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점심을 먹을 때는 아이들이 몰려온다. 외국인이 신기한가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냐고 물어본다. 나는 오징어 게임 아냐는 질문인 줄 알고 “응!”이라고 했다가 큰일이 났다. 애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 것이다. 10명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의 아이들이 팝콘 형식으로 물어보는 질문 세례는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번호 몇 번이었어요? 누구 봤어요? 사실 애들이 내게 말하면 그 들뜬 장력과 빠른 말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미안 내가 씨sí와 노no만 하는 이유가 있어. 애들은 내가 스페인어가 서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왜 대답을 못하지…? 하고 쳐다본다. 그날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아 오징어 게임을 할 줄 아냐는 질문이 아니라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냐는 질문이었구나. 이런 작은 오해와 소통의 어려움은 자주 겪는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오는 에피소드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 속에 하하 웃으며 애들을 피해 다녔다. 열 명 이상은 어렵다, 얘들아….
용인신문 | 일요일 밤에 불을 지피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익숙한 분위기와 모르는 사람들. 신기하게 여행 중에 원하는 것을 말하면 곧 이뤄지곤 했다. 저번 주의 나는 선생님을 찾고 있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작은 서클이 있었으면 했다. 이번 주에는 생태학교에서 봉사했다. 개교한 지 30년 되었으며 전교생 수는 80명 정도이다. 학생들과 만날 일은 거의 없었고 하루 6시간 일을 한다. 주된 일은 두 가지였다. 대나무로 산책길을 정비하는 것과 대나무 바닥을 만드는 것. 둘 다 몸을 쓰는 일이라 기합을 넣고 일했다. 삽질, 톱질, 망치질, 도끼질이라니. 얇은 대나무로 노후된 대나무 난간을 교체했다. 까매진 대나무는 금방 부서졌다. 푸스스. 계단도 만들었다. 대나무를 적절한 길이로 자르고 (50~80cm) 경사진 땅의 흙을 막는다. 산에서 보던 그런 산책로들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긴 부분을 다듬은 게 아니었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큰 대나무를 여는 게 가장 하이라이트. 도끼를 들고 대나무의 마디마다 3㎝ 간격으로 도끼질을 한다. 도끼가 잘 박힐 수 있게 자체 무게를 사용하면서 정확한 위치에 조준하는 게 어려웠다. 명상이라고 생각하고 호흡과 함께 도끼질했다. 같이
용인신문 | 콜롬비아에는 세계의 큰 산맥이 있다. 안데스산맥으로 이어진다. 안데스산맥은 지구상에서 가장 길게 뻗어있고, 무려 7000킬로미터에 달한다. 베네수엘라부터 칠레까지. 친구네 집은 첫 산맥을 넘어 중간에 있는 Inzá라는 소도시 근처이다. 작은 차에 넷이 옹기종기 앉았다. 짐이 한가득이라 차 위에도 대롱대롱 매달았다. 처음 출발할 때 날씨는 파란 하늘. 고도가 높아지며 안개와 구름이 끼고 얕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장 높은 지역에서는 한 해에 단 1cm가 자란다는 나무 프라엘레혼(frailejón)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3미터가 넘어 보이니 300년은 족히 살았을 나무. 한참을 바라보다가 서둘러 차로 돌아간다. 아 추워!!!
용인신문 | 콜롬비아에 있는 대나무 건축 워크숍에 왔다. 페루의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썼던 친구에게 정보를 받았다. 오래 여행하는 장기 여행자들이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는 곳곳에서 자원봉사(발룬티어)를 하는 것이다. 주로 식사와 공간을 제공 받고, 하루에 4시간~5시간 정도를 일한다. 호스텔, 커피농장, 동물보호소, 개인 가정, 건축 프로젝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한 번에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를 받는 곳에 가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주로 유럽과 미국 친구들이 많다. 대나무 건축의 개요와 가장 많이 쓰는 세 가지 방식을 배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굴곡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대나무는 특장점이 잘 구부러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나무집과도 다르게 곡선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말뚝을 박아놓고 대나무를 겹쳐 쌓아서 큰 하나의 기둥을 만들었다. 이는 그대로 1층의 기둥이 된다. 이 아름다운 곡선을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구나!
