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내 31개 시군에서 발행되는 지역주간신문 40개사의 연합체인 경기도지역신문협의회(회장 이영호)는 도민들의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후보들의 정책비젼을 전달하고자 도지사 도교육감 출마예정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네 번째 순서로 3월 22일부터 양일간 월드리서치가 경기도 거주 만19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전화면접조사,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 3.1%)에서 1위를 차지한 석호현 예비후보(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4월 8일 수원 소재 선거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주요내용(편집자 주) @먼저 경기도민들에게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1250만 경기도민 그리고 학부모님! 화사한 봄꽃을 즐기시는 행복함이 가득한 계절입니다. 행복플러스 경기교육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님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석호현 인사드립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경기도교육감 출사표를 던진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또한 3대 공약으로 안전한 학교, 건강한 학교, 재미있는 학교를 제시하셨는데 상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배워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로버트 폴검
1637년 1월 30일은 조선 역사 최악의 수치스런 날로 기억됐다. 용포를 벗고 청의(靑衣)를 입은 인조는 백마(항복의 표시)를 타고 남한산성 서문을 나섰다. 송파 삼전나루에서 청 태종 홍타시를 향해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렸다. 세자를 비롯한 조선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울었다. 청 태종은 항복 의식 중에 고기를 개(犬)에게 던져 주었다. 항복한 조선은 개였으며, 고기는 황제의 은전이었다. 무능한 왕은, 리더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왕은 세 번이나 궁궐을 버렸다. 1623년 반정을 성공하여 중립외교의 광해를 몰아 낸 서인은 권력을 장악했지만 민심을 장악하지 못했다. 1624년 이괄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삼전나루에서 그토록 무시하던 오랑캐에게 항복한 인조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백성들의 눈이 많은 남대문(숭례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서대문(돈의문)으로 우회했다. 돈의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한 노파가 손뼉을 치며 통곡했다. 강화도에서 검찰사 등이 술판을 일삼아 백성들을 다 죽였습니다. 누구의 허물입니까. 네 아들과 남편이 모두 적의 칼날에 죽고 이 한몸만 남았으니 하늘이여! 하늘이여!「연려실 기술」에 그날의 참상을 기록해 놓았다. 구중궁궐을 버
세월호 침몰 추모시 애가(哀歌) 이경숙 오늘은 금방 울음을 토할 슬픔이 더 많다 슬픈 의식, 온몸으로 파고드는 아픔이 온다 인간(人間), 본연(本然), 목숨! 선하고 순박한 너를! 아픔은 낮추고 효심(孝心)을 올리는 기적을 발 한번 들지 않은 이 땅 서로의 마음을 허물어 안으며 가슴에 묻혀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애(愛)를 끊는 절명(絶命)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시커멓게 타버린 죽음의 공포에서 사위어 가는 것들의 우울함으로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할 이 있다면 깊숙이 숨어버린 정령(精靈) 풀어주어라! 의심 많은 손아귀에서 부서버린 숫눈 채운 청춘 동정인 채 꽃진 근심은 어찌하랴 양심을 통째로 버리는 비굴한 사람도 있고 키를 잡았으나 영혼이 없는 이도 있다 마지막 구명 조끼를 양보하는 의인도 죽어지고 목숨만 살아 혼미한 정신은 파도는 계속 잠긴 울분 서러움이 아린 응어리를 만들고 쑥쑥 자라는 너의 접힌 꿈을 어찌하랴! 눈물의 바다 너를 떨림이 마음을 끌어안지 못한 채 온 몸으로 파고드는 비린 통증 매만지는 너를! □ 약력: 이경숙 시인은 1950년 경북 성주 출생이다. 지체장애 3급으로 현재 용인 이동면에 있는 서울시립영보자애원에서 거주하고 있다. 20
몇 해 전 필자가 자치센터 주민을 상대로 동양의학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어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간이 좋지 못하고 가래가 많이 끓는데 어찌해야 하냐고 물었다. 어르신께선 마르고 피부가 검고 옹고한 가래가 끓으며 나이가 지긋하신 것을 감안하여 치담(治痰: 담병을 치료한다는 뜻)의 성약(聖藥)인 신기환(腎氣丸)을 잡숴보시라고 권해드렸다. 그랬더니 돌연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에도 필자의 외할아버지로부터 신기환을 처방을 받고선 기력을 회복했다면서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신기환은 육미지황탕에 오미자가 가미가 된 처방으로써 간을 보하고 신장을 보하는 대표 처방이다. 한의학에서 보는 신장은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와 같은데 노화가 진행될 수록 뿌리부터 마르기 때문에 노인분들 치료에 있어선 신장과 간을 보하는 부분이 중시될 수밖에 없다. 육미지황탕은 숙지황, 산수유, 산약, 택사, 복령, 목단피 여섯 가지 약재로 구성이 되어있다. 숙지황, 산수유 는 간, 신장을 보하고 산약은 비위를 보하는 작용이 있고, 복령과 택사는 신장의 사기를 배출하고 목단피는 허열을 제거한다. 여기에 폐금(肺金: 오행에서 금에 속하는 폐를 뜻함)을 보하는 오미자가
