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병 속의 악마'는 읽기에 아주 쉬운 이야기이다. 선한 의도가 성공하고 사랑은 위대하며 인간의 탐심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서의 표제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명성도 자자하지만 뒤에 실린 작품도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사유를 품고 있다. 케아웨에게 팔려간 병은 소원을 들어주는 병이다. 케아웨는 병을 사기 위해 쓴 50달러가 자신의 소원대로 주머니에 돌아온 현상을 보고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의심하지 않은 채 마냥 신이 났다.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행운이 다른 사람의 희생에 의해 치러진 댓가임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병이 팔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케아웨는 문둥병이 걸린다. 결혼을 하게 된 케아웨, 그를 사랑한 코쿠아는 남편의 절망을 목도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병을 사서 그의 지옥을 가져간다. 시간이 지나 케아웨는 코쿠아가 자신의 지옥을 가져간 사실을 알고 아내 몰래 2상팀의 가격에 병을 사도록 어느 뱃사람에게 지시한다. 케아웨가 처음 병을 샀을 때는 50달러였지만 마지막에는 1상팀-아마 1센트 쯤 되겠다-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코쿠아에게 2상팀에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선원은 병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용인신문] 「망가진 시대」는 독일을 아동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를 주인공으로 적은 평전이다. 이 평전은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품이기도 하다. 케스트너는 신문 칼럼리스트로, 희곡 창작자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그가 쓴 대부분의 아동문학 작품들은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다. 「망가진 시대」에 소개된 에리히 캐스트너는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인공이 어린이라 생각하며 여러 개의 작품을 발표한다고 했다. 에리히 캐스트너는 자신의 소설 「파비안」이 눈 앞에서 괴벨스의 주도로 불태워졌고 집필 금지까지 당했음도 독일을 떠나지 않았다. 케스트너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그런 에리히 캐스트너를 ‘독일의 양심’이라 칭찬했다. 독일이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망가진 시대를 탈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저자 얀 마텔은 캐나다 수상에게 국가의 수장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편지로 적어 보냈다(「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2013). 그의 편지에 대해 캐나다의 수상은 어떤 공개적인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독서와 관련한 주요 행사에 그를 초대했다. 박근혜가
[용인신문] 아이들이 사라졌다. 전 세계에서. 전조증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나 모두 무시했다. 오래전에 이 상황에 대해 경고를 했던 이가 있었지만 다들 그의 출신과 비행을 문제 삼아 묵살해 버렸다. 아이들은 달을 향해 날아갔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일종의 종말론적 재난 서사이다. 기본적으로 재난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크게 두 축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하나는 혐오와 차별이다. 이름조차 없이 ‘용달’로 불리는 용달차 모는 가장의 가족이다. 7세의 지능을 가진 10대 용달 기사의 아들이 드러나는 혐오의 대상이라면 총리 운택은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서사의 다른 한 축은 가족서사이다.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마음을 열기보다 외적인 조건을 갖추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양심의 문제가 얽히면 더 복잡해 진다.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해와 증오가 쌓이고 해결의 길은 점점 요원해진다. 게다가 이런 관계에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인물이 끼어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이야기 속 재난 상황은 사람들의 갈등과 무관하게 파국을 향한다. 물에 잠기고 화마에 휩쓸리는 것과 같은
[용인신문] 어른이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줄 때 책 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는 삶 속에 있는 희노애락을 부족함 없이 담고 있다. 생에 대한 원리가 장엄한 이야기로 엮인 이 작품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지만 어른들이 더 열심히 읽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2022년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우수작품으로 전 세계 어린이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 6권이 출간되었다. 와니니의 무리의 수사자 아산테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번 이야기에서는 리더에 대한 사유를 담아냈다. 1권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생을 마감한 아산테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자 아산테. 초원의 동물들은 그 이름만 듣고도 경외감을 갖는다. 이제 막 수사자로서 도립한 아산테는 명예로운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그에 걸맞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주인공 아산테가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아 수사자로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다른 수사
[용인신문] 프랑스의 도토리 초등학교에서 은퇴하는 로베르 푸르파티는 은퇴식을 마치자마자 받은 꽃다발과 들고 다녔던 낡은 가방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간다. 왜일까? 이야기는 로베르 선생님이 은퇴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37년간을 돌아본 사진 속에서 로베르 선생님은 단 한 번만 웃고 있었다. 어째서? 『로베르 선생님의 세 번째 복수』는 37년간 근무 중 자신에게 가장 큰 굴욕감을 준 세 학생에게 복수를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어릴 적 친구들의 괴롭힘을 해결하는 방법을 선생님도 부모님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선생님이 된 것은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함보다는 후배 세대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부임했을 시기엔 교육관이 또 달라졌다. 아이들을 존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철없는 아이들의 존경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세 번의 굴욕적인 사건을 겪은 로베르는 복수를 꿈꾸며 은퇴할 날만을 기다렸다. 최근 뉴스에서 교권이 사라졌다거나 교실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게다가 학
