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오늘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척된 문화적 전통은 콘텐츠 산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문화역량으로 인식되고 있다. 설화, 지명, 인물, 역사적 사건 등 지역 고유한 전통문화 속에 담긴 스토리에 상상력이 더해지고 사업 역량이 만나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 왔다. 반지의 제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대장금, 아바타 등 성공한 콘텐츠들 모두가 문화유산 원형을 기초로 개발되어 세계인의 공감을 도출한 예라 할 수 있다. 우리 용인은 지금까지 문화 정체성에 대한 조형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원천 소재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작 중요한 콘텐츠는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용인 문화유산 원형을 발굴하여 이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콘텐츠로 개발한다면 용인시만의 특화된 콘텐츠 자원을 확보할 수 있고 이것은 다양한 부문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콘텐츠 개발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문화원형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생각해 보자. 우선은 고대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인식되던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형성된 자원들이 있다. 대표적인 관방유적으로 할미산성이 있는데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내년 100주년 사용자 패스포트 서비스 민박제도 60개국 300여개 도시 숙식 서비스 국제화·세계화 소중한 인류 자산 [용인신문]“에스페란토 운동은 언어를 통한 세계평화운동입니다.” 지난 10월 선임된 ‘한국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o-Asocio)’ 서진수(강남대 교수) 신임 회장의 취임 일성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1971년도에 에스페란토 학습을 시작, 고등학교 1학년 때 Student Times에 ‘에스페란토란?’을 게재하고, 서울중고등학교 에스페란토연맹(ELSAM)을 창설했다는 서 회장. 일찍 에스페란토를 접한 그는 1984년 일본 칸사이 합숙에 초청 받은 이후 1986년부터는 유레일(유럽 철도)을 이용하여 1개월~2개월씩 방학 때마다 세계여행을 다녔다. 지금까지 무려 9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 유럽여행 한 달을 단돈 100만원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핵무기가 바로 ‘에스페란토’라고 했다. 이 언어 사용자를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에스페란티스토가 된 것이다. 서 회장은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과의 언어소통 덕분에 많은 역사 지식과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꽉 차 보였다.
· [용인신문]용인시는 ‘제2회 남구만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한정우(용인)씨의 ‘바람의 장지(葬地)외 6편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1일 남구만 신인문학상 운영위원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모인 총 712편의 응모작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심사해 수상작을 결정했다. 김윤배, 이경철, 손택수 본선 심사위원들은 “당선자 한정우씨의 당선작들은 시적 사유의 깊이와 명료한 이미지,세련되고 활달한 어법이 돋보였다.”며 “응모작 중엔 드물게 세계의 부조리와 날카롭게 맞서면서도 내성을 잃지 않는 균형감이 있고,「바람의 장지(葬地)」나 「마분(馬糞)」에서 보듯 묵직한 문명사적 제재들을 다룰 때조차 시적 부력을 잃지 않는 힘에 기대와 신뢰를 갖게 한다.”고 평가했다. 남구만 신인문학상은 ‘동창이 밝았느냐’ 등 시조 900여 수를 지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시대 문신 약천 남구만(1629~1711)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용인문학회가 주최하고, 용인시와 용인신문사, 의령남씨 문충공파 종중이 후원하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23일 오후 3시 용인문화예술원 마루홀에서 열리며 당선자에게는 상패와 함께 상금 500만원이 수여된다. 한편, 용인문학회는 1996년 창립한 문학
[용인신문]용인시는 지난 20~30년간 집단민원에 시달려 왔다. 가장 많았던 민원을 꼽는다면 내 집, 내 아파트 앞에서 벌어지는 산림훼손 반대였을 것이다. 이사 올 때는 한적한 시골이었고, 곳곳에 울창한 산림이 있었던 풍경이 눈앞에서 사라져 가니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처음엔 시골에서 농사 짓던 토지주들과 원주민들이 개발을 주도하던 현재의 LH공사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사실상 집단민원의 시작이었다. 정부가 수도권 200만호 주택건설을 발표하면서 준농림정책이 실시됐고, 그 결과 건설업자들이 한적한 시골마을의 농지와 임야를 사들여 마구 파헤친 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에 힘입어 20여 년 넘게 땅을 파헤쳤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백여 개의 초‧중‧고교가 생겼다. 수많은 간선도로가 만들어졌고, 서울에서부터 지하철이 연결됐다.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5층짜리 건물이 최고였던 용인지역에 초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섰다. 백화점과 국내외 유명 대형쇼핑몰이 들어설 정도로 거대도시가 됐다. 겉으로 보기엔 서울 뺨치는 초고속 성장도시다. 문제는 끊이지 않는 민원이다. 먼저 이사와 자리를 잡
