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정부가 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1999년 9월30일 ‘팔당호 등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관리 특별대책’의 하나로 지정·고시한 한강수계 중 하나가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운학동, 호동, 해곡동을 관통하는 것이 운학천이다. 운학천은 경안천 상류이면서 팔당상수원 발원지이기도 하다. 소위 골짜기로 불리던 운학동에는 오래전부터 공장·축사·음식점·숙박시설 및 목욕탕 등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시설 설치가 불허됐다. 정부가 아예 수질오염 예방을 위해 단계적으로 사유지를 매입해왔고, 2018년부터는 수변생태벨트를 조성중인 곳이기도 하다. 운학동과 호동, 해곡동은 용인 시내에서 매우 가까워 전원주택지로 각광 받고 있다. 최근엔 이곳을 관통하는 국지도 57번에 출퇴근 차량이 급증하고 있다.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클러스터 예정부지 때문인 줄 알겠지만 원삼과 백암지역에 물류센터가 집중된 탓이다. 그래서 도로확장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과거엔 ‘운학리 깡촌’로 불렸지만, 이젠 자연친화적인 마을로 평가되는 곳. 세계10대 불교성지이자 경기그랜드투어 50대 명소로 선정된 ‘와우정사’가 해곡동에 있다. 운학천은 ‘운학동, 호동, 해곡동’ 등 3개 법
[용인신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춥지도 않고 눈도 거의 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한다. 정말 이러다가 아예 겨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눈 구경도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어쩌다 지구가 이렇게 됐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환경보호를 말로만 떠들 뿐 쓰레기분리수거 같은 작은 실천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이 지구가 썩어가고 있다. 동식물이 살기 위해 숨을 쉬어야 할 공기는 미세먼지와 매연으로 안경을 쓰고, 입과 코를 가릴 마스크를 하여야 나다닐 수 있어 마치 복면강도들과 같은 몰골이다. 물은 각종 가축과 공장폐수로 오염돼 개울에는 혼탁한 물이 흐르고 상수도 물도 믿지 못하여 정수기로 또 걸러 먹으며, 깊은 옹달샘물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떠 와야 한다. 사람들이 이동편의를 위해 산을 뚫고 들을 메워 사통팔달로 길을 내고, 각종 공장과 생활편의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산을 깎아내리고 논을 메우니 땅이 만신창이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다. 자연은 태초에 생길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 때 자연인 것인데, 자연환경파괴는 100% 인간들에 의해 파괴 훼손되고 있으
[용인신문] “산업도로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내려가는 고가차도 아래에서 좌회전 버스와 화물차들이 차도 밑을 자주 박아요. 차라리 고가 차도를 없애야 하는 거 아닌지……” 용인신문 독자 제보다. 교통체계의 기본부터 잘못된 행정 당국을 강하게 질타하는 목소리다. 이게 사실이라면, 수십 년 동안 충돌사고가 빈번한 낮은 고가도로를 방치해 온 교통행정 당국이 비판 받아 마땅하다. 오래 전, 버스 추락사고로 인명 피해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제는 구조적인 원인을 방치하면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바로 공용버스터미널의 위치다. 용인시는 시 승격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구도심의 미래지향적인 발전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존 터미널 부지에 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을 한 후 기존 위치를 고수하겠다는 것이 시의 대책이다. 앞서 마평동 공설운동장 부지에 터미널을 이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백지화됐다. 물론 당시의 터미널 이전 계획도 접근성과 편리성에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존 부지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교통전문가들은 그동안 용인IC 인근과 고림동, 양지 방면까지 터미널 이전 부지 대책을 제시한바 있다.