[용인신문] 혹자는 어느 소설에서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소심해서 안 해도 될 고민을 사서 하는 능력”을 가리켜 “쪼다력”(정은, 『산책을 듣는 시간』(2018), 149쪽, 이라 말했다. 쪼다력 뿐이겠는가. 이런저런 사건들은 쉼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부터 달아나게 만든다. 마음근력은 이때 필요하다.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항상성을 유지하면서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단단한 마음근력에서 시작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필자는 『회복 탄력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내면소통』은 이전 저술보다 학술적이고 실천적인 저술이다. 『내면소통』은 인간의 불안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자아를 기억자아와 경험자아, 배경자아로 구분하여 대상에 따라 마음 근력 훈련의 방법이 달라지고 조금 더 근원적인 처방을 발견해 나간다. 내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대안으로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종교적인 행위로서 명상은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졌으나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명상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때로는 논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면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혹은 물리학적 입장이나 심리학적 작용 등을 넘나들며 내면의 안녕을 찾아가는 작가의
[용인신문] 이 책은 어느 환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발자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비범하게 남의 돈으로 살았던 삼촌의 이야기다. 제목은 마치 빚에 허덕이는 사람을 위한 글처럼 보이지만 실용서가 아니라 발자크가 1827년에 쓴 소설이다. 보들레르는 이 작품에 대해 “빚 청구서”를 근사하게 썼다고 평했다. 역자는 글을 쓴 발자크가 “돈이 없어서 꿈이 더 많은 사람”이라 평하기도 했다. 필자는 서문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지만 빚이 늘어가는 사람들에게 비열했던 자신의 삼촌 앙페제를 배우라고 말한다. 앙페제는 사업에 필요한 돈은 내기를 해서 따거나 채무에 의존했으며 죽음을 맞이한 순간조차 갚을 생각이 없었다. 앙페제가 제시하는 삶의 원칙들은 어쩐지 쓴웃음이 나온다. 앙페제는 채무를 갚지 않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교묘하게 법과 권력을 비웃는다. 법망은 교묘하게 선한 사람들이 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가는 것을 방조하고 권력자들은 막대한 채무를 지면서도 호사를 누리며 당당하다. 삼촌은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건강해야 하며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질도 있다고 말한다. 채무자가 해야 할 일들이 나열될수록 사회를 비틀어 바라보는 필자를 발견하게 된
[용인신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각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눴으나 생물들의 감각은 더 풍성하다. 모든 생명체는 각각의 고유한 감각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세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는 동물들의 감각과 인지에 관하여 13꼭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통해 지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안내한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굉장한 “광경과 질감, 소리와 진동, 냄새와 맛, 전기장과 자기장”같은 보이지 않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동물들은 어떤 풍경 속에서 사는냐에 따라 다른 감각으로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는다. 인간이 세 개의 색을 조합해서 인지한다면 어떤 생물은 열 여섯 개의 색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생물은 소리를 이용해 시력이 닿지 않는 그 너머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한다. ”감각은 동물의 삶을 구속함으로써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23쪽)“ 그런데 무궁한 감각을 동물들은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자연의 생물은 오히려 가장 최소의 감각만을 활용한다. 필자는 “환경적 빈곤은 행동의 확실성을 위해 필요하며, 확실성은 풍부함보다 더 중요하다.(....)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용인신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짠내가 진동하다 못해 쓴 내가 올라올 지경이다.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우 엄마의 넋두리는 깊은 걱정이 묻어난다. “사는 게 참 얄궂다. 인생 지랄에 비하면, 바다가 갑자기 미쳐 날뛰는 건 일도 아니지.”(14쪽) 이수는 불행했다. 양육비를 타기 위해 이수를 데리고 있지만 돌보지는 않는 엄마.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새 아빠. 다행히도 새아빠의 엄마인 할머니는 그런 이수를 일터로 불러 밥도 챙겨주고 돌아가는 길에 슬그머니 반찬도 챙겨준다. 어느 날 엄마도 새아빠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고 그 자리에 이수도 있었다. 할머니는 이수를 작은 섬 솔도로 데려온다. 조용히 살고 싶은 이수를 기윤이 괴롭히고 이 상황에서 신세아가 등장해 이수의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과정 속에서 이수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흥미롭게 봐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무관심, 무기력, 복지의 사각, 재판의 문제점, 청소년 심리 등을 이야기 안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이수가 사는 솔도의 원래 이름은 수인도. 죄인을 가두는 섬이었다. 사람과 섬의 이름에 의미를 담
[용인신문] 현대는 목적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시대이다. 어른들은 목표가 없는 아이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살피기도 한다. 현대인은 바쁘다. 너무 바쁘다. 우리 주변은 정보로 넘쳐나고 있다. 『피로사회』의 저자로 알려진 한병철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시간은 절대로 향기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너무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만들지 못한 채 정보와 정보 사이를 떠도는 무중력의 삶을 산다고 말한다. 과거에 인간은 믿을만한 가치관에 의해 생의 과정을 누리며 살았는데 근대 이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면 누구든 영속성 있는 존재로 굳건히 자리하지 못해 불안과 공포가 발생한다. 결국, 무가치한 존재가 되고 어떤 우연이 닥쳤을 때 금세 무너져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살게 된다는 말이다. 시간의 향기를 회복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다시 말해 뭔가 되기에 빠져 바쁘게 사는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설 때 진정한 생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에 향기가 있다면 그것은 의미를 회복한 시간을 말한다. 『시간의 향기』는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시간을 회복하기 위한 벽돌을 쌓아 올린다.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