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류
휘민
병상에 누운 그녀가 갓 부화한
아기 새처럼 나를 쳐다본다
달력 뒷장에 적힌 전화번호를 더듬거리듯
내 몸 여기저기를 꾹꾹 누른다
나를 삼키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기울어지는 저녁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고 마는 나
그녀의 정강이를 손아귀로 잡아 본다
신이 아직 파괴하지 못한
단단한 어둠 한 줌
창밖으로 소낙비가 지나간다
엇박자로 덜컹거리는 심장 속으로
또 한 차례 밀려드는 어둠
저 비가 긋고 밤이 오면
저녁은 누구의 무릎을 짚으며 돌아갈까
사선으로 떨어지는 젖은 불꽃들
우두커니 형형이다
병상을 지키고 있는 시인의 몸을 꾹꾹 누를 수 있는 시선이라면 육친이 맞다. 혈육이어서 병상의 그녀는 시인을 삼키듯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 장면이 눈물겨워 시인은 슬그머니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장면이다. 생로병사의 통과의례를 누가 비켜갈 수 있을까.
시인의 진정한 문장은 그 다음 부터다. 혈육의 정강이를 잡아보는 시인에게 정강이는 ‘신이 아직 파괴하지 못한/단단한 어둠 한 줌’이어서 혈육의 생애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혈육은 어떻든 더 오래 더 강건하게 살아 있어 시인을 삼키듯 바라보고 몸의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기를 희원하는 것이다.‘ 기울어지는 저녁’으로 상징되는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부수고 싶은 것이 ‘단단한 어둠 한 줌’으로 불러오는 생명에 대한 이미지다.
그러나 어둠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이미지는 계속 시인의 의식을 지배한다.‘ 엇박자로 덜컹거리는 심장 속으로/또 한 차례 밀려드는 어둠’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비가 그치고 밤이 오면 ‘저녁은 누구의 무릎을 짚으며 돌아갈까’ 또한 죽음이 이미지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