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최 승 호 말죽거리 주유소는 말죽거리에 있다 말죽도 말죽통도 말대가리도 없는 말죽거리 한밤중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길 잃은 말처럼 눈먼 고독이 찾아오는 것이다 말죽거리 주유소엔 대평원의 하늘이 없다 굵은 별들이 서늘하게 내려오는 지평선이 없다 창밖을 망국의 눈으로 내다보는 고려인의 후예 알바노인이 있을뿐 최승호는 일찍이 「대설주의보」로 암울한 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백색의 계엄령이라 규정하고 계엄령 속을 날아가는 쬐그만 굴뚝새의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불후의 시편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 후로 그는 자본주의의 소비문화를 변기 혹은 똥으로 은유화하며 시대를 앞질러 가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방부제가 썩는 나라』로 돌아왔다. 내 나라가 얼마나 썩었으면 방부제가 썩는다는 말인가. 섬뜩하고 참혹하다. 하기야 고위 공무원을 임명하기 위한 청문회장은 그들의 삶이 부패의 복마전이었음을 증거하는 자리가 된지 오래다. 그런 세상이니 방부제인들 어떻게 썩지 않고 견디어 내겠는가. 관계뿐 아니라 정계도, 경제계도, 법조계도, 학계도, 문화계도 방부제를 썩게 할 만큼 부패했다. 가히 부패공화국이다. ‘파리의 생각은/오직 부
체 류 휘민 병상에 누운 그녀가 갓 부화한 아기 새처럼 나를 쳐다본다 달력 뒷장에 적힌 전화번호를 더듬거리듯 내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누른다 나를 삼키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기울어지는 저녁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고 마는 나 그녀의 정강이를 손아귀로 잡아 본다 신이 아직 파괴하지 못한 단단한 어둠 한 줌 창밖으로 소낙비가 지나간다 엇박자로 덜컹거리는 심장 속으로 또 한 차례 밀려드는 어둠 저 비가 긋고 밤이 오면 저녁은 누구의 무릎을 짚으며 돌아갈까 사선으로 떨어지는 젖은 불꽃들 우두커니 형형이다 병상을 지키고 있는 시인의 몸을 꾹꾹 누를 수 있는 시선이라면 육친이 맞다. 혈육이어서 병상의 그녀는 시인을 삼키듯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장면이 눈물겨워 시인은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장면이다. 생로병사의 통과의례를 누가 비켜갈 수 있을까. 시인의 진정한 문장은 그 다음 부터다. 혈육의 정강이를 잡아보는 시인에게 정강이는 ‘신이 아직 파괴하지 못한/단단한 어둠 한 줌’이어서 혈육의 생애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혈육은 어떻든 더 오래 더 강건하게 살아 있어 시인을 삼키듯 바라보고 몸의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기
고통의 증명 이 병 국 나는 다른 곳에 있다 다른 곳의 다른 곳 네가 앉아 있는 곳에서 갈라진 최초의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된 한 뼘의 세계 불가능한 정리를 가장자리에서 잃어버린 거짓의 논리처럼 무너진 토대를 걷는 칼날처럼 (.....) 삶을 노출당한 이는 별을 삼키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몸을 견디고 있다 증명할 수 없는 확률로 위로가 멀어진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고스란히 오려진 한 뼘 나는 익숙하게 흐려진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구부정한 오류의 세계 건널목 맞은편에서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뒷모습이 전부인 다른 곳의 다른 곳 이병국의 첫시집『이곳의 안녕』은 낯선 시적질서로, 혹은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들의 개진으로 신선하다. 따뜻한 시어들과 섬세한 문장과 젊은 날의 아름다운 방황이 시편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친근하게 읽힌다. 「고통의 증명」은 연시로 읽어야 맛이 난다. 그의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곳에 놓여진 고통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익숙한 고통이다, 구부정한 오류의 세계에 놓여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고통이 작아지지 않아 다정하게 손 흔드는 뒷모습도 아픈 것이다. 사랑은 고통이 맞다. 김윤배/시인<용인
신돈을 굽다 이 원 오 동네 어귀 신돈 연탄구이 가게는 성황이다 주인은 적당히 익힌 초벌구이 고기를 내온다 통통한 두께가 입맛을 돋운다 쫀득한 비계는 유혹적이다 탐욕스런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중독된 가스만큼의 혀를 마취시킨다 껍질의 검게 탄 부분은 상처가 된 마음의 일부이다 연탄불은 금방이라도 베일 듯이 파란 검이다 검은 신돈을 베었고 민초를 위한 마음도 함께 베었다 검의 용도는 고기를 자르는 데 있는데 신돈에게는 그의 목을 치는데 용도가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고해진다는 어느 종파의 습속은 통하지 않는다 잘 씹히는 고기는 언제든지 회자된다 신돈을 요승으로 만든 역사서가 잘게 씹히고 있다 신돈이 슬프게 웃고 있다 이원오의 첫시집 『시간의 유배』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해석 위에 시인의 상상력과 서정을 단호하고 유려하게 입힌다. 정사가 시인을 만나 어떻게 오류의 그늘을 벗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시는 유쾌하고 경이롭고 신비롭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둔중하다. 그의 이번 시집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시인이 새로운 지점에 자신의 시세계를 펼치기 위해 얼마나 고투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신
