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 상설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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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 년 전 신혼여행 때 명승지에서 사진만 찍어대던 부부들을 봤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며 풍광 감상보다는 사진 찍기에만 다들 몰두하고 있었다. 어찌 사진이 그때그때의 생생한 느낌을 대신하게 할 수야 있겠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속물로 여겨왔었는데 여기 용인 초부리에 정착하고부턴 계절 계절 놓칠 수 없는, 영영 아까운 풍광들을 나도 어느새 사진에 담아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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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졸업식 1900년대 초 |
한 해가 저물고 새 해가 떠오르는 연말연시면 신문들은 으레 그런 시절 감각을 정감 있게 느끼게 하는 일몰이나 일출 등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는다. 기자 시절 사진기자들이 그런 사진들을 찍어 오면 그 캡션은 거의 내가 쓰다시피 했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진이 제 스스로 가고 오는 세월의 정령이 되어 말을 걸어와 그대로 받아 적기만하면 됐다.
용인신문사는 지난해 연말부터 새해 초까지 10일간 ‘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전을 시청 청사 1층 갤러리에서 열었다. 18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용인을 찍은 사진 120여점을 전시했다. 사진들을 보며 나는 등골을 찌르르 훑어 내리는 전율과 함께 용인의 정령, 신령한테 용인의 내력과 회한과 소망을 그대로 전해 듣는 감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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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반대 혈서 장면 1953년 |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고 가장 큰 강인 한강의 물줄기를 타는 곳이라 구석기, 신석기 유물과 유적도 많아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용인은 살기 좋은 터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선지 삼국시대는 이곳에서 각축을 벌이며 서로 차지하기를 반복했다.
조선 태종 때인 1413년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통합해서 용인현(龍仁縣)이란 현재 지명에 이르렀다. 그에 앞선 1400년에는 이곳에 조선시대 관립 지방학교인 향교가 세워져 유교의 덕목인 인(仁)과 충효(忠孝)등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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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용인시승격 현판식 |
그 향교를 이어받은, 용인에서 가장 전통 깊은 양지초등학교의 변천사를 볼 수 있게 한 사진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기와집 전각으로 출발해 일제시대 신식 건물로, 해방 후 오늘에 이른 그 교사를 바라보며 한 학교의 변천사는 물론이고 교사(校舍)는 변했지만 의연한 뒷산의 능선 들. 시대를 막론하고 그 능선 들이 배경으로 들어있는 용인 사진들은 산고수명(山高水明)한 이 용인이 바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 1930년 놓아져 용인의 주요 교통수단이 됐다 1972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여선 협괘열차가 지금도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고 있는 듯한 사진. 고향 친구들 10명이 뒷동산 자락에 앉아 찍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고향의 친구들’이라 써놓은 사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가는 용인의 현대화에 반대하는 시위 사진 등등. 각 관공서나 단체, 학교, 교회등과 개인이 가보로 보관하고 있던 것을 내놓은 사진들을 보며 사진들에는 정녕 피사체의 혼과 보는 이를 감전시키는 신령스런 힘이 들어 있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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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용인600년 |
하여 ‘용인, 그 위대한 여정-포토 & 히스토리 100년’전은 일회성 전시로만 끝낼 일은 아니다. 저 선사시대로부터 앞으로 새 천년 만년의 용인의 그 위대한 여정을 위해 용인시에서는 이 사진들을 영구 전시했으면 한다. 사진 스스로 그 위대한 여정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며 용인의 자부심과 애향심을 드높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