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윤석열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준석 대표의 당무 거부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던 국민의힘은 후보가 울산으로 내려가 대표와 회동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을 수락하면서 국민의힘은 12월 6일 예정대로 선대위를 발족시켰다. 선대위 구성을 둘러싼 갈등은 노선을 둘러싼 대립이자 권력투쟁이었다. 윤핵관(윤석열후보핵심관계자)으로 불리던 후보 측근들은 김종인이 오면 상왕이 된다는 논리로 선대위를 소위 3김체제(김종인 김병준 김한길)로 권한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김종인은 선대위는 의사결정이 신속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윤-김은 결별하는 듯 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카드를 다시 살려낸 것이 이준석이다. 이 대표는 4일간 영호남을 돌며 윤 후보를 압박했고, 당내 수도권을 중시하는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에 동조했다. 후보와 대표의 충돌이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은 신선한 느낌마저 받았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충돌하면 승부가 뻔하다. 하지만 유력 대선후보와 대표가 충돌하면 명분이 앞선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이번에 입증되었다. 이준석은 이대로 가면 대선 필패다
[용인신문] 정치신인 윤석열이 단기간에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것은 가히 기네스북감이다. 그는 6월 29일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당내 경선을 거쳐 제1야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것이 11월 5일, 정치참여 4개월여 만에 이루어낸 결과이다. 아홉 차례 사법시험 도전 끝에 합격한 윤석열은 짧은 기간의 변호사 생활을 제외하고 줄곧 검사로 복무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全無)한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조국 사태로 회자되는 현 정권과의 갈등과 대립의 산물이다. 정치에 입문한 윤석열은 숱한 구설에 휘말렸다. 주 120시간 노동,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 나라들이나 하는 것” 등의 발언은 20~30대 청년층의 냉소를 받았다. 여러 실언(?)이 많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전두환 옹호 발언과 개 사과 사건이다.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는 잘했다….” 라는 발언은 실언이라 치부할 수도 없는 잠재된 윤 후보의 의식 세계를 표출한 것이다. 11월 23일 윤 후보의 발언으로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전두환 씨가 사망했다(윤 후보는 조문 의사를 밝혔지만, 주변의 만류로 번복해야 했다). 군사 쿠데타와 광주시민 학살이
[용인신문] 1919년 2월 26일.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안국동 보성사에서 독립 선언서를 인쇄 중이었다.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이 이를 발견했다. 최린이 신철을 만나서 돈을 주며 “당신은 조선 사람이냐, 일본 사람이냐”라고 묻고는 “제발 며칠만 입을 다물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돈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나 신철은 이를 묵인한다. 체포된 신철은 유치장에서 숨겨뒀던 청산가리로 자살했다. “루스벨트여! 귀가 있으면 들어보라. 내가 윌슨의 자결주의에 속아 천황의 역적 노릇을 하였다. 이 절치부심할 원수야! 이제는 속지 않는다. 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라!”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했던 최린이 한 말이다. 그는 “내선융합(內鮮融合)·공존공영(共存共榮)이 민족 갱생의 유일한 길”이라며, 중추원 시국 강연 반으로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전국을 누볐다.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사장으로 그 역할에 충실했던 최린은 ‘악의 평범함‘을 넘어선 민족 반역자의 삶을 살았다. 그가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자신의 친일 행위를 시인하고 참회를 했다지만 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776년 4월, “과인은 사도세자의
[용인신문] <오징어 게임>을 뒤늦게 정주행 했다. 끔찍했고 슬펐다. 충격이었다. 컴퓨터 게임이 전쟁을 게임으로 즐기는 거라면 반대로 오징어 게임은 우리의 놀이를 리얼 생존 게임으로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며 필자는 또 다른 영화 「시민 케인」이 생각났다.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크게 성공한 사업가인 케인은 죽는 순간 “로즈버드”라고 외치고 숨을 거둔다. 기자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케인의 삶을 역추적 해나간다. 아내와 자식의 죽음, 애인의 자살, 정의롭고 혈기왕성했던 20대와 탄광촌에서의 가난했던 유년시절까지. 그러나 집요한 기자도 로즈버드를 알아내지 못한다. 결국 케인의 유품들은 경매에 팔려나가고 남은 물건들은 소각시키기로 한다. 그 곳에 케인이 유년시절 탄광촌에서 타던 눈썰매가 있었다. 썰매를 불더미에 집어넣을 때 그 썰매 밑바닥에 ‘로즈버드’라고 씌어 있었다. 오직 관객만이 로즈버드를 볼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에서 1번인 우일남 노인에게도 로즈버드는 유년시절이었던 것일까. 억만장자의 삶도 진짜로 의욕이 없이 심심할까. 드라마 시작 부분에서 게임은 누군가의 실제 게임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경마장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고 또
