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옥상 김유미 꽃들은 지고 옥상이 떠오른다 저녁은 가만히 내려앉아 너를 잠재울 수도 너를 깨울 수도 있는 사물이 울 수도 사물이 웃을 수도 있는 질서를 꾸미고 나는 가만히 바닥을 뒤집어쓴 너를 집게가 물고 있는 빨랫줄의 성질을 익히고 있다 다 증발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소리치고 싶은 너는 너대로 울음을 물고 있는 집게는 집게대로 먼 세계를 끌어들여 희석시키고 있다 김유미는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2014년 『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이번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은 그녀의 처녀 시집이다. 그녀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편마다 복선이 깔려 있고 은유가 놓여 있는바 은유의 원관념을 찾아가기가 녹록치 않다. 「개인용 옥상」은 옥상이라는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사물로써의 빨래집게와 빨래줄과 너라고 하는 시인의 분열된 자아 혹은 빨래가 있다. 개인용 옥상이라는 설정이 그녀만의 사유공간이거나 심리적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꽃이 지고 떠오르는 옥상에는 저녁이 내려앉는 시간이다. 그 옥상은 사물이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질서 아래 놓인다. 너의 의식을 잠재울 수도 깨울 수도 있기는 하다. 이때의 너는 시인의 분열된 자아다. 바닥
[용인신문] 아느 네스(Arne Naess)의 근본생태학(deep ecology)을 계승하고 확대, 심화시킨 드볼(Bill Devall)과 세션즈(George Sessions), 카프라(Fritjof Cafra), 스나이더(Gary Snyder) 등 근본생태론자들은 오늘날의 생태위기와 현대인의 자아 및 정체성 상실에 주목하고, 이것을 현대 문명의 쇠퇴 증후로 파악한다. 드발과 세션즈는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을 지향하는, 유기체적 전체(organic wholeness) 또는 큰 자아(Self)라고 불리는 공동체에서 사람과 사람이 아닌 생명체들이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머레이 북친(Murry Bookchin)을 개조(開祖)로 하는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은 생태위기의 원인을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 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 논리에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지배 속성에 주목한다. 정치학에다 생태학을 접목시킨 사회생태학은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분열을
[용인신문] 송강 정철은 56세 때 평안도 강계에 위리안치된다. 위리안치는 가시나무로 집을 에워싸서 안팎으로 누구든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고독을 정점으로 하는 성찰(?)의 형벌이다. 이때 읽은 책이 대학 책이라 하는데 비지備旨다. 비지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한 뜻을 채웠다’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비지란 요지를 갖췄다는 뜻으로 ‘집주集註’에 관한 요지를 정리한 책이다. 14세 기말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 1367-1398에 활약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 퇴암退菴 등림鄧林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전거典據를 밝혀 사서비지四書備旨를 썼는데 송강 정철이 그중 대학 비지를 읽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비지에는 고주古注와 소주疏註를 별도본으로 달아놓기도 하는데 송강은 이중 소주疏註 별도본이 있는 비지를 읽었다. 워낙 많이 읽어 소주본은 다 외울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일어나던 해 사면이 되어 향리에 돌아와 비지를 다 못 외운 채 다음 해에 생을 마감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송강의 후손들은 노년에 이를수록 더욱 사서 읽기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그의 현손 장엄丈嚴정호鄭澔에게 까지 이른다. 그는 송강의 장남 정기명鄭起溟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제학大提學