[용인신문] 엄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고시원도 따듯해요 밥도 잘 챙겨 먹고요/ 오늘은 순대를 사먹으로 나왔어요/ 강의 시간은 아직 남았어요 걱정 마세요/ 여기 순대는 소금에 찍어 먹어요/ 순대는 막장에 먹어야 맛있는데/ 엄마, 이번 생신 때는 못 갈 것 같아요/ 특강이 그날로 바뀌었거든요/ 죄송해요 엄마, 식사 잘 챙겨 드세요.//포장마차에서 순대를 먹다 울음이 터졌다// 눈이 멀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길바닥에 떨어진 순대 껍질을/ 쪼아대고 쪼아댔다/ 이리저리 던지는 시선에/ 깃털이 뻐근하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하늘 한번 쳐다보는/ 저,/ 서른 살의 비둘기-「순대 먹는 비둘기」 전문 김진 시인의 첫 시집 『바다 고시원』 이 ‘책만드는 집’에서 나왔다. 김 시인은 잔잔한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도시적 삶을 젊은이들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추천사를 쓴 박구경 시인은 “깊이 있는 사유와 밀도 높은 시적 대응이 예사롭지 않았다”며 “‘누구에 한 번은 진정으로 불린 이름이었나요’(「이름이 뭐예요」) ‘나의 삶에 미안합니다’(「바다고시원」)와 같이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을 통하여 삶의 본질에 근접하려는 노력에서 시적 진정성이 돋보인다
[용인신문] <이슈>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어요. 운전자를 봤더니 고령자였고, 운전 내내 승차감이 좋지 않아 매우 불안 했습니다.” 처인구에 사는 주부 K(55)씨는 얼마 전 버스를 탔다가 다수의 생명을 담보로 한 버스운전자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할 경우 다수의 인명 피해가 불가피한 대형사고로도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건수 증가 최근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4%가 넘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 또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4년 2만275건이었으나 2018년 3만12건까지 증가했다. 또 2018년 한해만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가 전체의 22.3%를 차지했다. 사망자 수만 무려 843명이다. 지난 해 경찰청이 발표한 65세 이상 운전면허 자진 반납자수는 7만3221명. 이는 전년 1만1913명의 약6.1배 증가했다. 이중 만75세 이상은 5만2377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용인시도 지난 해 10월10일부터 11월 말까지 운전면허 자진반납
[용인신문] 국가와 도시를 홍보하기 위해 내세우는 건물이나 유명한 문화재를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한다. 프랑스는 ‘에펠 탑’,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 이집트는 ‘피라미드’, 캐나다는 나이아가라 폭포, 영국은 타워 브리지, 호주는 오페라 하우스, 중국은 만리장성, 한국은 서울타워 등 건물이나 문화재가 랜드마크다. 랜드마크는 도시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자산이다. 낯선 도시를 상징하는 국가와 도시의 랜드마크 하나를 보기 위해 세계인들이 관광으로 교류한다. 즉, 경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수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없는 랜드마크까지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원인이다. 그렇다면 용인시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요즘은 빅데이터를 통해 확인해보면 연령대별 랜드마크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용인의 랜드마크는 삼성에버랜드(구 자연농원)와 한국민속촌 임을 부인할 순 없다. 연간 관광객 수를 따져본다면 단연 1위가 에버랜드다. 여기에 다른 분야 랜드마크를 추가한다면 삼성전자 기흥반도체다. 수십 년 전, 독일을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용인시는 몰라도 기흥반도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랑스럽게 기흥반도체가 용인시에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용인신문]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했다. 나는 널리 알려진 유산보다 우리의 향토문화 유산을 더 귀중히 여겨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향토문화가 잊혀지고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탈 향토문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한곳에서 수대를 살아온 정주생활이었다. 정주생활을 통해 그 고장의 지명과 골자기 그리고 사람이 살아오면서 있었던 모든 것이 녹음이 되어오듯 전래되어 왔다. 고장의 지명이나 이야기는 배운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꼴 베고 나무를 하더라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 함께 했다. 또 어른 아이 같이 했다. 오며 가며 쉬며 끊임없이 나눈 이야기가 골짜기 시내 나무 바위에 얼킨 이야기였다. 바위이름 하나하나는 그냥 바위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다. 광교산 9부 능선에 고염 나무 골이 있다. 고염은 사람이 먹는 과일이다. 이 나무는 감나무 접목의 대나무이기도 하다. 이 높은 곳에 고염나무가 자생하는 것은 사람이 이곳에 살았다는 증좌다. 바로 밑에 농골과 논골이 있는데 농골에는 농바위라는 큰바위가 있
[용인신문] 초대 민선 용인시체육회장이 선출됐다. 그동안 체육회 회장은 자치단체장이 겸직해 왔으나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당초 체육계에서는 초대회장인 만큼 선출방식을 선거가 아닌 추대론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끝내 무산되면서 정치판을 답습한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 민주당 소속 백군기 시장 역시 4월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도 당리당략을 떠나 체육계 명망가인 조효상 씨의 추대론에 힘을 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들에 따르면 백 시장은 “체육계마저도 선거를 통해 양분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중이 강했다는 것. 그럼에도 두 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정작 선거 당일 정견 발표장에서는 낙선한 최아무개 후보가 공개적으로 백 시장 지지를 받으며 출마했다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최 후보자 발언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체육계조차 정치판을 답습하고 말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번에 당선된 조효상 초대 민선 체육회장의 임무는 막중한 상황이다. 조 회장은 그간 물심양면의 리더십과 추진력, 그리고 엘리트 생활체육에 대한 경험 등이 인정돼 회장에 당선됐다. 조 회장은 수출기업인 (주)대지정공 회장
