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5억 인구 중 전고(古文)의 대가를 꼽으라면 곽말약을 비껴갈 수 없다. 그가 일찍이 재미있는 잡서 한 권을 강호에 내 놓았는데 풀어쓴다면 맹자 이혼에 관한 보고서의 전말 쯤 된다. 아성(亞聖) 맹자는 아내와 이혼을 하는데 이혼 사유가 아내의 외모가 경국지색이라는 기막힌 이유에서다. 아내의 외모가 너무 미색인지라 남편인 맹자는 학문에 정진하는데 지장이 있다하여 아내를 내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맹자는 미색의 아내까지 내쳐가면서 학문에 정진한 결과 당대는 물론 후대와 만고에 이르러 공자와 더불어 인류 스승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선다. 그 맹자가 제자에게 말한다. 너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바로 좋은 의견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헛 똑똑이(賢者)는 보이는 것만 믿고, 뭐 좀 배워 안다는 자(識者)는 믿는 것만 보고, 어리석은 자(愚人)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만들어보고, 일반인(凡人)은 남들이 본 것만 떼로 몰려다니며 찾아가서 믿는다. 이는 모두가 근본을 잃은 탓이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맹자 이루하장 상에서 말한다.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天下之本在國),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고(國之本在家),가정(家庭)의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께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자 공자 왈,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무엇이 임금다움이며, 무엇이 신하다움인가를 말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 선비노애(蘆厓)유도원(柳道源1721~1791:조선후기)는「다움」에 대한 실천 사항을 경계의 글인 잠(箴)으로 해석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네 개의 사막잠(四莫箴)과 마땅히 해야 하는 사당잠(四當箴)이 그것이다. 動必招尤 莫如勿動(동필초우 막여물동) - 행하면 허물되니 행하지 않는 게 낫고. 言必致吝 莫如勿言(언필치린 막여물언) - 말하면 후회되니 말하지 않는 게 낫고. 做必無成 莫如勿做(주필무성 막여물주) - 하면 되는 게 없으니 안 하는 게 낫고. 求則自屈 莫如勿求(구즉자굴 막여물구) - 구하면 비굴해지니 안 구하는 게 낫다. 當動而動 動亦無尤(당동이동 동역무우)- 행 할 때 행하면 허물이 없고. 當言而言 言亦無吝(당언이언 언역무린)- 말 할 때 말하면 후회가 없고. 當做而做 做亦有成(당주이주 주역유성)- 일 할 때 일 하면 이루어지고. 求有
어린 시절 고아가 된 소년이 있었다. 삶에 부쳐 목숨을 끊으려하자 고부 왈, 남자의 인생에는 이불솜을 적시며 들을 만한 눈물겨운 인생사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훗날 독일의 문호 괴테에 의해 재해석되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로 유명해진다. 고부는 말한다. 남자는 자신의 키만큼 책을 쓰고 죽어야 한다. 고아가 된 소년은 축목(祝穆)이고 고부(姑夫)는 남송의 거유 주자(朱子)이다. 축목은 고부 주희에게 학문을 배워 일생에 자신의 키만큼 책을 썼는데 236권의 경사자집(經史子集)의 거질인『사문류취(事文類聚)』와 방기로 두 권의 책을 더 찬(纂)했는데『방여승람(方輿勝覽)』과 『당서(唐書)』문예전(文藝傳)에 마철저이성침(磨鐵杵而成針)이 있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해 파락아(擺落兒)로 산다. 이백은 불량배(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사천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던 중 상의산(象宜山)에서 공부 한다. 불량배들과 놀던 가락이 있다 보니 공부에 습(習)이 안 되어 10년을 못 채우고 하산 한다. 하산도중 계곡 바위에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쇠공을 갈고 있는 노파를 만난다.
