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1 처서(處暑)라는 말의 내부 천서봉 골 진 알밤, 무딘 칼날 세워 보늬 긁는다. 겨의 주름 깊이 길이 나 있다. 더위가 물러가는 길, 길을 따라 또 길이 돌아오는 길. 죽은 할미도 달의 오래된 우물도 모두 내 안구 속으로 돌아와 박힌다. 깊어가는 수심의 습지에서 남보다 더 오래 우는 개구리의 턱이 깊다. 지나간 애인들의 뒤통수가 전봇대마다 건들건들 매달려 있다. 울음소리를 참아온 나무들이 투명한 손바닥을 여름의 뒷등에 비빈다. 앵앵거리는 추억은 다만 비틀어져갈 뿐,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런 모기의 주둥이처럼 저녁이 오고, 한두 겹의 내력을 더 견디며 나는, 고요의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가리라. 더위가 물러가는 길, 파르라니 깎은 몇 개의 알밤을 바가지에 담그면 달의 손바닥들이 내 오래된 뇌(腦)를 쓰다듬는다. 서늘한 나의 카르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처서(處暑)는 여름 더위가 그치는 날. 입추와 백로 사이의 절기이지요.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고 지나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에
▲ 유리섬미술관 대부도에 위치한 유리섬미술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후원으로 '문화가 있는 날' 연계프로그램 '속속이야기 - 유리 숲 속 이야기, 유리 속 이야기'를 8월 15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 운영한다. 속속이야기는유리 숲속이야기란 부제목으로 총 5회의 A프로그램과 유리 속 이야기란 B프로그램으로 나눠 진행한다. ◎ A 프로그램 유리 숲 속 이야기 - 참가인원 : 매 회당 8명의 학생과 학생 가족을 포함한 약 24~35명 - 기 간 : 2015. 8. 15. 토요일 ~ 2016. 1. 30. 토요일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 시 간 : 오전 10:00~12:00 (매회당 120분) - 횟 수 : 총 5 회 (학생 40 名) - 내 용 : 유리 숲 속 이야기란 공모주제로 채택된 그림 총 40점(매회당 8점)을 수거해 현대유리조형작가가 직접 각 학생들의 그림을 근거로 유리작품을 완성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유리조형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작기법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그림을 선택해 그림 속 이야기를 유리작품으로 재현해서 완성시킨다. 이렇게 최종 채택된 학생의 그림(총 40점)은 제작된 작품과 함께 유리섬 미술관 전
바다, 빛, 유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는 안산 대부도 유리섬 맥 아트 미술관에서는 제5회 극동 아시아 공예가 교류展 The power of craft - 人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극동 아시아 공예 협의회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활약하는 공예 작가를 중심으로 2010년에 설립됐다. 아시아 국가의 공예 작가들이 모여서 서로 교류하며 소재 기술표현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새로운 시대의 아시아 공예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전시회나 심포지엄, 지도 등의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 노다 무추미 作, 바다꽃-아프로디테 ▲ 곽동준 作, Memory for some years Summer 지금까지 오사카(2010), 부산(2011), 도쿄(2012), 오키나와(2014)에서 교류전 활동을 해 왔고, 제5회로 되는 올해는 한국 안산시에 위치한 대부도 유리섬 맥아트미술관의 협력을 받아 개최하게 됐다. 국내와 아시아를 비롯한 해외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공예작가들 33명이 참여한 전시다. ▲ 강혜주 作, 시작을 위한 흐름 유리뿐만 아니라 칠나무금속염직도자 등 각각의 장르에서 독자적인 시점을 가지면서 제작에 임하고 있는 작가들의 다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0 다섯 개의 계절 박진성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한 계절은 죽어 있어도 된다면 나는 너의 무덤에 있을 거야, 네 번째 계절이 끝나는 곳에 나무를 떨어뜨릴 거야 감정 노동자의 감정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고 초록이 지겨운 초가을의 나무들을 닫을 수 있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자,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나무들이 