[용인신문] 남편 직장 때문에 용인에 온지 이십년이 넘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라 ‘제주댁’에서 요즘엔 시댁 식구들에게 ‘용인댁’으로 통한다. 공기 좋고,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용인에서의 삶은 큰 축복이다. 이런 평범한 용인댁이 어느 순간부터 장애인들과 음악 활동을 한지 십년이 넘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음악 전공했냐?” 와 “장애 가족이냐?”란 소리다. 둘 다 전혀 아니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가끔은 웃음이 나오기도 하다. 장애인들과 활동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어떤 색깔을 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한다. 음악이란 뭘까? 이론적인 건 모르지만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 아닐까? 요즘은 장애를 가진 분들도 훌륭한 음악성을 가진 분들이 종종 있다. 장애 음악가들도 느끼고 표현하고 음악으로 소통한다. 하지만 기존의 음악은 장애를 고려해서 만든 게 아니기에 본인의 음악성을 온전히 전달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용인시에서 한때 추진하다가 유보된 ‘장애인시립오케스트라’는 발상만으로도 앞서가는 생각이었다. 물론 언젠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기존 음악에 장애인들을 넣으려니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한다. 또한 주변에서
[용인신문] “28년 정론직필, 뉴 미디어시대 검증 평가 기대” 오프라인 ‘용인신문’과 ‘인터넷 용인신문(www.yonginilbo.com)’을 위한 ‘2020편집자문위회’가 출범했다. 위촉식은 2월 중 용인신문사 미디어센터에서 가질 예정이다. 본지 '2020 편집자문위원회'는 용인지역 각계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 중인 오피니언 리더, 또는 분야별 추천으로 10명이 함께하게 됐다. 위원회는 용인신문 기사에 대한 전문가 의견과 자문을 받기 위한 별도 독립기구로, 더 많은 인적 자원을 확충해 나갈 방침이다. 또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과 견제 기능 여부를 독자와 외부 인사들의 시각으로 뉴스를 평가, 자문하게 된다. 앞으로 위원들은 용인신문 뉴스기사의 배열과 서비스에 대한 검토, 모니터링 후 의견 제시 등 자문과 검증 활동을 한다. 무엇보다 선거 기간 중에는 기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편향성 여부 등을 따져 집중 모니터링 할 예정이다. 2020편집자문위원회 위원은 △김도년(전 용인시 처인구청장) △김선구(용인시기흥장애인복지관장) △남종섭(경기도의원) △남종우(예스병원 경영총괄본부장) △라용화(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용인서부지사장) △목민숙(용인시조정협회장
[용인신문] 매스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유통시장은 정보화 지식사회를 가늠할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넷 혁명이후 유투브를 비롯, SNS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미디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됐다. 바야흐로 올드 미디어가 뉴미디어 시대에 떠밀리는 형국이다. 기자가 저널리즘을 전공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언론사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용인신문이 창간된 1992년 용인시청(당시 군청)을 출입하던 경인지역 일간지와 주간지 기자는 불과 15명 전후였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용인시에 출입통보를 한 기자는 무려 380여명이다. 90년대 초반, 용인 인구가 20만 명 전후였으니 인구증가율(현재 108만명)은 5~6배인 반면 기자들은 무려 20~3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언론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보면 기형적 증가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양적인 팽창만큼 저널리즘의 역할을 올곧게 수행하는 기자들이 많아졌느냐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1987년 6·10항쟁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1도1사 폐지 등 언론자유화가 시작됐다. 특히 지역언론은 1990년대 초중반 지방자치제의 완전한 부활로 전국에서 창간되기 시작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났으니 어느
[용인신문] 용인댁은 국악계에서 내게 붙여준 닉네임이다. 오래전 용인에 입성하려면 나를 거쳐야 한다(?)는 재미난 얘기들을 하곤 했다. 1960~80년대 국가 인간문화재인 선친 덕분에 인간문화재, 국악과교수, 저명인사들이 우리집 왕래가 많아 최고의 눈호강, 귀호강을 하며 살았었던 나는 용인에 처음와서 참으로 놀랐다. 평소 선친에게 들었던 민속촌이 있는 도시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척박한 문화예술 황무지였다. 민속촌 자문관계로 선친은 보성제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정권진 명창등과 신갈에 거처를 두고 수시로 용인을 다니셨고 나중에 용인으로 가자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1998년 용인예술단을 창단했을 당시 용인 최초의 전문 국악단으로 이슈가 되었고 곧 시립국악단이 탄생할 줄 착각했다. 용인의 문화 예술인들은 참으로 인내심 많고 무던한 것 같다. 그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달려왔고 문화재단이 생겨 용인시 전반에 걸친 문화 향유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실제 예술인들에겐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진 못한 것 같다. 2001년 녹야 국악단을 창단하고 용인시의 지원을 받아 매년 정기공연을 하며 국악 전문 단체로서 품격 있는 국악 관현악, 창극, 실내악, 가야금 앙상블 등의 멋진 연주로 성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