그리고 육체, 정신, 영혼을 고양시켜주는 상품들이 점점 중요한 의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기능만 업그레이드해서 만족하는 시대는 이미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없다. 훈훈한 정이 담겨 있는, 환경을 돌아 볼 수 있는, 자기를 찾아보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상품 개발이 중요하다.
김미경/동명정보대겸임교수
사진설명
① 영화 <친구> 포스터. 2001년
② 답사여행의 붐을 일으킨 책-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③ 한 땀 한 땀으로 완성하는 니트
④ 슬로우푸드와
⑤ 영화 <집으로> 포스터. 2002년
⑥철도청에서 운행하는 답사여행객들
⑦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고구마와 군밤
⑧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허수아비
⑨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도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