[용인신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10월 10일 이재명 후보는 50.25%의 득표로 1차 투표에서 당선되었다. 이 후보의 승리는 경선기간 내내 예상된 것이었고, 이변은 없었다. 역대 대통령선거의 경우 후보가 선출되면 컨벤션효과로 인한 지지율 상승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컨벤션효과가 미미했다. 이러한 현상은 경선 후유증과 대장동 사건의 여파로 해석된다.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당면과제는 정체된 지지율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추세는 국민의힘 후보가 선출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이 후보가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권이 바짝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에 바란다. 대장동 의혹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보면 기본소득제를 제외하곤 명분과 이슈를 선점할 쟁점이 별반 없다. 집권당 후보답게 굵직한 공약을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거전략이다.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의 공세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스스로 수렁에 빠지는 패착을 범하기 쉽다. 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당에 맡기고 후보는 국민과 국가, 민족의 공존공영, 인류의 미래를
[용인신문] 아주 오래전 일이다. “수지(水枝)로 이사했으니 수지(收支) 맞을 겁니다.” 당시만 해도 수지는 아주 조용한 동네였다. 말 그대로 동네 한 바퀴, 풍덕천동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용인이 아닌 수지에 산다는 말을 더 자주 했다. 얼마 전 일이다. ‘광주대단지 사건’ 50주년 기념 강의를 촬영하려고 성남시청에 다녀왔다. 녹화가 끝나고 담당자가 물었다. “성남 어느 동에 사세요?” “용인에 살아요.” 5000여 공무원들에게 성남시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강의였는데, 강사가 용인사람이라서 아쉬웠을까. 지난주 일이다. “선생님, 백신 2차 접종 끝난 분들하고 답사 추진해 주세요.” “그럼 용인을 돌아볼까요?” “용인에 갈 곳이 에버랜드 말고 또 있나요.” 어쨌든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 용인의 역사 유적지들을 다녀 보기로 했다. 역사 강사의 생각으로 말한다. 수지에 살면서 용인에 대한 동질성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이것이다. 수지에는 용인시 지역 안내도가 없다. 관내 유명 관광안내도를 비롯한 역사 유적지 안내도와 같은 설치물도 본 적이 없다. 며칠 전 일이다. 지방 강의에 다녀오다가 정체된 고속도로를 피해 처인구 쪽의 국도를 이용했다. 그렇다.
[용인신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현재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후보가 과반수를 득표하면 10월 10일 확정된다. 반면 2위 이낙연 후보가 과반수 득표를 저지한다면 늦어도 10월 15일 결선투표로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수도권 경선의 최대변수는 역시 대장동 주택개발에 이재명 후보가 연루되었는지가 최대변수다. 드러난 정황만으로 볼 때 화천대유의 투기에 야권의 연루자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LH공사의 신도시 개발에 공사임직원이 대거 연루된 것을 경험한 수도권 민심은 이 후보와 성남시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되는 민주당 경선을 감안하면 대장동 당락을 가르는 변수가 안될 수도 있지만 경선 막판 1주일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만약 이재명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보도가 터진다고 가정하면 크게 요동칠 수도 있다. 현재 민주당 경선 후보는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박용진(득표순)이며 대장동 주택개발 문제는 후보 확정 이후에도 살아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야권의 대선후보 경선은 국민의힘 11월 5일, 정의당 10월 6일 확정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홍준표 후보가 선두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유승민 원희
[용인신문] 열 받음, 걱정, 안도, 절망, 탄식……. 대통령 예비 후보자 관련 소식들은 나를 흥분시킨다. 충돌하지 않는 단어들인데, 으르렁거리며 악다구니 소리를 지르게 한다. 어떤 후보는 ‘국정 소신과 운영철학’보다 반대 정서를 이용한다. 또 어떤 후보는 ‘나 아니면 안 된다’라고 외쳐댄다. 선거철마다, “그 정도면 양호해”로 합의해 주는 선거문화의 불감증도 여전하다. 다수의 인간은 원망(願望)보다 희망을 앞세운다. 희망은 구조화되어 견고한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욕심을 포장하여 신념이라 한들, 결국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이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희망을 꿈꾸는 것’은 강력한 유물론이며,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하는 신앙은 관념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혹자(或者)와 또 어떤 혹자(或者)도 신앙인은 아니다. 신앙은 겸손과 포기를 통해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돈독한 신앙인이라면, 원수를 저주하는 발언은 그만하라. 신이 경고했지 않은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고.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라는 마태복음 5장 38절의 구절과 “악한 자를 대적 하지 말라,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의 39절은 역