[용인신문]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2017년 승격)에 위치한 어비리魚肥里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정겨운 고향이다. 본래 어비울(村)은 1971년 12월에 어비울 저수지(이동저수지) 제방이 완공되기 전까지 600여 년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마을이었다. 지금은 원어비울元魚肥村 마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몰되어 경기도 최대 규모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이동저수지’로 명명되고 있다. 어비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기름진 땅에서 해마다 풍작을 거두는 풍요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세거가문인 강릉 김씨의 24세조 회와공 김언신은 ‘어동팔경魚洞八景’을 노래했는데, 그중 ‘어비낙조’는 현재의 ‘용인 8경’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저수지로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은 저수지 수면과 황금 들판을 동시에 붉게 적시는 낙조의 황홀함으로 표현된다. 마을에는 수령이 500년은 족히 넘은 신수神樹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수몰로 잘려서 땔감으로 팔려나가는 비운을 겪었다. 그 흔적으로 마을에서 보관하던 뿌리마저 도난을 당해 사라졌다. 수백 년을 살아온 마을에는 대동大同의 전통이 살아있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제大同祭가 해마다 열렸다. 집마다 축언을 하고, 천지 만물에 대한 감사함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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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지방자치실시 이후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책이 폐기, 또는 축소된다면 과연 누가 행정력을 신뢰할 수 있을까. 용인시는 아직 한 번도 재선 시장이 나온 적이 없기에 행정이 불안정해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결국 행정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은 윗사람 눈치 보기에 바쁘다. 게다가 시민들이 보기에도 변별력이 없어 보이는 시정 구호를 때마다 바꿔댄다. 그 덕분에 정작 도시브랜드는 유야무야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도시 정체성이 4년마다 바뀌는 꼴이 됐다. 그러니 어느 누가 도시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시정이념을 기억하겠는가. 도시의 정체성이나 도시브랜드는 그렇다치고 주요 정책조차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의 사업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되는지 알면서도 여론수렴없이 만들었다가 폐기해 버린다면 과연 행정력을 신뢰할수 있을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반 기업과 다른 것은 정책의 안정감과 연속성에 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정책이 단체장 한 명 바뀌었다고 사라진다면 지방자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이는 자치단체 역사를 부
[용인신문]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영종英宗의 명으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를 편찬하여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명한다. 그 책 71권 위기魏紀3卷 명제태화 太和4년 서기230년 5條에 난이진퇴難以進退라는 말이 나온다.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본래 사람은 세류에 머문 시간이 적을수록 ‘섭세천涉世淺’ 깨끗한 법인데 ‘점염역點染亦淺’ 그마저도 염천인染淺人 보기가 어려운 게 작금의 세태다. 맹자는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23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으면 청렴은 손상될 것이며, 줘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면 은혜는 손상될 것이다. 청렴과 은혜를 통치 덕목으로 삼았던 인물이 있는데 노魯나라 제15대 군주 환공桓公으로 그에게는 유좌지기宥坐之器의 고사가 있는데 공자孔子가 노魯 환공桓公의 사당을 둘러보는데 바로 서지 못한 채 넘어지듯 한쪽으로 기운 그릇이 있어 물으니 사당지기가 답한다. 이것이 바로 유좌지기라는 겁니다. 이에 공자가 말한다. 그렇다.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이 천하에 있을까마는 나도 유좌지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 이에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지키는 방법을