맹목을 버린다면 우릴 쳐다보는 모든 눈동자들이 흰 자위만 남는다면 구름처럼 구름 아래의 구름처럼 아래의 아래의 …… 빙빙 도는 새들이 떨어진다면 아이들이 갑자기 노는 일을 중단한다면 다섯 번째, 다섯 번째 꿈이 시작된다 잠들 수 있다면 쫓기고 있어요, 네 꿈의 창백한 환자가 내 꿈으로 이동한다면 안아줄 텐데 자신이 가여워서 우는 사내를 네가 본다면 없는 죄를 만드는 사내의 입술을 본다면 말의 힘줄과 말의 불안과 말의 꽃들을 네가 밟는다면 다섯 번째 계절엔 병원이 없을 텐데 안녕 지하실들아 모든 시간들이 모이는 바닥들아 네가 그곳에 눕는다면 …… 너의 아래를 기어다닐 수 있다면 시간이 사라질 텐데 날씨가 악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악기의 북쪽으로만 만든 음악일 텐데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면 그렇게 죽어 있어도 좋아 죽은
시로 쓰는 편지 69 여름 한철 도종환 동백나무 묵은 잎 위에 새잎이 돋는 동안 아침 창가에서 시를 읽었다 난초잎이 가리키는 서쪽 산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로 세우지 못한 나랏일에 마음 흐렸다 백작약 뿌리를 다려 먹으며 견디는 여름 한철 작달비 내리다 그친 뒤에도 오랜 해직 생활에 찾아온 병은 떠날 줄을 몰랐다 여름밤 깊고 깊어 근심도 깊은데 먼 마을의 등불도 흔들리다 이울고 띠구름 속에 떴다 지는 까마득한 별 하나 ------------------------------------------------------------------- 오늘의 시에 ‘여름 한철’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한 사람이 아침을 맞아 새잎 돋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었답니다. 저녁에는 노을 앞에서, “바로 세우지 못한 나랏일에 마음 흐렸”음을 고백하고 있네요. 마음이 흐려지면 몸은 덩달아 무거워집니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백작약 뿌리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요. 작달비가 시원스레 내려도, 삶의 이력이 가져다준 병은 떠날 줄 모르나 봅니다. 시인의 산문을 함께 읽다 밑줄을 그었습니다. “충분히 사유할 시간 없이 쫓기던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8 버찌 이정원 파편이 거리에 넘치던 밤 있었다 파편에 찔린 가로등 야위던 밤 있었다 가슴을 다쳐 압박붕대를 감고 앓던 밤 멍들이 자랐다 누르면 고집의 멍울들 울울해 지는 꽃 보면서도 눈치 못 챘다 꽃 진 자리에 산탄이 맺힌다는 걸 떫고 시큼한 주기율표의 원소들처럼 나란히 나란히,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나란히, 산탄은 언제 터질지 몰라 멍이 익어갔다 속으로부터의 반란이었다 달거리의 시간 달이 차오를 때 꽃피는 혓바늘처럼 한 시절이 불쑥불쑥 터지고 있었다 멍들이 으깨지며, 앓고 난 발바닥을 깨물며 낙관을 찍고 있었다 검은 피의 날이 보도블럭으로부터 올라올 때 숨겼던 산탄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때론 가슴에서 꺼내기도 했다 검은 피의 목록들이 피어났다 ------------------------------------------------------------------- 벚나무의 열매, 버찌. 시인은 오늘의 시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파편과 압박붕대의 나날. 멍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도처에 자리한 산탄들이 그려집니다. 사회라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연대감을 필요로 합니다. “서로 같은 듯 다른 표정으로 나란히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7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안미옥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 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 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고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 여름, 숨 막힌다는 느낌은 꼭 기온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젊은 시인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어항 속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6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김윤배 소금밭으로 변한 호수 위에 내가 섰다 수심 깊이 숨어 있던 그리움들의 부활, 너와 나를 종단하던 시간이 순장의 수수만년을 기다려 수정의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현장 