계찰괘검(季札掛劍) 춘추시대(春秋時代)오왕(吳王) 수몽(壽夢)의 네 아들 중 막내 계찰(季札)이 왕재(王才)다.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하나 왕위 계승은 장자위존(長子位尊)을 들어 사양한다. 왕은 맏아들인 제번(諸樊)에게 위를 물려주면서 계찰이 왕재니 차례로 왕위를 전해 계찰이 왕위를 잇도록 하라. 유언한다. 큰아들 저번은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 스스로 선봉에서 죽음을 자초한다. 둘째도 셋째도 그렇게 죽자 왕위계승은 넷째인 계찰 차례가 됐으나 정작 본인은 왕위를 사양하자 셋째인 여말의 아들 주우(州于)가 계승하니 수몽의 장 손자이자 저번의 아들 광은 숙부인 계찰 공이 왕위를 사양하면 장손인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며 초나라에서 망명 온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을 살해하고 임금이 되었으니 그가 오왕 합려다. 그 후 계찰은 연릉에 봉해져 연릉계자(延陵季子)가 된다. 기원전 544년 오왕 4년 오왕의 명으로 중원 각국으로 사신이 되어 북행(北行)길에 작은 서(徐)나라에 이른다. 계찰 일행을 환대하던 서 나라 왕은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했다. 계찰은 그가 자신의 보검을 원함을 알고는 중원(中原)각 나라의 사신 일
구(舊) 소련 군사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던 오백룡吳白龍,1913년~1984은 뒤돌아가 라는 말에 절대 복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사학교에서 쫒겨나게 될 무렵 상관이 묻는다. 왜 뒤돌아가를 안 하느냐. 오백룡은 답한다. 패장에겐 죽음이 있을 뿐이고, 참 군인에겐 뒤돌아가는 법이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 옆에 있던 장군이 묻는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백룡은 관자춘추(管子春秋) 소문(小門)편에 기록된 말을 한다. 관자는 말하길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려면 기습을 해야 한다.(管子 曰 野戰必勝若何이며 管子對曰 以奇.) 이 대화를 마음에 담아두었던 김일성은 훗날 오백룡과 손을 잡고 오백룡 말대로 남한으로 기습해서 쳐들어온다. 이른바 6.25 전쟁이 그것이다. 그 후 남과 북은 38선이라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한 민족 두국가가 되어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로 서로의 아픈 곳만 콕콕 찔러 대며 으르렁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까지 보유한 상태다. 오기 장군이 쓴 오자병서엔 이렇게 기록한다. 전쟁의 중요한 것은 먼저 적장을 알아야한다(凡戰之要 必先占其將). 이글에 대하여 모택동은 대장정 때 팔로군 사령관 주
백성에게 있어서 밥은 하늘이다(食爲民天). 이 밥을 하는 솥을 일러 정(鼎)이라 한다. 정은『주역』 64괘 중 50번째 괘 명인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정(鼎)을「발이 세 개이고 귀가 두 개로서 오미(五味)를 조화시키는 보기(寶器)라 한다. 쉽게 말해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큰 솥이란 얘기다. 후모무정(后母戊鼎)이 그것이다. 임금의 어머니 무(戊)를 기려 만든 큰 솥을 말함인데 임금이 제사를 지낸 후 짐승을 삶아 일부는 신하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백성과 함께 나눠먹는다. 신하들은 임금이 나눠준 고기를 자기 집에 가져가 처자식과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마을 선비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선비가 그 고기를 먹고 건강히 자랄 수 있도록 길러낸다. 이를 양현(養賢)이라한다. 이렇게 길러낸 선비가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할 때 이를 상현(尙賢)이라 한다. 상현의 직무는 국가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이 전부다. 그러므로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제 배만 불러서는 안 된다. 본래 밥이란 결코 혼자 먹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밥을 함께 먹어야 제 맛일까. 남성위본의 사회에서 여자가 대통령이 된 것은 혁명이다.「잡괘전(雜卦傳)」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12월 19일은 파평 후인(后人) 윤봉길 어른의 80주기일이다. 윤 의사는 1921년부터 오치서숙(烏峙書塾)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강독했으며 특히 자로의 포호빙하에 대장부의 기개를 느꼈다한다. 포호빙하는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문장인데 포호빙하지용(暴虎馮河之勇)이라고도 한다. 공자는 제자에게 말한다. 군자(君子)란 마음으로는 집착이 없으며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에게 등용되면 충(忠)으로 목숨을 다하고 등용되지 못하면 초야(草野)에 숨어 살뿐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안회(顔回) 뿐이다. 이를 듣고 있던 자로(子路)는 자신을 제쳐두고 후배인 안회를 인정하는 스승의 말에 크게 서운했다. 이에 공격형 질문을 한다. 만약에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자로를 제자로 삼은 뒤부터는 저자거리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스승인 공자의 답변은 달랐다. 공자 왈 나는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발로 황하(黃河)를 건너려다가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하여 두려운 생각을 가지며 기쁨으로 도모하며 일을 성공시키는 사람과 함께
아산 정주영이 가장 많이 사용한 언어는 해봤어? 해봤냐고.라는 말이란다. 이 말을 역사학자 토인비식으로 말하면 '도전과 응전' 쯤 될 것이고 투지와 깡으로 종결된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로버트레드포드의 대사처럼 인생은 투지와 깡이다. 계속시도 하라는 이 말은 다름 아닌 논어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산 정주영은 논어의 가르침을 따르기 보다는 대학을 더 선호했다. 그는 평생 대학의 가르침대로 살았고 대학의 가르침대로 죽어갔다. 물론 그가 마지막 노년의 죽음에 임박해서 성경책을 본 것을 제외하면 그의 평생은 대학의 가르침,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귀결된다. 아산 정주영은 9세 때 서당에서 대학을 뗀다. 우문인지 모르나 이것이 그가 배운 학문의 전부란다. 7세 때 논어를 읽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나 8세 때 춘추를 읽었다는 중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견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학문편력기이다. 아산은 맨몸으로 현대 그룹이라는 부를 이룬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뭐가 부족해서 대통령이 못됐을까. 대통령 출마는 했는데 당선이 못 된 것이다. 예수의 재가제자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해석을 내 놓는다. 모든 권력은 위에서 내려온다. 이를 두고 1927년