용인신문 | 여행을 시작하기 전, 꿈을 꿨다. 밝아오는 새벽빛을 맞으며 언덕 위에 한 여자가 서있다. 당장 오늘 어디서 잠을 자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도 불안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주어진 하루에 감사할 뿐이었다. 작은 가방을 메고, 뒤편으로는 갈대가 흩날린다. 여행 중에도 가끔 그 모습이 떠올랐다. 계속하는 질문은 내가 왜 이 길을 떠났을까. 벌써 7개월이 지났다. 흔한 표현이지만, 시간 참 빠르다. 처음 길을 나서면서 느꼈던 감정은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그립다는 감정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굴 만나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도 알 수 없지만, 그저 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 자신이 의심스럽기도 했다. 왜? 지금 꼭? 이라는 질문에 나 자신도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움직이다 보면 무언가 찾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동하기도,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았다. 콜롬비아에서 발견한 진심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용인신문 | 드디어 마추픽추에 가는 날, 새벽 6시에 길을 나섰다.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마추픽추 첫 번째 매표소가 있다. 표를 확인하고 한 시간 반 정도 등산하면 두 번째 매표소에서 한 번 더 확인하고 각자의 루트로 갈라진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걷기 시작한다. 천천히 마추픽추 산에 올라 입장한다. 나는 너무 유명한 유적지들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미 본 자료들이 너무 많으므로 기대가 크면 실망하는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추픽추는 정말-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 더 오고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 갈아서 맞췄다는 돌들을 쌓아놓은 걸 눈앞에서 보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옮겼지?”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높은 곳에 도시를 건설해놓고 잉카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높은 천문학적 지식과 농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어떤 이유로 몸을 숨겼을까. 아직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스페인 정복자들도 마지막까지 찾지 못했던 비밀의 땅,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상상의 나래를 잔뜩 펼치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와봐서 다행이야. 언젠가 또 올게!
용인신문 | 파카 니트까지 준비해 왔는데도 한기가 들어왔다. 잠을 자려 누웠는데 산이 하얗게 빛나며 나를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안 그려. 내일 아침 5시 출발이지만,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달빛에 만년설이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고요하다. 주변에 들리는 소리 하나 없고 달과 별, 산 뿐이다. 사진으로도 담기지 않아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담아봤다. 그림을 그리면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찬찬히 뜯어본다. 내 눈으로 보이는 곳 중에 어디를 중심으로 그릴까. 얼만큼을 표현할까. 살칸타이산은 6,271미터로 우리는 그 아래를 지나간다. 며칠간 트레킹은 처음이었는데 참 잘 왔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자연 속에서 걷고 아무 생각 없이 푹 잠들 수 있었다. 마추픽추에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사흘간 점점 가까워지며 커져가는 기대감이 좋았다.
용인신문 | 페루에는 유명한 길이 하나 있다. 잉카 트레일이라고 불리는 길인데, 마추픽추까지 가는 4박 5일 일정의 도보여행이다. 이는 제한 인원이 있어서 삼개월 전쯤 예약을 해야하고, 가격도 꽤나 비싸다. 말과 함께 걸을 수 없어 셰르파(짐꾼)들이 함께 걷고, 모든 일정을 텐트에서 소화한다. 오래된 길을 지키기 위함이다. 나는 제한 인원이 없는 살칸타이 트레킹을 다녀왔다. 똑같이 4박 5일을 걷지만, 다른 경로로 마추픽추에 접근한다. 첫날, 4270m에 있는 후만타이 호수를 거쳐 숙소까지 5시간을 걷는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와본건 처음이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다. 천천히 올라가 마주한 호수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푸른 빛깔의 호수가 나를 반긴다. 짐을 가이드에게 맡기고 저 높이 올라갔다. 위에서 보니 호수 색깔이 더 잘 보인다. 한참을 앉아 호수를 구경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하산했다. 우리조는 프랑스에서 온 60대 부부와 폴란드에서 온 50대 부부, 그리고 나보다 10살 많은 프랑스 언니 등 총 6명이다. 그리고 가이드 한 명과 마부 한 명, 셰프 한 명이 함께한다. 다들 유럽에서 와서 그런지 잘 걷는다. 내가 제일 어린데 제일 뒤에서 헉헉대
