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노자는 ‘앎의 부족함을 아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고, 모름의 상태를 모르는 것은 병(知不知上 不知知病)’이라 했다. 이 말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앎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삶이 세계와 만날 때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샤를로트 파랑의 그림책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원제:Murielle et le mystère)는 오래도록 회자한 노자의 말을 다시 한번 읊조리게 한다. 주인공 뮈리엘은 숲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달팽이를 주우러 숲에 나가는 뮈리엘. 그런데 어느 순간 낯선 무언가를 발견한다. 모양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점점 당황하는 뮈리엘은 화도 나고 잠도 잘 오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뮈리엘은 곧 태도를 바꿔 그 정체를 탐구한다. 과연 그 정체와 뮈리엘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까? 이 그림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 ‘모름’을 만나는 장면이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존재는 어둠 속에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편에 뮈리엘 역시 즐거운 표정으로 티타엠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계를 볼 때는 ‘모름’을 탐구의 자세로 대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어린이의 시선은
용인신문 | 600년 된 팽나무가 지키는 포구의 어느 마을. 그곳은 미군기지 용지로 결정되어 철거된 ‘하제’마을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하제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 4년이 지나 그 이야기는 『할매』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무가 하제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팽나무 열매를 먹은 개똥지빠귀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그리고 백년 쯤 지나 그곳에 자리잡은 스님 몽각이 팽나무에게 할매라 불렀다. 할매나무는 누군가의 몸주가 되기도 했다. 할매는 긴 세월, 하제 포구에서 살아낸 어부들과 농민들 곁을 지켰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응시했다. 그 속에서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동학당에 참여한 이들이, 바다와 땅과 사람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씨를 굽어 살폈다. 그간의 황석영 작품이 특정 시기의 굵직한 거기사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썼다면 『할매』는 나무가 살아낸 시간을 짚어간다. 나무가 견딘 시간은 소시민들이 삶을 지켜낸 역사였다. 나무는 사람과 연결되었고, 그 나무를 근간으로 사람들은
용인신문 | “살아간다는 것은,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을 치르는 것이다. 싸움을 걸고 있는 모든 적의 얼굴은 비가시적이다.”(2권, 165쪽)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시작되었다. 말이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듯 『추사』라는 소설 속 김정희도 나아가는 삶 속에 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이면서 서예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설 『추사』는 김정희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조망하며 평생 그가 추구했던 사유들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는 추사의 말년에 초의 스님의 부탁을 받은 현판 글씨에 관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추사는 마음먹은 대로 글씨가 나오지 않자 고민에 빠진다. 다른 한편으로 추사는 생을 돌아보며 그가 사랑했던 가족, 그가 만났던 여러 스승, 그리고 그가 대적해야 했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각각의 만남 속에는 사랑이 있었고, 진취적인 비판의식이 깃들어 있었고, 올곧음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고독하고 고독한 시간이 있었다. 이승에서 마지막 글씨가 될지도 모르는 현판 글씨 ‘판전(板殿)’을 쉽게 써내지 못하는 추사 김정희. 하늘과 땅이 점지한 서예가의 성심이 깃든 그 글은 장경각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하여금 보호하
용인신문 | 2025년이 시작될 때에는 이루고 싶은 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목표도 있었다. 연말이 되면 대개는 마음 먹은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해보다 복잡한 마음이 우리를 차지했던 한 해였다. 이러한 때는 복잡한 서사보다는 간소한 그림책을 읽으며 한 해를 반추해 보기를 권한다. 그림책 『마음 먹기』의 주인공은 우리의 마음인 ‘마음이’이다. 표지를 보면 주인공은 달걀의 외형을 갖고 있다. 쉽게 깨질 수도, 연약하기도, 흔들리기도 할 것 같은 주인공. 사람들은 주인공을 두드리기도 하고, 뒤집기도, 달달 볶기도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가도 차갑게 식어 버리고, 배배 꼬이기도 한다. 그런데 요리가 마음 먹은 대로 요리가 되지 않는다면? 요리는 새카맣게 타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들을 독자에게 살며시 건네준다. 이야기는 독자들 스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해 준다. 독자들 내면에 있는 착함을 발견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착함은 맛있는 요리를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시민의식이며 공동체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한
용인신문 | 2023년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는 상상으로 『비스킷』이 출간되었다. 2년이 지난 2025년 이 소설은 2편으로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비스킷』 2는 주인공 성제성과 1편에서 제성이가 구해낸 희원이와 친구들이 학교의 거악(?)과 싸우는 스토리가 주요 골격을 이루고 있다. 제성이가 친구 효진·덕환과 함께 학교에서 맞서야 하는 이는 막강한 부모의 힘을 믿고 기본적인 도덕조차 무시하는 진종기이다. 교묘하게 제도를 피해 말썽을 일으키는 진종기는 학교 선생님들조차 함부로 못할 정도의 배경을 가지고 있어 누구도 섣불리 그의 비행을 제지하기 힘들다. 『비스킷』 1편이 희원이를 구하는 이야기였다면 2편은 진종기의 비행으로 사라지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구하는 조금 더 광범위한 서사를 펼쳐내고 있다. 존재감이 사라지는 개인이 눈앞에서 실재로 사라진다는 판타지적 세계관이 신기한 이 작품은 한 편의 수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이 가리키는 개인의 존재감은 여러 가지 이유로 희미해지기도 한다. 뉴스는 연일 대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눈앞에 생존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용인신문 | 교실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속한 집단의 역사가 함께 한다. 교육은 사적인 역사가 공적인 집단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만남 덕분에 따뜻하고 행복한 미래에 문이 열리고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어느 교사가 있던 교실에서는 ‘흔들리는 삶’이 있다. 저자는 이를 ‘멜랑꼴리아’라 표현한다. 슬프고, 우울하고, 답답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낯선 이 단어만큼이나 교사가 목격한 아이들도 그렇다. 매를 맞고, 칭찬 간식도 주머니에 넣어가야 하는 아이. 겨울에 외투가 없는 아이. 어느 꼭지를 봐도 먹먹한 사실이며 우리 사회의 그늘이며 불평등이 현장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한 말들은 기억에 남아 시간이 지날수록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로 남아 아물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들의 마음 속 상처들은 자신과 타인을 흔드는 행동과 말로 발현되고 종국에는 교실을 떠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같은 상흔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사가 해야 할 일, 가정이 해야 할 일, 더 나아가 그 누군가가 나서야 할 일에 대해 말한다. 이같은 저술은 큰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검붉은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