[용인신문] “주변이 주변인 것은 상황이 변했는데도 자기를 억압하는 기존의 위계를 스스로 고수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심과 주변이 어디냐갸 아니란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사라져가고, 유동적이다. 중심이든 주변이든 내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에서의 생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용인은 이제 서울의 주변도시가 아니다. 용인시 최대의 면적을 점유하는 처인구도 주변구가 아니다. 선거철 마다 ‘일류 수지’라고 찬사를 보내(?)는 낙하산 후보들의 낯뜨거운 구호에 전국구 스타를 만들어 줬던 수지구도 용인의 외곽이 아니다. 1973년 10만에 불과했던 용인은 2002년 50만의 중소도시로 성장했다. 팀 마샬의 주장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생거용인’의 마음으로 들어 와 살기 시작한 용인의 가치는 현재형이자 미래형이다. 그러므로 2017년 백만을 돌파한 대도시로 성장한 용인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가 시대 착오이다. 사람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니 지금, 용인시야말로 발상의 전환, 그것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해볼 수 있는 막바지 기회다. 1789년 혁명이후 파리
밤 열차 이철경 늦은 시간 남루한 사내가 노약자석에서 졸고 있다 내릴 곳을 잃었는지 이따금씩 초점 잃은 눈빛으로 부평초 마냥 공간을 흐른다 저 중년의 사내, 삼십 분 전 의자 난간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어깨를 보았다 저 꺾인 날개의 들썩임 전철도 부르르 떨면서 목 놓아 우는구나 중년의 무게에 짓눌린 밤 열차도 흐느끼며 뉘엿뉘엿 남태령 넘는구나 이철경은 1966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2011년 계간 『발견』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를 관류하는 정조는 허기다. 허기는 그의 유년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허기로부터 출발하는 그의 시선은 궁핍과 소외에 이른다. 「밤 열차」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시인은 남태령을 넘어가는 전철 안에서 남루한 사내의 모습에 시선을 주고 있다. 노약자석에 앉은 중년의 사내는 지친 몸을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의지하여 귀가 하는 중일 것이다. 그 사내는 삼십 분 전 의자 난간을 붙잡고 흐느끼던 사내다. 그의 흐느낌에 전철도 부르르 떨면서 목 놓아 울었던 것이다. 그렇게 중년의 무게에 짓눌린 밤 열차는 흐느끼며 우엿뉘엿 남태령을 넘는 것이다. 도시빈민의 아픈 초상이다. '실천문학사' 간 『한정판 인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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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개표 100% 완료땐 선거인단 306명 확보 트럼프 부정선거 프레임 맞불 '백악관 지키기' 중국과 군사충돌 통해 긴장고조 카드 가능성 누가 당선돼도 미국식 자본주의 최우선 정책 [용인신문] 2020 미국대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대선 개표에서 바이든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주요언론방송사는 바이든 후보가 선거인단 279명을 확보하자 트럼프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후 바이든 후보는 대통령 당선인으로 호칭되고 있다. 아직 법적인 인증 절차가 끝나지 않아 공식적인 당선인은 아니지만 개표가 최종적으로 100% 완료되면 바이든-선거인단 306명(표), 트럼프-232명 확보가 확실시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개 경합주의 재검표와 법적 소송을 통해 반전을 노리며 대선 불복을 공식화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될 것이라며 바이든의 승리를 일축했다.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남부 조지아 주는 99% 개표기준으로 바이든 49.5%, 트럼프 49.2%로 0.3%차 초박빙 개표결과가 나오자 브래드 래팬스퍼 국무장관은 11월 20일까지 수
[용인신문] ‘사람 중심의 용인’ 집 앞 네거리에 붙은 현수막의 문구다. 고3이 된 막내가 처음으로 대형 학원에 등원하는 날이었다. 새벽 2~3시 까지 입시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딸은 토요일 아침 7시 5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잔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입에 밥알을 걸치고 가는 막내를 데려다 주었다. “오늘도 화이팅!” 응원을 보내고 뒤돌아섰다. 빵 굽는 냄새가 나를 휘감았다. 그 유혹에 빠지려는 순간, 23번 버스가 도착했다. 여느 버스와 다르게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기사님은 미금행에서 구성행으로 표지판을 바로 바꾸며 뒤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빵 드실래요? 집사람이 구운 빵입니다.” 거절할 수가 없어서 받기는 했지만, 깔끔한 기분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와 달리 빵을 건넨 기사님은 행복해보였다. 라디오의 볼륨을 올리는 아저씨의 미소는 아침햇살이 가득 내려 앉아 눈부셨다. 가을의 아침 찬 기운을 싸악 가시게 하는 따스함이었다. 이런 따스한 미소가 낯설지 않았다. 미러 속 아저씨의 얼굴을 계속 응시했다. ‘아!’ 10년 전 용인으로 이사 왔을 때 큰아이에게 빵과 김밥을 주었던 버스기사님이다.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