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생각에 따라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이왕 먹을 것을 좋은 것으로 고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각자가 두는 가치에 따라 먹고 사는 의미조차 다르게 나타나듯이 한 가지 음식을 두고도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는 감각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맛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던 날은 비가 몹시 내렸다. 장화가 진흙탕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패장이 되어 퇴각하는 모습은 참담했다. 질풍노도처럼 대륙을 질타하던 나폴레옹이었기에 그의 몰락을 가져온 이날의 패배는 더욱더 비장감마저 풍기게 했다.
나폴레옹 개인의 운명은 물론 유럽 대륙의 역사마저 바꾸어 놓은 이날의 패배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용병의 천재라는 나폴레옹의 치명적인 약점과 결함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후세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적절한 시기에 맞춰 도착한 오스트리아 원정군의 영향으로 나폴레옹도 불가항력적인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의 일치는 패인의 일부는 될 수 있어도 전부는 될 수 없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나폴레옹은 직접 통솔을 능사로 여기는 지휘관이었는데 그러한 진두지휘는 워털루 같은 부대 단위의 임기응변을 요구하는 대전투에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조직에 있어서 통솔자의 직접적인 진두지휘가 일사불란한 행동 통일을 기할 수는 있으나 조직 자체의 활성화나 창의성을 억제하는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지니는 단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조직과 공동체의 권한의 위임과 책임은 분담이 절대적 과제이며 조직체의 일치된 힘이 최우선의 전략이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생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같이 더불어 먹고 살기 위해서 상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 또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느냐의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갖고 산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 결코 심각하지 않은 그 생각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급기야는 불신과 불만을 낳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지만, 이것은 진정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에게 동조하게 만들려면 내가 먼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먼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난 다음 자신의 입장과 조율하는 방식으로 말을 하는데, 바로 이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무엇인가 바라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움직이는 최선의 방법은 먼저 상대방의 마음의 욕구를 일으키는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설득할 수 없다.
나의 미각에 대한 기준으로 상대의 미각을 판단하기보다는 상대의 입맛을 인정하고 자신과 다른 미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혼자 먹는 밥상보다 여럿이 어우러져 먹는 밥상이 더 맛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