여자는 시댁 밖에서 태어나 자라서 시댁 안으로 들어가 살면서 삶을 접는 존재다. 친정에서 엄마를 보고 엄마의 삶을 배운다. 친정엄마를 보면 그 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엄마를 보고 자라지 못한 딸이 가장 불쌍한 딸이다. 보고 자라지 못했을 때 가해지는 형벌 같은 말.『본데없이 자란 것』시집온 며느리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시집살이의 성패는 친정엄마의 존재유무에서 결판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고래로 집안의 흥망과 영고와 성쇠는 며느리의 들고남에 있다. 이혼이 대세인 요즘시대에 뭔 고리타분한 소리냐지만 뼈대 있는 집안은 그렇지 않다. 시집을 간다는 것은 작게는 한남자의 아내, 크게는 가문의 며느리가 됨이다. 스스로를 가문과 사랑하는 이에게 구속당하는 것. 혼자 몸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누군가에게 매이는 것을 기꺼이 감내 할 수만 있다면 시집은 갈만한 곳이다. 시집은 여자가 친정을 떠나서 가야할 첫 집이며 마지막 집이다. 시집은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이를 시집살이라 한다. 질서는 시부모님에서 비롯되는데 차라리 벽을 탈게 라는 말에서 보듯이 시집살이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일 게다. 아담의 처 이브가 구백 살
천만 명의 피면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될 요량으로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 피를 빨아 먹은 모기는 부하모기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두루 다니며 사람을 찾다가 평릉현 양지 말 계곡에서 목욕하는 양홍이란 청년을 본다. 쾌재를 부르며 피를 빨아먹으려고 덤비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몸에 상처하나 없는 것이다. 남자의 몸이 이렇게도 깨끗할 수 있단 말인가. 구백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는 차마 깨끗한 남자의 몸에 상처를 줄 수가 없어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 이후로 모든 모기들은 평릉현 양지 말엔 들어오지 마라 명한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그 땅엔 모기가 없다 한다. 그런데 되돌아가는 길에 평릉현 음지 말 쯤 이르자 사람의 피가 고픈 모기들은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아먹었다. 음지 말엔 맘씨고운 처자 맹씨녀가 살았는데 모기들이 부모님의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안쓰러워 모기를 쫒을 요량으로 부모님 방에 먼저 들어가 매일 밤마다 모기들에게 피를 빨려주고 나온다. 배가 부른 모기들은 부모가 방에 들어와도 더 이상 피를 빨아먹지 않아 부모의 몸은 멀쩡하지만 딸은 모기한테 물려서 온몸이 퉁퉁 부어 몰골이 숭악 해서 결국은 시집도 못가고
사월은 앞 다투어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사월을 내게 주면 나머지 달을 다 네게 주마라는 스페인 속담처럼 4월은 1년의 꽃이다. 졸업이란 영화에서 싸이먼 앤 가펑클은 사월에는 그녀가 올 거야(April come she will)를 노래한다. 쿤타킨테의 후손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뿌리에서 만딩카 족의 용사는 사월을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달이라 한다. 시인 박목월은 그런 4월을 목련꽃 그늘아래 편지를 읽는 달이라며 4월의 노래란 시를 썼고, 납북된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 대문을 잠그지 않았던 작곡가 김순애 교수는 곡을 붙여 노래로 남긴다. 그런데 T.S.엘리어트는 서사시 황무지에서 사월을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이라고 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4월은 시인의 말이 아니어도 온갖 식물과 꽃들이 만개하는 달이다. 그 온갖 꽃이 만개 하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있었으니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4월의 신부가 그 꽃이다. 4월의 신부가 된 여인은 평생에 일곱 개의 이름을 갖는다. 딸로 태어나 여자로 자라서 여성으로 성숙되고 아내로
하나님을 속일 정도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대를 훔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포도가 열리니까 포도나무인가 포도나무니까 포도가 열리는가. 이는 죄를 지으니까 죄인 이전에 죄인이니까 죄를 짓는다는 기독교회의 뼈대를 이루는 원죄론이다. 근본이 그러니 그렇다는 거다. 서울소재 한국 중량급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가 박사학위 표절이 들통 나서 6개월 설교 중지와 월급 30프로를 감봉 당했다. 한국 교회가 똥통으로 빠지는 순간이다. 본인은 기도원으로 가서 근신중이란다. 아마도 6개월을 그렇게 버틸 심산인 모양이다. 박사학위 표절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담임 목사직을 떠나겠다고 까지 말한 평소의 쾌도난마와 같은 설교에 비하면 꽤나 옹색해 보인다. 조선유가(朝鮮儒家)는 아국(我國)18현(賢)이 있고, 그 안에 에이스로 불리는 동방 오현이 있다. 그 다섯 선비가 어린 시절 귀에 딱지가 지고 뼛속까지 새겨들어온 말이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외밭에서 신 끈을 매지 않으며,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오얏 아래서 갓끈을 매지 않는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오해받을 짓조차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박사학위 표절이 어찌 그분뿐이랴. 모세시대 같으면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