[용인신문] “동방에 정기모여 수려한 조국/ 그중에도 산수 좋은 용인 내 고향/ 무성한 봉이 봉이 아름다운 들/ 흐르는 시내조차 수정 같고나” 이 노랫가락은 젊은 시절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할 때 외롭고 힘들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향수를 달래던 곡이다. 그 시절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를 때가 많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서울에서 용인으로 내려왔다. 그때만 해도 시골 인심의 푸근함을 느끼며 자리를 잡던 시절이다. 내 기억으로는 인구가 16여만 명 쯤이었다. 2년 정도 이런 저런 일로 당시 용인군청을 드나들다 보면 공무원들하고 거의 눈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랬던 소도시가 1996년 인구27만 여명의 시로 승격되었다. 용인서부권역에서는 급격하게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아름답던 용인시가 난개발이라는 오명을 듣기 시작했다. 개발은 계속되었고, 인구 100만이 넘는 수도권의 거대도시로 급부상했다. 30년 전의 용인은 먼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그야말로 신도시 용인이 되었다. 이제 인구 107만의 공룡도시로, 조만간 특례시 승격까지 앞두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분명 거대 도시로 발전했다. 지역
[용인신문] 내가 이곳 지곡동에 와서 가장 처음 본 것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겨운 한옥과 그 지붕 위를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 그리고 오솔길처럼 좁은 1차선 도로였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자락이 마을을 품에 꼭 안은 듯한 안락함과 평화로움은 내가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내 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용인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줄 곳 용인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온전한 용인 토박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용인에 대한 나의 주인의식은 왠지 자꾸 깊어진다. 사람이든 나무든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모두가 떠돌며 사는 유목의 시대에 큰 고목처럼 평생을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행운이며, 축복이다. 사과나무어린이집 숲 놀이터에 알록달록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걸 보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어제는 아이들과 농장에서 직접 키운 고구마를 수확했다. 송글송글 코끝에 땀이 맺히고 넝쿨을 따라 고구마가 줄줄이 따라 나오는 즐거움에 아이들은 땅 파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캔 고구마 보다 실컷 흙 놀이를 하며
[용인신문]내년부터 용인시 재정운영 상태가 걱정스럽다. 사상 처음 재정 교부단체로 전환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의 세금이 줄어 세입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가 전반의 경기침체 영향도 크다. 당장 용인시에 세금을 가장 많이 내고 있는 삼성전자가 실적 감소로 법인 지방소득세를 적게 낸다. 그 규모가 무려 800억 원대에 이른다. 대신 용인시가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 교부금은 450억 원 정도다. 용인처럼 삼성전자 영향력이 큰 수원시 역시 교부단체로 전환된다. 수원에서는 얼마 전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재정위기 토론회를 벌였다. 용인시는 개발붐이 한창일 땐 전국 재정자립도 1위를 수년간 고수했다. 부동산 관련 세입이 많았던 만큼, 사회간접자본 또한 대거 투입됐다. 부정적인 측면에 보자면 난개발을 자초해 놓고, 치유하느라 번 돈을 다 까먹은 셈이다. 인구 증가로 공직사회만 거대한 조직으로 확대 되었을 뿐, 실질적인 지역 발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다. 시가 최악의 재정위기를 자초했던 것은 2012년 용인경전철을 국제중재재판소로 끌고 가면서다. 결국, 패소하는 바람에 수천 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한때 부채비율 또한 전국 1위였던 이유다. 시 교육예산이 ‘
[용인신문]이미상 시인의 첫 시집 「좀 더 자렴,」이 ‘포지션(Position)’에서 나왔다. 이미상 시인은 시적 언어의 기능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인은 현실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있을 때에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모습 뒤에 있는 이미지들을 끄집어내고 확대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제한된 의미를 주고받는 소통의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달팽이 감자탕 먹방 쇼/ 찬물에 밥 말아 오이지 먹는다// 짭짤한 오이지는 혈기왕성한 새우 맛이 난다// 사랑한다 미치겠다/ 다시 또 애를 낳고// 굳은 돈방석 위에 가만히 앉아// 살아본다// 항시 대기 중인 신선한 채널들// 밀봉된 채 늙어가는/ 나의 아기들 -「살아본다」전문 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남승원은 “시인은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들의 해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우리가 확인하는 자유로운 이미지들은 어떤 장면이나 의미들을 완성함으로써 스스로 소멸하는 퍼즐의 조각이 아니”라며 “그의 이미지는 안정된 현실을 찢고 관통하면서 남은 실재의 파편들이다. 그것은, 위베르만이 주목했던,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로 초과된 현실인 수용소를 넘어 우리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강조함으로써 진실
