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새벽안개가 자욱한 운학천변을 걷다 보면, 이곳이 왜 용인의 ‘마지막 허파’로 불리는지 실감하게 된다. 맑은 물소리와 온갖 새들이 운집하는 곳. 몇 년 전부터는 반딧불이와 수달이 자주 목격되기도 하고, 철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니 보행자와 러너, 라이딩족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니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운학천은 삭막한 도심 개발 속에서도 묵묵히 생태계를 지켜온 용인의 자존심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이 지친 몸과 마음을 기대는 치유의 성소(聖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 역시 매일 아침 이 길을 걷거나 뛰는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 도사린 서늘한 공포를 목도하곤 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운학천변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아찔한 곡예’ 때문이다. 이곳은 명색이 자전거 도로지만, 실상은 수십 년 전 농로에 포장만 덧씌운 기형적인 길이다. 국지도 57호선에서 호동 방면으로 운학천 교각을 넘나드는 차량의 추돌사태가 자주 목격되는 곳이다.
그런데 도심을 둘러보라.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예산 낭비성 공사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행정 편의주의와 예산 소진의 전형이다. 반면, 정작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운학천변은 어떠한가?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 수년째 ‘예산 부족’과 ‘검토 중’이라는 핑계 속에 방치 중이다. 넉넉한 예산을 들이부어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도심 치장에 골몰할 때, 용인의 허파인 이곳은 위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천을 가로지르는 교각 부근은 사각지대다. 굽은 도로 탓에 마주 오는 차량과 자전거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보행자는 피할 곳이 없어 둑방 아래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사망 사고가 나야만 시청이 움직일 것이냐”는 주민들의 절규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는 행정의 무관심이 빚어낸 비명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안은 거창하지 않다. 성남 탄천이나 분당의 사례처럼, 하천 사면(비탈면)을 활용해 자전거 전용도로(혹은 보행자 전용 데크) 등을 설치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동선을 차량과 분리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토목 공사가 아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지’의 문제다.
진정한 ‘품격 있는 도시’는 화려한 마천루나 번쩍이는 보도블록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이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 걷고 싶은 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세심한 배려에서 나온다.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는 ‘사후약방문’식 행정은 이제 멈춰야 한다.
운학천은 용인 시민들에게 남겨진 소중한 유산이다. 이곳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이나 보행자들이 더 이상 차를 피하려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도록, 용인시는 지금 당장 책상머리 행정을 멈추고 현장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매일 이 길을 바라보는 주민이자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