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시드니에 히치하이킹으로 내려왔다. 남미에서는 시도해 볼 엄두도 못 냈던 히치하이킹. 길에서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탄다. 유럽에서는 히치하이크하기 쉬운 위치를 표시해 놓은 위키(사전)도 있을 정도로 여행자들이 자주 시도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10시간 떨어진 시드니 근교. 몇 번의 작은 히치하이킹으로 큰 트럭들이 멈춰 쉬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목표는 시드니나 멜버른으로 가는 트럭! 운전자들에게 가서 인사하고 물어봤다. 처음에는 떨렸지만, 몇 번의 인사 후에는 편안하게 물어볼 수 있었다. 우리 여행하고 있는데 시드니 쪽으로 가? 회사에 소속된 트럭들은 회사 내규로 태워줄 수 없다고 했다. 두 시간 여의 시도 끝에 그리스에서 온 코스타를 만났다. 육 년이나 호주에 살았지만, 여전히 짧은 영어로 우리를 태워줬다. 그리스 음악을 들으며 한 번에 시드니까지 올 수 있었다. 트럭에서 내려다본 차들은 엄청 작아 보였다.
용인신문 | 움직이는 집(우리의 자동차이자 집)이 삐그덕 된지 좀 되었다. 얼터네이터가 차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해서 바꿔야 했다. 1997년에 만들어진 자동차라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다. 어제는 요상한 기름 냄새가 나서 엔진오일을 보충했다. 마침내 정비공에게 가는 길, 차체가 덜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아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도하며 가고 있었다. 15분 남았다! 할수 있어! 하는 순간 의자 밑 엔진에서 하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속도로 위. 으악 일단 출구로 나가자!! 연기는 점점 심해지고 내려와 일단 차를 세웠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렉카를 불러 정비공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집없는 생활 시작이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용인신문 | 예전부터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생활은 밴라이프였다. 봉고차 뒤를 고쳐 침대와 작은 부엌, 짐들을 넣을 서랍들을 만든 차. 어디라도 주차하는 곳이 앞마당이 되는 차. 호주에 오니 이렇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지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는 삼백 대가 넘는 차가 온다. 모두 차에서 지내는 건 아니지만 최소 절반 이상의 차들은 침대를 가지고 있다. 땅이 작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홉 시간씩 하루 만에 운전하는 호주에서는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주차할 곳이 많아서 그런지, 일이 년만 지낼 수 있는 비자로 온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친구 덕에 그 맛을 봤다.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주차하고 아침 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꽤나 행복하다. 숙소 값이 들지 않으니 좋은 방식의 여행인 것 같다.
용인신문 |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요즘이 내가 그렇다. 맞게만 보이던 것들에 다시금 의문을 가지게 되고, 다음 목적지를 어디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믿었던 것들을 모르게 되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친구가 운전을 하면 나는 옆에서 길을 찾는다. Director, 감독이라는 뜻으로만 외웠던 단어의 뜻은 길을 가르키는 사람이었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 원하는 장면이 무엇인지 생각을 가지고 안내하는 사람.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 사이에서 다들 길을 어떻게 찾고 있을까 궁금해 한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기를 지나 질문이 가득한 시기가 되었다. 이번 시기는 어떻게 지나갈까.
용인신문 | 같이 지내는 친구가 아프다. 벌써 엿새째. 잘 먹지도 못하고 열이 높다. 여행다니며 아파본 기억이 있어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플 때 가장 서러운데. 그 와중에 다투고 말았다. 내 잘못이라고 느껴졌다. 누군가와 부딪치고 내가 잘못했다고 느끼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문제가 생기려 하면 피해가고 그냥 놓아버리곤 했는데 이번엔 내가 고집을 부려서 생긴 일이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울때면 정말 어디로 숨고 싶고 시간을 되돌려서 한 행동들을 주워담고 싶다. 신뢰를 잃었을 때는, 막막하고 고치는게 가능할까 싶다. 미안한 마음과 섞인 불안함과 체념 그리고 다짐. 지난것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애써 생각해본다.
용인신문 | 잠시동안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호주로 돌아왔다. 다시 찾은 서울은 어색했다. 고작 호주에서 두달밖에 지내지 않았지만, 벌써 집처럼 익숙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지난 두달간 두개의 페스티벌, 여러 다른 사람들, 그리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눈을 뜨면 몇 보 걸어 계곡에 뛰어들어 잠을 깨고, 하루의 흐름에 따라 청소하고 밥을 하고 음악을 듣는 이 삶이 좋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기분은 참 이상했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일반적인 삶과 얼마나 멀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곧 지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여행을 나선다. 매일의 풍경이 바뀌는 자동차에서의 삶.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