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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토끼나라의 가면 벗기기 쇼

[시사패러디 | 글쟁이의 세상나들이]

한태호교수

어느 숲속의 작은 동물나라에 하얀 토끼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백의민족이라고 하얀 털가죽을 자랑하곤했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인가 친칠라와 앙골라 토끼가 숲속나라에 들어오고, 자기들의 커다란 덩치와 숱 많은 하얀 털을 뽐내기 시작하였다. 체면적이 작아서 털이 조금 뿐인 집토끼들은 외국 수입 토끼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개울에 뜬 월궁(月宮)에서 놀던 달토끼들도 토종 어류마저 블루킬이나 배스한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고서, 이제는 더 이상 맨 얼굴로 다니기가 민망해서 가면을 쓰기 시작하였다. 밍크꼬리 달린 휴대폰을 들고, 앙골라 배만큼 바람 넣은 대형 링컨콘티넨탈을 타고 다니고, 저팔계나 들고 다니던 삼지창으로 ‘금요일이여 고마워(TGIF)’ ‘가져가세요(Takeout)’ ‘코 컷어(Cocos)’ ‘자, 피 허트려(피자헛)’ ! 같은 낯선 간판 외식당에서 카드 긁어대는 모습이 토끼장에 넘친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다니고, 겉만 화려하고 자극적인 디자인이 좋게 느껴지는 동물 사회가 되었다.

이런 신판 외국문물 수입 파동 때 새로운 어우동 사건이 터진다. 어느 화방에서 근무하던 여 화원이 신분상승 욕망에 사무쳐 성균관 교수가 되고자 한다. 그니는 우선 다른 토끼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사전조사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대부 관원이나 대제학들을 속일 수 있는지 연구한다. 항간에 나도는 가짜 얼굴 만들기 비법을 전수하기도 한다. 그니는 그 방법이 너무 쉬운 것에 놀란다. 외국 토끼장에 있는 서류가 서로 소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면 되었다. 우선 멋진 하얀 털을 자랑하면서, 타인들이 요구하는 따스함을 여성답게 보다듬어 주면 되었다.

가면쓰기가 너무 쉬웠다. 아무도 자기 얼굴을 보려고 가면을 벗기지 않았다. 가면 벗으라고 합방하기 전에는, 따스하게 포옹하며 애교 부리면 만사 오케였다. 그들은 능동적인 애교의 구사력을 ! 능력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그녀는 너무도 쉬운 신분상승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사회가 이렇게 작은 가면에 잘 놀아나다니!

그녀는 문득 재야의 토끼장에 있으면, 봄날 햇살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가면을 벗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좀 더 안전한 실내가옥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성균관의 상량에 올라가면, 아무도 자기 어전에 얼씬 거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한번만 더 가면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마침내 자기 모피에 굽실거리는 남정네들에게 흰 꼬리를 흔들면서, 자기만의 연구실 속에 처박힐 수 있었다. 그러나 꼬리를 흔들면 비슷한 꼬리를 뽐내는 자들이 질투를 하는 법. 문제는 항상 초록의 동색에서부터 싹튼다. 적을 미워하는 제일 손자병법은 올라간 나무를 흔드는 것이다. 정치꾼처럼 올라간 나무가 권력의 덩치로 굵어져 있으면, 흔들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리디 여린 하얀 암토끼가 올라간 개암나무는 조금만 흔들어도 휘청거린? ?

그녀가 수입한 가면의 원산지를 조회한 아첨꾼과 적대자들은 그녀의 가짜 원산지 증명서를 발견하고는 쾌재를 부른다. 어우동을 제치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갈 좋은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산지 증명서가 잘못되었기에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먼저 사약을 받지 않기에 안심을 한다. 그리고 장안을 한바탕 휘저어본 기생월주의 기분을 향유하였기에 자신감이 든다. 별 거 아닌 세상살이에 어디 가서 못 살 것인가 위로도 해본다. 속은 놈들이 바보지, 자기는 여전히 때깔 고운 흰토끼라고 자위해본다. 어디 가서 못 살 것인가! 가면 쓰고 살아야 하는 이 숲속 토끼나라가 우습게 느껴진다.

자기들 가면을 보지 않고, 남의 가면성만 들춰내는 허식이 가소롭다. 그래서 그니는 발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며 달나라? ?올라간다. 그리고는 집토끼들을 밤마다 내려다보는 달나라 신토끼가 되었다. 그녀는 숲속의 예 일대와 동쪽나라 대학의 갓 쓴 중머리와 베레모 쓴 화쟁이들을 주무른 신정 아줌마의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