[용인신문] 민주화운동 투사에서 문화 운동가로, 출판인에서 작가로 변신을 거듭한 김학민(71)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지난 15일 여주 남한강변에 자리 잡은 그의 거처를 찾았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그의 집, 마당 원두막에서는 사람들이 막걸리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분들은 문단 내 어른인 구중서 시인을 비롯한 김 이시장의 문화예술계 지인들이었다.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자리로 멤버인 신경림 시인은 사정상 참석을 못했단다. 단층 구조의 전원주택임에도 별도의 공간인 2층엔 널찍한 서재 겸 사랑방이 꾸며져 있다. 누구든지 맘 편히 쉬고 갈수 있게끔 준비해 놓았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번 쯤 꿈꾸는 전원생활.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사랑방에 앉아 2시간 남짓 인터뷰가 이어졌다. 기자가 김 이사장을 처음 인터뷰이로 만난 건 25년이 넘었다. 그가 학민사 대표로 있던 시절이었으니 꽤 오래전이다. 이번엔 <용인문학>의 ‘명사초대석’ 인터뷰를 위해 정연희 시인과 조태명 시인이 동행 했다. 무엇보다 여주에 정착한 경위가 궁금했다. 김 이사장은 용인과 여주를 잇던 수여선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엔 용인에서 가장 먼 수
[용인신문] 흰 구름이 뒷산 밤 나뭇가지에 걸려 며칠째 떠나질 않는다. 머지않아 밤송이 벌어지는 소리, 도토리 상수리, 산열매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 산이 후두둑후두둑 소란해 지겠다. 과천 생활을 접고 용인에 든 지가 근20년이 되어가던가. 가뭄으로 속 타던 지난 여름 같았던 용인 살이의 시작이었다. 거센 장맛비 한 번에 지금, 풍만한 가을로 익어가고 있으니, 나 또한 빗물처럼 이곳에 스며들어 튼실하게 잘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용인에서 나고 자라고, 다시 그 자리에서 새 세대를 이룬 원주민들의 끊을 수 없는 지연과 끈끈한 학연으로 얽히고 견고하게 뭉친 사람들. 시내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내가 처음 느낀 처인 사람들이다. 직장 내에서의 호칭도 형, 아우, 선 후배였다. 타지에서 온 나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편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망한 이유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처인 사람들에 대한 무례고, 기우였다. 낯설고 어섧던 내게, 주변은 친근하게 와주었고, 소상하고 친절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따뜻한 배려에 용인 사람보다 더 깊이 용인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학인의 단체인 용
[용인신문] 백군기 시장이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공원일몰제’에 해당하는 토지 전체를 사실상 매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기 미집행시설 실효제에 따른 ‘공원일몰제’에 대비, 미집행 도시공원에 시 재정을 투입하거나 민간 개발 방식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공원일몰제는 지자체가 도시공원 조성을 위해 임야 등을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했지만 20년간 사업 착수를 못하면 내년 7월부터 해제하는 제도다. 용인시의 경우 당장 내년 7월까지 6곳이 공원일몰제에 해당된다. 2023년 1월까지 6곳이 또 있다. 이들 12개 장기 미집행 공원 면적만1.6㎢(약 47만평)다. 이중 6곳을 중점관리공원으로 지정,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3427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우선 올 하반기 추경예산 중 720억 원을 공원부지 매입에 투입할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그럼에도 백 시장은 “도시공원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일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에 반기를 들 시민은 없다. 난개발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박수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30여 년간 사유재산권 침해를 받아왔던 토지주 들에 대한 배려
[용인신문] 스물네 번째 ‘용인시민의 날’을 맞았다. 바꿔 말해 시 승격 24주년이다. 시는 올해도 변함없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되면서 지역 내 유입을 막기 위해 3일간 예정했던 행사들이 전면 취소됐다. 음식문화축제, 처인성 문화제, 평생학습박람회, 축하공연 등은 물론 용인문화원이 매년 해온 포은문화제도 포함됐다. 대신 지난 27일 시청 에이스홀에서 기념식과 각종 시상식만 간소하게 치렀다. 그동안 행사를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람들의 허탈감과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ASF의 용인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지자체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미 외국 사례에서 보듯 이 병은 한번 걸리면 쉽게 퇴치가 어려워 예방만이 취선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다. 이참에 ‘시민의 날’은 무엇인지, 그 의미와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먼저, 기자는 시민의 날 행사를 해마다 판박이 식으로 되풀이해야만 하는지 용인시에 묻고 싶다. 대부분 행사를 주관하는 기획사 이름만 바뀔 뿐, 제대로 된 행사가 없다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용인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