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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물류창고ㅣ이수명


물류창고


이수명

 

우리는 물류창고에서 만났지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차려입고

느리고 섞이지 않는 말을 하느라

호흡을 다 써버렸지

 

물건들은 널리 알려졌지

판매는 끊임없이 증가했지

창고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지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했어

 

무얼 끌어내리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담당자처럼 걸어다녔지

바지 주머니엔 볼펜과 폰이 꽂혀 있었고

전화를 받느라 구석에 서 있곤 했는데

그런 땐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

(.......)

 

창고를 빠져나가기 전에 정숙을 떠올리고

누군가 입을 다물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것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조금씩 잠잠해지다가

더 계속계속 잠담해지다가

이윽고 우리는 어느 순간 완전히 잠잠해질 수 있었다

 

이수명에게 물류창고는 심리적 폐쇄공간이며 사회현상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은, 다시 말하면 산더미같은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입고하고 출고하는 일을 하는 담당자는 창고를 방문하고 있는 일군의 국외자들에게 무관심하다. 세상의 이치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생을 이끌어간다.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물류창고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차려 입었을 뿐, 창고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울고 토하고 소란스럽기만 할 뿐 노동의 주체가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죽도록 일하는 사람과 빈둥거리는 사람과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과 노동에서 은퇴한 사람이 있다. 그곳에 무수한 서사가 존재한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