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여름엔 봉숭아물이지! 한국에 들어왔다. 마음 놓고 기대며 살고 있다. 맛있는 밥을 먹고, 밭일을 가끔 돕고, 계곡에 가 수영을 하고. 어제는 봉숭아를 한아름 뜯어와서 봉숭아물을 들였다. 남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소꿉친구도 며칠 놀러 와서 그때마냥 놀고 있다. 답답했던 것들 내려놓고, 비닐로 묶어 느낌이 이상한 손가락을 참으며 잠에 들고 났더니 예쁜 다홍색으로 물든 손끝. 아 여름이다.
용인신문 | 태국에서는 한 달간 방을 구해 지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안 하기 모드에 돌입. 다음 길을 모르겠고 우울할 때는 일단 멈추고 좀이 쑤실 때까지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는 기간을 가지곤 했다. (물론 최소한의 것들은 한다.) 그러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이 생기고 그 에너지로 다시 시작하는 루틴이었다. 어라, 이번에는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게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하루하루 잘 보내고 싶었다. 그게 뭘까? 계속 찾고 있지만 왠지 비슷한 곳에도 도달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용인신문 | 10년 전 태국 여행을 할 때 만났던 사람이 있다. 방콕에서 가장 큰 주말 시장인 짜뚜짝. 동대문종합시장을 펼쳐 일 층에 깔아놓은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작은 수공예 가게들이 모여있다. 미로처럼 엮인 길을 헤매던 우리들은 레게음악이 흘러나오는 한 가게를 마주쳤다. 신난 우리들은 춤을 추며 들어갔고,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몇 살이냐고 묻고, 순식간에 타위의 가족들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급기야는 한 명씩 어울리는 옷을 골라 선물해 주기까지 이른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환대에 어안이 벙벙해 했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에 이후 방콕에 갈 때마다 그 집에 들러 지내게 되었다. 한동안 태국에 갈 일 없어 연락이 끊겼다가 5년 만에 연락했어도 너는 내 한국 딸이라며 언제든지 집에 오라고 해준 타위. 그리고 신기하게 그대로인 집. 참 인연이란 알 수 없다.
용인신문 | 태국에는 유독 한국사람들에 입맛에 맞는 메뉴들이 많다. 고수를 제외하면, 입맛 까다로운 어른들도 즐기실 수 있다. 닭죽 같은 까이만까이, 족발덮밥 카우카무, 카레국수 카오소이, 항정살 구이, 갈비탕, 약간 시큼한 맛의 똠양꿍. 볶음국수인 팟타이와 볶음밥은 2500원이면 먹을 수 있다. 밀크티는 1500원. 아직 이 가격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엄마와 여행을 할 때는 둘이서 빼놓지 않고 시켰던 메뉴가 있는데, 바로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이다. 시큼하고 맵싹한 야채무침인데, 마치 겉절이처럼 입맛을 싹 돋궈 준다. 또 다른 좋아하는 요리는 뿌팟퐁커리. 게껍질이 단단하지 않은 말랑한 게를 커리에 함께 볶아서 밥과 함께 먹는 요리다. 음식의 즐거움이 여행을 더 다채롭게 만든다.
용인신문 | 태국에 왔다. 태국은 내 첫 배낭여행지로, 고등학교 졸업 직후 가장 친한 친구들이랑 여행했다. 12월 31일에 서울에서 오는 비행기를 타서,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또 남부로 가는 12시간짜리 밤버스를 탔다. 지금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지옥의 스케줄이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자다깨다 자정이 지난 걸 보고 서로에게 “스무살이 된걸 축하해-!” 하며 씩 웃고는 다시 잤다. 빨빨거리며 남부부터 북부, 라오스까지 다녔다. 처음 만나는 새로운 음식들과, 친절한 사람들, 마법같은 만남들이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용인신문 | 계속 이동을 하며 지낸 지 거의 2년차다. 매일 바뀌는 상황과 해보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는 날들이었다. 매일이 모험처럼 지나갔다.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와 문화들. 지난 두 달은 이제 어딘가에 진득하니 있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완전한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많이 해소된 것 같다. 바람은 충족되면 새로운 형태로 바뀌나보다. 지금 내가 바라는 건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루틴을 되찾는 것. 여행을 시작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은 게 달라졌다. 그래서 한국에 다시 돌아가는 게 조금 무섭게도 느껴진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게 느껴질 것이고, 그런 지점들이 기대된다.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 징검다리 역할로 태국 치앙마이에 한 달 동안 방을 빌려 지내고 있다. 첫날의 일정은 망고와 람부탄, 망고스틴 사기. 호주에서 물 한 병이 4000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망고 1킬로 1500원은 믿기지 않는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