[용인신문] 최근 한 장의 사진에 여론이 들끓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법무부 차관과 그 뒤에서 무릎을 꿇은 채 우산을 받치고 있는 공무원 사진 때문이었다. 21세기 한국에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는 풍경이 사진에 찍히자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이 ‘황제 의전’을 받고 있는 증거라며 공격했고 야당도 청와대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과연 이런 풍경이 가능한 것일까하는 상식적인 의문이 든다. 필자는 오랫동안 현장 사진기자를 경험해,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런 것은 판단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충북 언론인들이 진실을 알렸다. 취재하던 방송 카메라기자와 신문 사진기자들이 우산 든 공무원을 비키라며 만들어진 상황이고 차관은 뒤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공무원이 무릎까지 꿇은 것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 상황 자체를 거부하지 못한 공무원들도 문제지만, 기자들은 자신들이 연출한 풍경을 차관 비난하는데 그 사진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문제적인 상황을 만들고 그 문제를 엉뚱한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짜 뉴스’의 전형일
[용인신문] 임기 8개월여를 남겨둔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이 국민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 난민 378명을 태운 특별기가 인천공항에 도착,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생활에 들어갔다. 정부는 카불 공항에 C-131 공군 수송기 3대를 보내 아프간 대사관과 의료지원단 등에서 협력해온 현지인 391명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긴급 호송했다. 건강 상태가 염려되는 13명은 현지에서 치료를 받고 지난 27일 입국했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하자 서방에 협력해온 현지인들은 보복을 피해 대탈출에 나섰고, 이들을 고용했던 나라들은 자국으로 대피시키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대응하여 이들을 신속하게 구출할 수 있었다. 한국행을 선택한 아프간인에는 100여 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 여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극심한 여성 차별정책으로 서방은 물론 이슬람권의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가 391명의 현지인을 수용하기로 한 결정은 정말 잘한 일이다. 정부의 결정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주의적 결단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역대 정부와 국민은 난민수용에 극도로 인색했다. 예맨난민 수용문제를 두고 보여준 국민
[용인신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 힘’에 입당했다. 윤석열의 입당으로 국민은 힘은 대통령 후보 경선 일정을 확정했다. 국민의 힘은 8월 30일 경선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9월부터 본격적인 후보 간 경선에 돌입하여 11월 9일 대통령 후보를 최종 선출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은 36.3% 지지율을 기록, 여야 후보를 통틀어 1위에 올라섰다. 이런 결과가 일시적일지 지속적일지는 전적으로 윤석열에게 달려 있다. 윤석열은 정치 참여의 명분을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여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으로 삼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제일의 목표로 설정했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를 들었으나 주목할만한 것은 별로 없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진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자유주의라고 쓰는 것이 올바르다. 자유주의는 프랑스혁명 전후 정립되었는데 영국의 휘그당이 강령으로 삼아 현대 민주주의의 주요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라고 정의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평등과 공존을 근본으로 하는 인도주의를 총칭하는 개념
[용인신문] 이준석의 등장은 상당히 극적이었다. 2012년 27세의 나이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된 이준석은 박근혜의 대권행보에 구색 맞추기용으로 차출되었다. 청년 이준석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 이준석이 그 당의 대표가 되었다. 노원을에서 국회의원에 출마, 안철수의 대항마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이준석은 연달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그의 정치 여정은 고단했다. 언제 그만둘 것인가 그 시기만을 남겨둔 듯했던 이준석이 국민의 힘 대표에 출마했을 때 필자는 가능성이 없는 도전이라 여겼다. 한국 정치에 흥미를 잃어 뉴스도 거의 보지 않아서 그의 대표당선은 뜻밖이었다. 아무튼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국민의 힘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파격이었다. 진중권 씨는 이준석의 전면 등장에 기대 반 우려 반의 논평을 했다. 분명 이준석은 젊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정치의 변화를 주도할만한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 그의 사고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육체적으로는 청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완고한 기성 정치인을 보는듯하다. 그렇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변화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