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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용인신문 창간 33주년 기념

아기는 모든 걸 기억한다?

 

용인신문 |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음악, 임신 중에 벌어진 사건, 부모의 대화까지 태아가 모두 기억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부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지만, 뇌과학의 시선에서 보면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과장이다.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은 해마다. 해마는 경험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고 꺼내는 창고 구실을 한다. 하지만 해마는 태어날 때 완성된 구조가 아니다. 출생 후에도 오랜 기간 발달을 이어가며, 생후 2~3세가 지나야 비로소 에피소드 기억을 온전히 저장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유아기 이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는 ‘소아기 기억상실’을 겪는다. 태아가 임신 중 사건을 마치 소설처럼 기억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발달 과정을 무시한 과장이다.

 

그렇다고 태아가 백지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임신 16~20주가 되면 청각 수용이 가능해지고, 반복되는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소리를 똑같이 듣는 것은 아니다. 청각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고음역대는 잘 들리지 않고 저주파에 더 민감하다. 실제로 자궁 속에서 가장 강하게 들리는 것은 엄마의 심장 박동, 혈류의 울림, 위장의 소리 같은 내부 리듬이다. 외부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일부만 전달되어, 선율 전체가 아니라 리듬감 정도에 반응하는 수준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적 과장이 끼어든다. “클래식을 들려주면 IQ가 오른다”는 ‘모차르트 효과’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태아가 음악의 의미를 이해하거나 지능을 높이는 방식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일정한 리듬에 안정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사실은 “태아에게 최고의 환경을 주어야 한다”는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언어로 포장되었고, 음악 CD, 태교 교재, 고가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태아의 청각 발달을 곧바로 기억과 연결하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태아가 부모의 싸움을 기억한다거나, 엄마의 불안을 서사처럼 간직한다는 설명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 의미 기억은 언어와 개념을 맥락 속에서 저장하는 고등 기억 체계인데, 이는 해마와 대뇌 피질의 정교한 연결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회로는 출생 후에도 몇 년간의 성숙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작동한다. 태아가 감각 자극에는 반응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기록하는 수준의 기억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태아기의 경험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엄마의 목소리, 안정된 생활 리듬, 특정한 음악은 신경계에 ‘익숙함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출생 후 아기를 달래고 안정감을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태아의 뇌는 ‘스토리를 기록하는 기록자’가 아니라, ‘환경의 패턴을 학습하는 반응자’다.

 

따라서 “태아는 다 기억한다”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과학적으로는 틀린 문장이다. 태아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환경에 반응한다. 중요한 것은 ‘태아가 엄마의 삶을 다 기억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태아가 편안한 리듬과 안정된 환경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태교의 가치는 지능 상승 신화가 아니라, 안정된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데 있다. 과장된 신화보다 담백한 과학이 부모에게 더 큰 위로와 지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