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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은 장미가 그린 자화상이지요

에드가르 드가


장미꽃은 장미가 그린 자화상이지요

 


들판에 나가 살아 있는 것들을 일깨우며 날아오르는 새 떼를 봅니다. 나는 조금 어두워져서 구름이 가득한 내 영혼의 태엽을 감아 봅니다.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새들의 영혼처럼 저녁 쪽으로 우리는 날마다 기울어집니다. 목마른 잎사귀들이 햇빛을 흔드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서쪽으로 난 질문의 창을 두드려 봅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주체의 눈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공중의 한 가운데에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숲이 깊을수록 길을 지워버리는 들에서/ 무엇인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서/ 호올로 나부끼는/ 몸이 작은 새의 긴 그림자는 ”(오규원, 순례 부분)

 

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고 있습니다.순례 에서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구절을 빌려 사용하고 있지요. 바람이 부는 일은 인생의 시련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고, 움직이는 대상에 대해 강하게 느끼는 생명력 같은 자각 일 수도 있습니다. 시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요? 어떤 길은 막막하고 다리가 아프지만, 걷다보면 삶의 고통을 통해 자기 반성적 사유를 옹달샘처럼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 길 위에서 문득 마주치는 표정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 아닐까요?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가 들어있습니다. 그림을 통과해 나온 자신을 재발견해 내는 작업이지요. 에드가르 드가는 인상파에 속하면서도 고전주의적 화풍을 견지한 화가입니다. 만년에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으나, 예민한 촉각이 눈을 대신 했다고 하지요. 외양의 거짓을 간파하는 그런 시선이 화가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될 때, 매우 엄격하고 냉철한 자기 성찰의 시선을 완성합니다. 드가의스물세 살의 자화상은 스무 살 무렵의 초상인데 냉철하게 자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작품마다 한 순간만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운동성 자체를 포착시키려는 붓과 만납니다. 선마다 새겨지는 강렬한 눈빛도 보입니다. 영원히 완벽에 닿을 수 없는 예술의 세계. 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무수한 성찰이 애절하고 아름답습니다.


가시에 찔린 눈이 붉은 장미 꽃송이를 피워냅니다. 장미꽃은 장미가 그린 자화상이지요. 오늘은 여러분 마음의 붓으로, 마음대로 자화상을 그려보세요. 최초의 그대와 만나는 시간이 될 겁니다. 거울은 거짓말을 잘 하니까요.  <최서진 시인 thinkpoe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