무인도 이 영 광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 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 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 당하고 만기 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이영광은 ‘알 것 같은’과 ‘알아버린 것 같은’ 사이에 시의 풍경들을 놓는다. 그가 가고 싶은 무인도는 온전한 깨달음의 공간이다. ‘알 것 같은’ 혹은 ‘알아버린 것 같은’ 미심쩍음은 그 공간에 닿아야 시원하게 풀리고 모든 미몽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무인도의 밤이나 무인도의 감옥이나 무인도의 망망대해를 수혈 받는다는 것은 깨달음에 다름 아니다. 무인도에 가면, 알 것 같았던 미
그곳은 평화롭겠지 강 성 은 이대 앞에 살 때 자주 봤던 두 사람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처럼 머리를 세운 거구의 남자 한여름에도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던 까만 맨발의 여자 전철역 주변을 서성거리며 혼자 중얼거리다 가끔 하늘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밤이 되면 저들은 어디로 돌아가는지 밤이 되면 저들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 언젠가 꿈속에 나는 길바닥에 누워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거니 발로 차기도 했는데 어떤 낯선 얼굴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 눈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왜인지 나는 일어날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때 하늘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새들은 멀리 날아가고 왜인지 밤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곳은 평화롭겠지 강성은은 과거의 두 사람을 호명한다. 한 사람은 영화‘레닌그라도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의 젊은 뮤지션처럼 머리를 세운 거구의 남자와 한여름에도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는 까만 맨발의 여자다. 두 사람은 비정상이다. 남자는 광고맨일지 모르고 여자는 광인일 것이다. 수많은 인파는 그들을 스쳐지나갈 뿐,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대 앞의 소품쯤으로 취급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시인은 그러지
물류창고 이수명 우리는 물류창고에서 만났지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차려입고 느리고 섞이지 않는 말을 하느라 호흡을 다 써버렸지 물건들은 널리 알려졌지 판매는 끊임없이 증가했지 창고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지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했어 무얼 끌어내리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담당자처럼 걸어다녔지 바지 주머니엔 볼펜과 폰이 꽂혀 있었고 전화를 받느라 구석에 서 있곤 했는데 그런 땐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 (.......) 창고를 빠져나가기 전에 정숙을 떠올리고 누군가 입을 다물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조금씩 잠잠해지다가 더 계속계속 잠담해지다가 이윽고 우리는 어느 순간 완전히 잠잠해질 수 있었다 이수명에게 ‘물류창고’는 심리적 폐쇄공간이며 사회현상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은, 다시 말하면 산더미같은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입고하고 출고하는 일을 하는 담당자는 창고를 방문하고 있는 일군의 국외자들에게 무관심하다. 세상의 이치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생을 이끌어간다.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