용인신문 | 페루에 있는 아마존에 왔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우는 아마존은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 세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다. 지구에는 여전히 많은 부족이 정글에 살고 있고 그들만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품은 비행기로 들여와야 해서 다른 지역들보다 조금 더 비싸다. 대신 아마존에서 나는 물고기와 망고, 바나나, 아보카도가 정말 싸다. 나도 모카치코라는 물고기를 하나 먹어봤는데 민물고기에서 나는 비린 맛 하나 없이 찰지고 맛있었다. 주로 밥이나 유카, 구운 바나나와 함께 먹는다. 유카는 처음 먹어봤는데, 쫀득한 감자 같다. 마처럼 길게 생겼는데 그걸 잘라서 쪄서 먹는 듯했다. 바나나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손가락 두 개만 한 몽키바나나, 우리가 아는 바나나. 그리고 요리바나나. 요리바나나는 잘라서 구워 먹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밤에 들리는 수많은 벌레 소리였다. 까만 나무들 사이로 수백만 가지의 다른 소리가 들린다. 그 요상한 화음을 들으며 잠을 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짧은 비가 내리고, 낮에는 해가 쨍쨍하게 비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글에 들어와서 삼일간은 정말 잠이 쏟아졌다. 일어났다 밥 먹고 자고, 또 자고 잤다. 인터넷도 없고
용인신문 |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 도움을 받는 일이 많다. 공항에서 나가는 택시비를 대신 흥정해 준다거나, 적정 가격을 알려주는 경우부터 자기 집에 초대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경우까지. 정말 많은 환대와 친절을 받았다. 우린 어제까지 혹은 바로 오분 전까지 모르던 사이었는데, 왜 제게 이렇게까지 잘해주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 가끔 목구멍 밖으로 나오는 날에 듣는 대답은 “나도 여행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연장자가 사는거야”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등등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고마워 눈물이 고일 때도 있다. 가방을 뒤적여서 엽서를 꺼낸다. 한국에서 나오면서 내가 그렸던 그림을 모아 엽서를 프린트해왔다. 여행하며 만나는 인연들이 있으면 선물로 주고 싶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열다섯 개 정도의 다른 엽서를 내밀고 “자! 네가 맘에 드는 거 하나 선물로 주고 싶어!” 하면 사람들이 열심히 고른다. 작지만.
용인신문 | 중미 과테말라는 남미로 향하는 여행자들이 잠시 들러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시간당 수업료도 저렴한 편이고, 다른 남미 국가들보다 표준 스페인어 발음을 쓰고 말도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안티구아에서 수업을 들으려다가 아티틀란 호수 물가가 도시보다 저렴하고, 친구가 집에서 지내도 된다고 해서 여기서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씩. 오랜만에 공부하려니 어색했다. 그래도 혼자 하는 그것보다 빠르고 선생님이 확실하게 헷갈리는 부분을 짚어주셔서 5일 만에 많은 단어를 외웠다. 스페인어는 주어에 따라서 동사가 모두 변화해야 한다. 나, 너, 그녀, 그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공부하면서 어려웠는데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새로운 문화에 초대되는 것과 비슷하다. 여행하며 말이 안 통해서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 꾸준히 공부해 가며 언어를 늘리고 싶다.
용인신문 | 과테말라 안티구아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매일 열리는 시장은 아니고,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덕분에 지붕은 없지만 상설시장보다는 조금 저렴하다. 4인 가족이 먹을 식재료를 한가득 샀는데도 3만 원을 넘지 않는다. 시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등짐 가득 지고 지나다니는 짐꾼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따리 상인들, 과일상인들…정신이 없다. 둘러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띈다. 여기도 한국 재래시장처럼 과일을 잘라놓고 “우리 과일 맛있어요~잘 익었어요” 한다. 관심을 보이면 한 조각씩 잘라주며 먹어보라고, 달다고 호객을 한다. 게다가 “망고 세 개 오솔~~”하는 발성은 마치 ”수박이 만원 참외가 오천 원“하는 발성과 똑같다. 아주머니들이 허리춤에 하나씩 매 놓은 치마에는 주머니가 달려있어 거스름돈이 거기서 나온다. 어떻게 거의 지구 반대편 나라인데 이렇게 비슷할까? 할머니 따라 나온 아기의 눈망울이 똘망똘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