2015년 시행 예정인 용인고교평준화를 처인구 학생 수용 능력을 갖출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든지, 처인구를 제외하고 시행하든지, 학군 내 배정만 하든지, 아니면 전면 백지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처인지역 중학교 졸업자는 2800여명 일반계 고교 수용 능력은 1200여명 현재 처인구에는 중학교가 14개 있다. 반면 인문계 고등학교는 용인포곡태성고 등 3곳에 불과하다. 특히 남녀공학은 태성고교를 제외한 2개밖에 없어 여학생들의 경우 더욱 선택의 폭이 좁다. 수용인원을 보면 최근 처인구 지역 중학교 졸업자는 평균 2800여명에 이르고 있으나 일반계 고등학교 수용 능력은 1200여명에 불과하다. ◆천여명 원정배정 불가피 고교평준화는 진학대란화 고교 평준화가 추진될 경우 처인 지역에 배정받을 수 있는 순수 인문계 학생은 1200여명뿐이다. 일부 특목고 및 특성화고 진학자 등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처인구 외 기흥구나 수지구에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기흥구나 수지구 지역 학생들의 틈새를 뚫고 몇 명이나 정상적으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처인구를 벗어나는 것도 모자라 미달 학교를 찾아 나서야 하는 실정에 놓이게 돼 어느 학교에 배정될지 전
혁명과 쿠데타는 순간의 차이가 승패를 좌우한다. 역사에서 반란이라고 정의하는 모든 사건은 초반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담의 난도 그러하다. 비담은 김유신이 경주를 비운사이, 선덕여왕이 병으로 인해 정사를 제대로 돌볼수 없는 틈을 노렸다. 상대등 비담은 이찬 알천이 지키는 왕궁을 점령하지 못한다. 백제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전의 경험이 무수했던 알천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왕궁의 수비를 뚫지 못할 때 부터 비담은 실패한 것이다. 비담은 경주 인근 명활산성을 점령한 후 월성에 군대를 배치한 김유신과 열흘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하늘의 큰 유성이 월성쪽을 향하여 떨어졌다. 비담은 여왕이 패할 징조라며 반란군을 독려하였고, 옛부터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생각한 김유신 군이나 왕실도 크게 흔들렸다. 이에 김유신은 '길흉은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이며, 덕이 요사스러움을 이기는 것이 이치'라며 군대를 안심시켰다. 그런 후 허수아비에 불씨를 살리고 연에 달아 하늘에 띄워 보낸 후,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는 말을 비담군 진영에 퍼뜨렸다. 비록 믿기 힘든말 이었지만, 열흘간의 싸움에
사람팔자 시간문제라더니 조선의 25대 철종이 그러하다. 왕족이었지만 역적의 후손으로 태어나 유배지를 전전한 그에게 붙은강화도령이란 별칭부터 친근한 왕이다. 1849년 6월 헌종이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왕으로 옹립된 철종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수렴청정을 하던 대비 순원왕후의 지시에 따라 천주교 신자로 사사된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과 강화도에서 빈농으로 살다가 죽은 아버지의 기록이 세초(洗草)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이 빠져있을 때 추론을 더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실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 헌종이 승하한 이틀 뒤인 6월7일 영의정 정원용은 철종을 모시러 강화도로 떠났다. 그가 70여년간 쓴 「경산일록」엔 실록에 없는 그날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갑곳진에 이르렀다. 배에서 내리니 강화유수 조형복이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왕의) 생김새도 연세도 몰랐다내가 말했다. 이름자를 이어 부르지 마시고 글자 한 자 한 자를 풀어서 말하십시오. 관을 쓴 사람이 한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은 모(某)자, 모(某)자이고 나이는 열아홉입니다(대왕대비의) 전교에 있는 이름자 였다. 14살부터 5년동안 아버지도 없이 형과 함께 가난하게 살아가던
너무 일찍 와버린 더위에 벚꽃도 매화도 수줍음 무릅쓰고 활짝 웃고 말았다...튼실하고 알맹이 굵은 매실을 수확하기 위해 늦은 전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