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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유산 산책

무용가 최승희·정정산 지사, 살았던 집 ‘폐허’ 방치

긴급진단_용인지역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진다-上

 

대한민국 무용의 산역사 최승희 신혼생활 시댁
원삼면 문촌리에 앙상한 뼈대 드러낸 채 무너져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산 지사 생가도 폐가 방불

 

[용인신문] 용인시 행정당국의 무관심 속에 사라져버렸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세계적 춤꾼이었던 천재 무용가 최승희가 한창 전성기 때 남편 안막과 신혼생활을 했던 시댁, 독립유공자인 정정산 지사의 생가 등이 행정당국의 무관심 속에 안내판조차 없이 폐허를 방불케 하고 있다. 노작 홍사용의 생가터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아무도 이를 거론조차하지 않는다. 이미 잊혀졌기 때문이다.

 

용인은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알려진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삼국,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층층이 숱한 문화자산이 있다 보니 귀한 줄을 모르고 방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이 없는 시군에서는 한 인물이 잠시 스쳐지나간 곳조차도 문화자원으로 보존 계승하고 관광자원으로까지 성공시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 아예 없는 것을 만들어내서 문화자원화 시켜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용인시는 더 늦기 전에 허물어져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자원에 최소한 표지판이라도 세우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안막‧최승희 부부가 거주했던 최승희 시댁 폐허 방불

천재적 무용가 최승희에게는 수식어가 많다. 요즘말로 표현하면 글로벌 스타다. 우리나라 근대 무용계를 주름잡던 최승희가 신혼생활을 했던 시댁, 즉 남편 안막의 본가가 원삼면 문촌리에 남아있음에도 시 당국의 무관심 속에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무너져가고 있다. 이곳은 안내표지가 없어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스쳐지나간다. 이주국 고택(정영대가옥) 바로 근처다.

 

최승희의 남편 안막은 금수회의록의 저자 안국선의 조카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 동맹(카프)의 손꼽히는 이론가였다. 최승희의 상징인 단발머리를 안막이 권했고 공연 기획, 홍보, 안무 등 춤에 일가견이 있던 헌신적인 매니저이기도 했다.

 

안막이 용인 출신임에도 백과사전 등에 안성 출신으로 기록돼 있고 대부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어 최승희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안막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안성시 고삼면은 원래 용인땅이었다. 1910년에 양지 고동, 고서, 고북면이었다가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 때 양지와 용인이 합쳐져 용인군으로 폐합됐고, 이때 고동‧서‧북 세 개면을 폐합해 고삼면이 됐다. 196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 됐다. 고삼면과 문촌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한때 월북한 이들 부부는 언급조차 금기 대상인 시기도 있었지만 1990년 이후 월북예술인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면서 안성시 고삼면 꽃뫼에서는 최승희와 안막 초혼제를 비롯해 두 부부의 예술세계 조명 및 최승희 춤 공연 등이 개최됐다.

 

최승희의 친일행위도 문제되고 있지만 예술가로 인정하려는 분위기 또한 크다. 최승희의 출생지로 알려진 강원도 홍천에서는 기념사업회가 꾸려졌다가 친일무용수였다는 문제 제기에 선양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용인에서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최승희의 친일논란 조차 이슈화 되지 않는다. 친일 음악가 홍난파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지만 그가 작곡한 고향의 봄이 금지곡이 되지는 않는 논리적 모순이 있듯이 예술가의 친일행위 논란은 항상 뜨거운 감자다.

 

이런 가운데 안막과 최승희 부부가 살았던 문촌리 고택은 폐허가 되다시피 방치돼 있다. 현재 고택은 이들과 무관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지만 안내표지판이라도 세워놓으려는 관심과 노력이 아쉬운 형편이다.

 

김장환 용인문화원 사무국장은 “최근에는 예술인들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며 “최승희의 시댁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한 후 논란이 일더라도 일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정정산 지사 생가 알리는 표지판조차 없이 방치

용인 3대 독립운동가 집안의 며느리자 신흥무관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교관을 지낸 오광선 장군의 부인 정정산 지사 생가가 아무런 표식도 없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정정산(일명 정현숙) 지사는 지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한 독립운동가임에도 이동읍 화산리 생가에는 안내표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오광선 정정산 부부는 지난해 4월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한 바 있다.

 

정정산 지사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 만주로 망명한 오광선 지사 뒤를 이어 당시 옥고로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 오인수(의병장) 등 일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땅을 억척스럽게 개간해 독립군의 밥을 커다란 가마솥에 하루 열 두 번씩 지어 뒷바라지를 했다. 또 말을 키워 팔아 군자금 마련 및 독립군에게 말을 제공하는 등 당시 ‘만주의 어머니’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며 독립군 기지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1941년에는 임정 산하에 조직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가입해 만주에서 태어난 한국 어린이들에게 우리말 교육 등 계몽운동에 나섰고,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두 딸 오희영·오희옥 지사와 함께 가입해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또 임정요원인 이시영(대한민국 초대부통령) 등의 뒷바라지를 했음은 물론이다.

 

친정 손주인 정인호·정인희 형제는 “대고모할머니인 정정산 지사가 광복 후 생계가 힘들어 돌아가실 때까지 이곳 저희 집에 오셔서 한 달, 혹은 두세 달 씩 머물며 식량을 마련해가곤 하셨습니다. 그때 저희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라며 “정지사가 잊혀져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정 지사의 막내딸인 오희옥 지사(95)는 중앙보훈병원(서울)에 입원 중이다. 용인의 3대 독립운동가 집안 계보는 의병장 오인수(1867~1935), 그의 아들 오광선(1896~1967·독립장)· 며느리 정정산(1900~1992·애족장), 오광선의 맏딸 오희영(1925~1969·애족장)·사위 신송식(1914~1973·독립장), 막내딸 오희옥(1927~현재·애족장) 등이다.

 

#노작 홍사용 생가터는 오간데 없고 화성 신도시 동탄에 노작홍사용문학관 자리잡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남긴 노작 홍사용은 기흥구 농서리 용수골 출생이다.

 

지난 2000년 6월에 용인문인협회, 용인문학회, 용인문화원 등이 노작 홍사용 생가 복원을 위해 지자체에 청원서를 올린 바 있으나 무관심으로 끝났다. 노작은 근대시인 중 유일하게 알려진 용인출생 시인이었기 때문에 지역 문화계의 관심이 컸었다. 반면, 홍사용의 묘소가 있는 화성시는 동탄 신도시에 노작문학관을 건립해 현재 홍사용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화성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