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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여성과 그의 저술서가 더 이상 외면 당해서는 안된다.
여성 실학자 이사주당(영조21~순조21)은 210여년 전인 1800년(정조24)에 세계최초로 태교전문서인 ‘태교신기’를 저술했다.
태교신기는 태교 이론과 실천 방법을 자세히 서술한 게 도저히 210년전에 씌여진 책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과학적이고 정교하다. 신세대 부부들도 이 책 한권이면 태교를 마칠 수 있을 정도로 최근에 만들어진 책처럼 따끈따끈하고 신선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210년전에 태교를 하는 일에 남편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태교에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해 시대를 앞선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이사주당은 당시 여성 규범서 등에 단편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태교에 대한 내용과 의학서적을 참조해서 태교신기를 지었는데, 특히 4남매를 둔 자신의 임신 출산 경험과 자신의 철학적 사상이 녹아 든 매우 독창적인 전문서다.
이사주당은 청주에서 태어나 15세에 용인 모현면 출신인 유한규 당시 목천현감과 혼인을 했다. 모현에 옮겨와 살면서 62세인 1800년에 태교신기를 저술하고 83세로 일기를 마친다. 1801년에는 아들 유희가 태교신기를 언해했다.
이사주당은 호에서도 엿볼 수 있듯 매우 학문 세계가 깊고 넓었다. 주자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호이니 당시 조선시대가 여성의 학문을 금하던 시대였음에 비춰봤을 때 천재적 여성이 아닐 수 없다.
남편 유한규는 이사주당이 혼인 후에도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준 스승이자 친구 같은 부부였다고 전해진다. 이사주당은 경서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역학 의학 등 섭렵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했던 분이다.
아들 유희 선생도 조선 실학자로서 문통 물명고 언문지 등 대단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아들 묘역은 이들 부부 합장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태교신기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책으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야 할 책이 분명하며, 이를 쓴 이사주당도 세계인들이 기려야 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용인시에서 이 여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사주당의 묘역을 정비하고 인근 숲을 활용해 태교의 숲과 태교 명상의 길 등을 조성한다면 이곳은 신혼 부부들의 필수 나들이 코스가 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