그리움 베리에이션 이 경 철 별거 아니에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거 꽃이 피고 꽃이지는 거 별거 아니에요 가뭇없이 한 해가 가고 또 너도 떠나는 거 별거 아니에요 바람 불고 구름 흘러가는 거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마음 그림자 지는 거 마음 그림자 켜켜에 울컥, 눈물짓는 거 별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찌 한데요 텅 빈 겨울 눈밭 사각사각 사운거리는 저 갈대 맨몸으로 하얗게 서서 서로서로 살 부비는 저, 저 그리움의 키 높이는 어찌 한데요 해가 또 가고 기약 없이 세월 흐르는 건 별거 아닌데요. 이경철의 그리움은 우주의 운행 위에 있다. 우주의 운행으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별거 아닌 것이고 사계가 오고 가는 것 또한 늘 그런 것이어서 별 것 아닌 것이다. 그럴진데 사계 위에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별 것이겠는가. 그에게는 삼라만상이 별 것이 아니다. 바람 부는 것이 별 것 아니고 구름 흘러가는 것이 별 것 아니다. 그러니까 흰 구름에 마음 그림자 지는 것, 마음 그림자 켜켜에 울컥, 눈물 짓는 것이 별것 아니라고 노래하지만 눈물짓는 것이 이미 별 것이다. 왜 울컥, 눈물짓는 걸까.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이 말하는 북천은 지리적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을 이를 것이지만‘북천은 걸어서 가거나/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당신의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노래한 것으로 보아 상상의 공간인 것이 분명하다. 북천에서 온 당신은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사랑만 하고 사랑이 깨진 후에도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했으므로 아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더 없이 착한 사람이다. 이 작품의 압권은 ‘당신의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 김중일 아주 작은 새가 있었다. 먼지보다 작은 새였다. 제 그림자로 세상을 고이 덮으려했던 새였다. 깊고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가 있었다. 날 새도록 새는 날고 날았다. 날개가 바람에 다 녹아 버려서 그만 하늘에 스몄다. 낮에는 흰 그림자로 밤에는 검은 그림자로 세상을 덮었다. 우리는 모르는 새 그 새의 그림자를 입고 살았다. 우리도 날개가 다 녹도록 날았다. 새와 함께 파란 하늘이 되었다. 결국 그 새는 세상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다다랐다. 희생자의 무덤 위였다. 김중일은 먼지보다 작은 새가 있었다고 노래한다. 먼지보다 작은 새가 있을까. 그렇게 작은 몸으로 세상을 고이 덮을 수 있을까. 깊고 깊은 높이가 있을까. 그렇게 날아오른 새가 있을까. 날개가 바람에 녹는 새가 있을까. 녹아서 하늘에 스며 하늘이 되는 새가 있을까. 낮에는 흰 그림자로 밤에는 검은 그림자로 세상을 덮는 것은 하늘일까. 새의 영혼일까. 깁중일의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는 질문 가득한 시다.‘아주 작은 새’는 ‘깊고 깊은 높이로 날아오른 새’이다. 이 시의 비의가 숨어 있는 문장이다. 먼지보다 작은 새는 영혼이다, 영혼이 아니면 그렇게 작은 몸으로 세
새 김정환 나보다 너 강력한 근육이다. 나보다 더 이유가 분명한 부리다. 나보다 더 목적이 뚜렷한 시선이다. 나보다 더 불길한 운명이다. 나보다 더 엄혹하 중력이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새. 나 몸무게 없다. 연민 없이는. 한 천년 전부터. 김정환의 우주의 중심은 시인 자신이다. 시인을 중심으로 모든 연민과 모든 근육과 모든 부리와 모든 목적과 모든 운명과 모든 중력이 배치된다.‘나보다 더’라는 구절의 반복은 시인이 우주의 중심을 이룬다는 언표다. 그의 우주는 새와 부딪쳐 산산조각이 난다. 우주의 중심이 새로 옮겨 가는 것이다. 새의 근육은 날 수 있는 근육이다. 시인의 근육은 항전하는 근육이다. 날 수 있는 근육이 더 강력하다. 새의 부리는 먹이를 쪼는 일이나 먹이를 사냥하는 일에만 쓴다. 사용하는 이유가 시인보다 분명하다. 시인의 부리는 독설과 패설과 온갖 욕망에 동원된다. 사용하지 않아도 될 곳에 사용한다. 설화를 부르는 부리다. 새의 시선은 목적이 뚜렷하다. 어느 가지로 옮겨 갈지, 어는 깃털에 목을 묻을지, 어느 먹이를 낚아챌지가 뚜렷하다. 시인의 시선은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 목적이 흐려지고 사물의 본질이 안보이고 문장의 빛이 어디쯤서 흐려지
부에니 비스타 소셜 클럽 이기영 오래된 악사들과 귀에 익은 째즈와 스끌벅적한 서른 아홉 체 게바라와 스물 일곱의 이상이 있다 부르주아적 시가를 피우는 이상과 노동자의 술 모히또를 마시는 체 게바라 절인 청새치와 코히마르 해변에 뜬 붉은 달을 말하면 어린 여인들의 앳된 입술과 꼬치니로cochinillo에 대해 입맛을 다신다 혁명은 주방장이 추천한 부에니 비스타 소셜 오늘의 아기 통돼지 바비큐보다 못하고 달아나지 못한 열 세 명의 아해들은 가난한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는 마술사의 입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 -나는 알토 쎄드로에서 마르카네로 가고 쿠에토에 도착한 후에는 마야리로 가 인생에 흐르는 힘 어쩔 수 없다네* 시인도 못 되고 내일의 혁명가는 오늘의 혁명을 모르는 불온한 승객들은 이 밤 또 어디로 다 흘러가나 그와 그가 감쪽같이 사라진 오, 쿠바! *‘찬찬’의 노래 가사 중에서 이기영은 세계를 열광 시킨 ‘부에니 비스타 소셜 클럽’의 히트곡 ‘찬찬’를 흥얼거리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쿠바 혁명 후 부르조아 음악은 사라졌고 대중을 사로잡던 뮤지션들은 구두닦이가 되거나 담배 공장의 노동자가 되거나 무직자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