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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시인의 초부리 시첩-‘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 상설전시를

이경철시인의 초부리시첩4
‘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 상설전시를

   
4월 초파일 정원에 모란꽃이 부처님 색시처럼 곱게 피어나자 사진을 찍어뒀다. 환한 햇살 바람에 엷은 비단 치맛자락을 휘날리던 큼직한 모란꽃을. 듬성듬성 눈이 덮인 초부리 야산 자락에 흰 눈의 정령처럼 우뚝 서 있는 자작나무 군락을 찍었다. 막 떠오르는 햇살에 하늘을 향한 자작나무 자디 잔 가지들이 빛살이 되어 찍혔다.

몇 십 년 전 신혼여행 때 명승지에서 사진만 찍어대던 부부들을 봤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며 풍광 감상보다는 사진 찍기에만 다들 몰두하고 있었다. 어찌 사진이 그때그때의 생생한 느낌을 대신하게 할 수야 있겠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속물로 여겨왔었는데 여기 용인 초부리에 정착하고부턴 계절 계절 놓칠 수 없는, 영영 아까운 풍광들을 나도 어느새 사진에 담아두게 됐다.

   
◇대성전 졸업식 1900년대 초
사진을 처음 접한 지구촌 오지의 원주민들은 대체로 카메라 앞에 서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 카메라가 자신의 목숨과 혼을 그대로 빼간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피사체의 정령이 그대로 담긴다는 게 사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심정이다. 어디 정령뿐이겠는가. 찍고 바라보는 이의 회한과 소망까지도 다 담고 있는 게 사진일 것이다.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떠오르는 연말연시면 신문들은 으레 그런 시절 감각을 정감 있게 느끼게 하는 일몰이나 일출 등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는다. 기자 시절 사진기자들이 그런 사진들을 찍어 오면 그 캡션은 거의 내가 쓰다시피 했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진이 제 스스로 가고 오는 세월의 정령이 되어 말을 걸어와 그대로 받아 적기만하면 됐다.

용인신문사는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까지 10일간 ‘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전을 시청 청사 1층 갤러리에서 열었다. 18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인을 찍은 사진 120여점을 전시했다. 사진들을 보며 나는 등골을 찌르르 훑어 내리는 전율과 함께 용인의 정령, 신령한테 용인의 내력과 회한과 소망을 그대로 전해 듣는 감동을 느꼈다.

   
◇휴전반대 혈서 장면 1953년
내가 사는 초부리에서 청동검을 제작하는 틀인 거푸집이 발굴됐다. 청동 칼을 대량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아, 또 수백 수천 명의 힘이라야 축조 가능한 고인돌이 대량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청동기시대에 세운 최초의 우리 민족국가 고조선의 주요 거점임이 드러난 것이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고 가장 큰 강인 한강의 물줄기를 타는 곳이라 구석기, 신석기 유물과 유적도 많아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용인은 살기 좋은 터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선지 삼국시대는 이곳에서 각축을 벌이며 서로 차지하기를 반복했다.

조선 태종 때인 1413년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통합해서 용인현(龍仁縣)이란 현재 지명에 이르렀다. 그에 앞선 1400년에는 이곳에 조선시대 관립 지방학교인 향교가 세워져 유교의 덕목인 인(仁)과 충효(忠孝)등을 가르쳤다.

   
◇1996년 용인시승격 현판식
이번 사진전에는 그런 향교인 양지향교 대성전(大成殿)에서 1900년 어름에 찍은 졸업사진이 우선 눈에 띤다. 신식 양복과 두루마기를 입은 선생과 학생들이 구한말 우리의 좋은 전통을 어떻게 지키며 근대화로 나아가야할까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배흘림기둥과 다포로 떠받쳐진 대성전 그 우람한 전각은 이곳 용인의 오랜 내력을 웅변하는 듯하다.

그 향교를 이어받은, 용인에서 가장 전통 깊은 양지초등학교의 변천사를 볼 수 있게 한 사진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기와집 전각으로 출발해 일제시대 신식 건물로, 해방 후 오늘에 이른 그 교사를 바라보며 한 학교의 변천사는 물론이고 교사(校舍)는 변했지만 의연한 뒷산의 능선 들. 시대를 막론하고 그 능선 들이 배경으로 들어있는 용인 사진들은 산고수명(山高水明)한 이 용인이 바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 1930년 놓아져 용인의 주요 교통수단이 됐다 1972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여선 협괘열차가 지금도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는 듯한 사진. 고향 친구들 10명이 뒷동산 자락에 앉아 찍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고향의 친구들’이라 써놓은 사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가는 용인의 현대화에 반대하는 시위 사진 등등. 각 관공서나 단체, 학교, 교회등과 개인이 가보로 보관하고 있던 것을 내놓은 사진들을 보며 사진들에는 정녕 피사체의 혼과 보는 이를 감전시키는 신령스런 힘이 들어 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2014년 용인600년
지금은 누가 뭐래도 사진, 이미지 시대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스마트폰 이미지가 바쁜 우리 시간까지 지배하고 있다. 활자매체의 대명사인 신문마저 큐알 코드로 이미지가 돼가고 있는 시대이다. 이미지가 실재(實在)보다도 더 실재가 되어가는 시대, 피사체와 보는 이를 한 마음으로 소통케 하는 표상(表象)의 총화로서의 속 깊은 이미지, 사진의 힘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나는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하여 ‘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전은 일회성 전시로만 끝낼 일은 아니다. 저 선사시대로부터 앞으로 새 천년 만년의 용인의 그 위대한 여정을 위해 용인시에서는 이 사진들을 영구 전시했으면 한다. 사진 스스로 그 위대한 여정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용인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드높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