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공적 영역의 판단에 문학적 상상력이 도움이 될까? 이와 같은 도전적인 질문은 오래도록 회자되어오고 있다. 대개 문학에서 그려지는 대상은 개인의 삶에 초집중되어 있다. 그런데도 공적인 영역의 판단에 정의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도서가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이다. 이 책은 공적 영역의 정의에 문학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디킨즈의 소설 『어려운 시절』을 중심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읽기가 “도덕 및 정치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킨즈의 소설이 “과학적 정치경제학과 정치력 상상력에 대한 규범적 시각”을 보여준다고 하며 소설 읽기가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행복에 대한 견해를 독자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라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성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를 제시하며 소설 읽기는 독자에게 분별력을 키우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이러한 분별력은 공적 합리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현실에 필요한 통찰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서의 제목은 일반 독자가 쉽게 범접하기 어려워
용인신문 | 오래전 훌륭한 스승이 말하길 나라의 리더가 바쁘게 움직이는 걸 백성들이 모를 때가 태평성대라 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리더가 부적절한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시민들은 발벗고 나서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는 리더의 그것에 비해 약하기에 상처 입고 넘어지곤 했다. 『그 여름의 왈츠』는 그 시절에 대한 비가이자 ‘민주’라는 이름에 진 빚을 갚는 청소년소설이다. 이 소설은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시민항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주요 인물 연성과 명준이 당시 시위에 관여했던 대학생으로 등장한다. 지식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직접 행동에 나선 이들은 공권력에 의해 처참히 억압당한다. 그래서 가족을 몰래 만나야 하고, 연주자는 손가락이 잘린다. 소설은 이들의 상처를 음악으로 봉합하려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은 이 소설의 또다른 주요인물 은수가 좋아하는 바이올린 선생님 명준과 연주하고 싶은 곡이다. 여러 악기가 앙상블을 이뤄 하나의 음악이 되듯 상처입고 흩어진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위로하는 음악. 87년의 기억은 다시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악몽
용인신문 | 노자는 ‘앎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모름의 상태를 모르는 것은 병(知不知上 不知知病)’이라 했다. 이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앎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삶이 세계와 만날 때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샤를로트 파랑의 그림책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원제:Murielle et le mystère)는 오래도록 회자한 노자의 말을 다시 한번 읊조리게 한다. 주인공 뮈리엘은 숲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달팽이를 주우러 숲에 나가는 뮈리엘. 그런데 어느 순간 낯선 무언가를 발견한다. 모양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점점 당황하는 뮈리엘은 화도 나고 잠도 잘 오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뮈리엘은 곧 태도를 바꿔 그 정체를 탐구한다. 과연 그 정체와 뮈리엘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까? 이 그림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 ‘모름’을 만나는 장면이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어둠 속에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에 뮈리엘 역시 즐거운 표정으로 티타엠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계를 볼 때는 ‘모름’을 탐구의 자세로 대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어린이의 시선은
용인신문 | 600년 된 팽나무가 지키는 포구의 어느 마을. 그곳은 미군기지 용지로 결정되어 철거된 ‘하제’마을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하제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4년이 지나 그 이야기는 『할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무가 하제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팽나무 열매를 먹은 개똥지빠귀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그리고 백년 쯤 지나 그곳에 자리잡은 스님 몽각이 팽나무에게 할매라 불렀다. 할매나무는 누군가의 몸주가 되기도 했다. 할매는 긴 세월, 하제 포구에서 살아낸 어부들과 농민들 곁을 지켰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동학당에 참여한 이들이, 바다와 땅과 사람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씨를 굽어 살폈다. 그간의 황석영 작품이 특정 시기의 굵직한 거기사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썼다면 『할매』는 나무가 살아낸 시간을 짚어간다. 나무가 견딘 시간은 소시민들이 삶을 지켜낸 역사였다. 나무는 사람과 연결되었고, 그 나무를 근간으로 사람들은
용인신문 | “살아간다는 것은,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을 치르는 것이다. 싸움을 걸고 있는 모든 적의 얼굴은 비가시적이다.”(2권, 165쪽)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시작되었다. 말이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듯 『추사』라는 소설 속 김정희도 나아가는 삶 속에 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이면서 서예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설 『추사』는 김정희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조망하며 평생 그가 추구했던 사유들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는 추사의 말년에 초의 스님의 부탁을 받은 현판 글씨에 관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추사는 마음먹은 대로 글씨가 나오지 않자 고민에 빠진다. 다른 한편으로 추사는 생을 돌아보며 그가 사랑했던 가족, 그가 만났던 여러 스승, 그리고 그가 대적해야 했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각각의 만남 속에는 사랑이 있었고, 진취적인 비판의식이 깃들어 있었고, 올곧음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고독하고 고독한 시간이 있었다. 이승에서 마지막 글씨가 될지도 모르는 현판 글씨 ‘판전(板殿)’을 쉽게 써내지 못하는 추사 김정희. 하늘과 땅이 점지한 서예가의 성심이 깃든 그 글은 장경각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하여금 보호하
용인신문 | 2025년이 시작될 때에는 이루고 싶은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목표도 있었다. 연말이 되면 대개는 마음 먹은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해보다 복잡한 마음이 우리를 차지했던 한 해였다. 이러한 때는 복잡한 서사보다는 간소한 그림책을 읽으며 한 해를 반추해 보기를 권한다. 그림책 『마음 먹기』의 주인공은 우리의 마음인 ‘마음이’이다. 표지를 보면 주인공은 달걀의 외형을 갖고 있다. 쉽게 깨질 수도, 연약하기도, 흔들리기도 할 것 같은 주인공. 사람들은 주인공을 두드리기도 하고, 뒤집기도, 달달 볶기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가도 차갑게 식어 버리고, 배배 꼬이기도 한다. 그런데 요리가 마음 먹은 대로 요리가 되지 않는다면? 요리는 새카맣게 타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들을 독자에게 살며시 건네준다. 이야기는 독자들 스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해 준다. 독자들 내면에 있는 착함을 발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착함은 맛있는 요리를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시민의식이며 공동체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