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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선과 경전철은 ‘역사의 아이러니’

   
 
1970년대 초, 기자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이따금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차소리에 아침 잠을 깼던 기억이 있다. 그땐 솔직히 기차가 뭔지도 몰랐고, 본적도 없었기에 무슨 괴물소리쯤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기자가 지금까지 대대손손 살고 있는 운학동 첩첩 산골까지 울렸던 기적소리는 덩치 큰 동물이나 괴물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물에 대한 분별력과 기억력이 생기기 시작했을 무렵 부모님을 따라 나지막한 산등성이 몇 개를 넘어 양지면 송문리에 있는 외가엘 가게 됐다.

급기야 거기서 외가댁 앞 철로를 지나가는 검은 괴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놈이 내는 괴상한 소리도 희한했지만, 검은 연기까지 내뿜던 커다랗고 시커먼 덩치를 보면 신기함보다 두려움이 압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산골 아이가 목격한 첫 번째 문명이었기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보았던 덩치 큰 괴물은 지금까지도 유년의 기억을 떠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기차는 수원~여주(73.4km)를 오가는 협궤열차였다. 기자에게 있어 수여선에 대한 추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각종 역사기록과 자료를 통해 수여선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 수여선은 단순히 지나간 추억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여선은 원래 일제강점기 시절 이 땅의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일제는 여주와 이천 등지에서 수탈한 쌀과 석탄을 수여선 열차로 수원까지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수인선을 이용해 인천으로 옮겼고, 인천항에서는 선박으로 일본 본토까지 가져갔다고 한다.

1930년에 개통해서 1973년까지 운행됐던 수여선. 해방이후엔 지역민들의 삶의 애환과 희망을 동시에 실어 날랐던 대중교통수단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60대 전후의 세대들은 지금까지 수여선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1973년까지 운행됐던 협궤열차였기에 사진기록도 많고, 철도박물관엔 당시 운행되던 수여선의 일부가 남아있을 정도다.

그런데 수여선이 운행 중단된 지 20년도 못돼서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물론 수여선 운행이 중단되기 직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따라서 당시의 이런 저런 상황에서는 중단이 어쩔 수 없었는지 몰라도, 미래를 보지 못했음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용인시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20년 만에 수도권의 중심도시로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교통대란 위기를 맞게 됐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 궁여지책으로 내 놓은 대책이 경량전철사업이다. 용인시가 캐나다 봄바디사에서 들여오는 경전철 에버라인(Ever Line)은 불과 18km지만, 무려 7000억 원 가량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와서 “최소한 철도부지 만이라도 남겨 놓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용인지역은 지금도 곳곳에서 수여선이 다니던 철로 흔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철로 부지는 오래전에 매각된 상태지만, 경전철 공사가 한창인 용인시를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30년 전에 아쉽게도 폐기처분된 수여선 철로 흔적과 경전철 교각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용인시를 바라보면 웬지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