흰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한 시간 속에 네가 없다 소멸 위에 꽃 핀 참혹한 시간이 있을 뿐 대지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려 네게로 가는 길을 냈을 거다 시간이 작은 수정의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기다렸던 거다 기다림이란 저런 거다 죽은 시간 위에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하는 사랑 나는 지금 그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 우리는 지금 도래할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지요. 간절히. 김윤배 시인은 한 아티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총체성을 상실한 시대이며 상실된 총체성의 회복을 위해 만들어진 문학적 형식이 서정시며 소설이라는 것이다. … 문학에서의 총체성의 획득 공간은 주체와 객체의 화해가 실현된 곳이 아니라 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간이다.”(「시인의 문학적 체험은 루카치적인가 아도르노적인가
용인신문사 사옥이전 및 개소식 안내 용인신문사가 지난 1일처인구 삼가동으로 사옥을 이전했습니다. 본사는 신사옥 이전을 계기로부설 미디어센터와 한국태교아카데미를 신설운영합니다. 1992년△향토문화발전 △지역발전선도 △왜곡보도불식 등 3대 사시를 모토로창간된 용인신문사는 임직원 모두지방자치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용인신문사 발행ㆍ편집인 / 대표이사 김종경 올림 -일시: 2015년 7월 8일 오후 3시~6시 -장소: 용인신문사 처인구지삼로 590(CMC빌딩307호) -문의: 031-336-3133 ★화환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5 샤퍄 연필깎이 심재휘 사춘기는 수식어가 없는 밤이다 열여섯을 앓고 있는 딸이 눈물방울을 떨구고 아직은 식지 않은 여름밤에 선풍기는 소리 없이 돌고 나는 연필깎이로 샤파 샤파 연필을 깎는다 연필은 어둠 속에다 무엇을 쓰려는 걸까 선풍기는 고개를 좌우로 젓기만 하고 나는 연필깎이를 적당히 정말 적당하게 힘을 주어 돌리는 오래된 손 아빠의 달은 창밖을 공전하고 딸의 별빛은 너무나 희미하고 이 넓은 우주에서 샤파 샤파 아프게 깎고 깎이는 연필의 밤 셀 수 없는 몇 자루의 밤을 몸 안에 품고 오늘은 딸이 운다 그럴 때면 나는 뭉툭하고 눈물이 그렁한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고 길고 까만 심이 나오도록 손잡이를 돌리는데 살살 돌리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는 나의 손에는 얇고 구불구불한 눈물의 밥만 가득한데 연필의 내심(內心)이 제법 뾰족해져도 나에게는 열여섯 사춘기를 베껴 쓸 수 있는 연필이 끝내 없다 서글픈 딸의 봄밤은 작고 가지런한 그녀의 발등 위로 수식어도 없이 한 방울씩 툭툭 떨어져 번지고 있다 -------------------------------------------------------------------- 누군가 저녁별이 연필 깎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4 환희가 금지된 송승언 빈터에서 꽃들이 자란다 빈터를 밀어내며 빈터에서 꽃들은 자란다 지워지는 빈터에서 꽃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닌 것들이 빈터에서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닐 꽃들이 웃고 있다 꽃은 아닌 얼굴들이 빈터에서 웃고 있다 얼굴은 절대 아닌 것들이 빈터에 들어차 있다 빈터에서 그것들이 자라고 있다 그것들이 함께 웃는다 함께 깔깔거린다 함께 이글거린다 함께 일그러진다 빈터에서 무너진다 무너진 것들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일어서려 한다 꽃의 잔상이 되려 한다 그러나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두 사라지지도 못하는 빈터에서 잔해를 헤치고 새로운 꽃이 자라고 있다 늘어진 줄기를 곧추세우려 한다 꽃은 아직 제 이름도 혈통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웃지는 못하고 있다 ------------------------------------------------------------------- 당신의 빈 터는 어디인가요. 시 속의 빈 터에는 ‘꽃들’과 ‘꽃 같은 것들’과 ‘꽃이 아닌 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꽃이 아닐 꽃들’도 웃고 있네요. 인간은 누구나 꽃이지요. 다만 이 세계에서 혹은 빈 터에서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3 유빙(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여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