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3년을 채워가는 전염병 사태가 다시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침체된 경기, 높아만 가는 물가와 금리. 어느 것 하나 가볍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인지라 마음 밑바닥에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려버리고 안전하게 있고 싶은 욕구가 생기곤 한다. 오래전 마녀들이 생긴 이유가 그러했다. 논리적인 일 처리는 머리도 복잡하고 절차도 복잡했다. 마녀에게 책임을 물으면 사람들의 시선은 두려운 존재로부터 멀어졌다. 결국, 문제해결도 요원해 졌다. 『마녀사냥』은 그러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작은 마을에서 어떤 일로 번지는지 보여준다. 에스벤은 마녀사냥에 엄마가 화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도망친 에스벤을 구해준 한스는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약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에스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한스의 말은 독자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한스는 에스벤에게 또 말한다. 힘이 있는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으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며 그렇게 되면 멈추는 거라고, 그리고 그들이 믿는 진리라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듭 부탁한다. “건전한 의심”을 하라고. 몇 가지 숫자들이 뉴스를 어두운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전염병 확진자가
[용인신문] 크리스퍼(CRISPR)는 세균의 유전체에서 발견되는 염기서열을 뜻하는 말이니 ‘크리스퍼 드래곤 레시피’라는 제목은 유전자를 이용한 용을 만드는 방법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용을 만들겠다니 이런 이상한 선언이 어디 있을까? 용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필자는 용과 신체 특징이 인접한 동물들의 유전체를 탐구한다. 이야기 속의 용은 계략을 쓰니까 머리도 좋아야 한다. 그러니 뇌에 관한 연구는 필수다. 불을 뿜기 위해 화학반응을 연구한다. 무거운 용이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생물의 신체 구조를 해박하게 알아야 하며, 항공 분야의 지식도 동원된다. 물론 실험 중에 용이 불을 뿜어서 언제든 목숨을 잃을 각오도 필요하다. 세계 역사에서 용의 등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신화와 문화를 아우른다. 물론 한국의 용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용이 나와서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 사람이고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흠은 눈감아 줘도 될 법 하다.(책 날개에 저자를 2013년 줄기세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되었다고 소개한다.) 오래전 토머스 트웨이츠의 <염소가 된 인간>이라는 책이 이그노벨상을 탄 바
[용인신문] 우리가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은 우리에게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만약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일까?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으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저주받은 예언 능력을 가진 공주였다. 문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신화의 카산드라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에서도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사람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있다. 테러가 일어나 사상자가 일어날 것을 예언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겨우 네 사람을 설득했는데 이들은 시립 쓰레기 매립장에서 스스로 “인간폐기물”이라 칭하는 이들이다. 카산드라의 설득으로 테러를 막았으나 이들의 영웅적인 행보는 뉴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주인공조차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자신과 친구들에게 오히려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에서 카산드라의 능력을 알아본 집시 노인은 “우리는 사람들이 미래를 나갈 수 있게끔 그들에게 청사진을 제시해 주고, 그들을 프로그래밍해 주는 사람들”(390쪽)이니 점술가를 찾은 손님에게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라고 말한다. 결국 점성가조차
[용인신문] 9년간의 사이를 두고 김영하의 소설이 나왔다. 소설은 이야기의 힘이나 인간 존재, 인공지능 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딜레마를 소환하면서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 깊은 사유로의 여정을 떠난다. 소설의 전반부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모호해진 등장인물의 방황이 중심이다. 호기심이든 필요에 의해서든 휴머노이드를 이용하는 지구의 미래는 어둡다. 자의식을 가진 기계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간과 반목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지만 그들의 논쟁은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라드라고 불리는 철이. 그를 만든 최진수 박사. 이들은 종을 뛰어넘는 관계를 가질 수 있을 듯 보였지만 근본적인 존재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철이가 만난 휴머노이드 달마는 이름처럼 인공지능의 사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이 외에도 철이와 민이, 철이와 인공지능 로봇 달마의 관계도 이 소설의 다른 축을 담당한다. 철이와 철이를 만든 최진우 그리고 민이가 보여주는 결말을 통해 작가는 개별성이 갖는 가치와 현재의 아름다움을 말해준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ACM FAccT(ACM Conference on Fairness, Accountability, an
[용인신문] 작가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은 신변잡기를 적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글을 써 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어린이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작가의 직업이 어린이와 관련된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무의식에 어린이라는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완성된 도서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껏 반영되었다. 2020년 나온 책이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아 리커버 한정판이 나와 다시 읽어본다. 무서워하는 것이 많은 어린이. 저자는 어른의 역할은 무서운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앨리베이터 혼자 타기가 무섭다면 함께 타 주고 혼자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기 같은 일 말이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보호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한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라는 세대를 발견하고 보호하고 일으켜 세우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TV에서는 어린이에게 맞춘 뉴스가 나오고, 모든 사람이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새싹 뱃지를 다는 식으로 어린이를 위한 날로 만들자는 주장도 이어간다. 하나같이 작은 일이지만 일상에서 쉽게 간과하는 배려들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가진
[용인신문] 2020년 판사 문유석은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가 됐다면 지금보다 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미래. 하지만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음껏 여행하며 에세이를 쓰던 것을 부러워했기에 두 번째 인생으로 작가의 길을 택했다. 재직 당시에도(2014년 8월) 세월호 관련 기고문을 발표했다가 직장에서 불편한 처지에 놓였던 문유석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문유석의 개인적 가치관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산문집인데 올해 특별판으로 또 출간되었다. 대개의 산문집이 그러하듯이 무엇을 보고 가슴이 떨렸는지 무엇에 분노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은 무엇이고 은근한 욕망은 무엇인지 열거되고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시대가 달라져 젊은이들에게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카산드라의 예언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성인이라 불림 받는 이들의 에세이가 다 비슷하겠지만 ‘그럼에도’를 말하는 저자는 책 속에서 지성인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다. 힘을 가진 이들의 작은 나눔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음도 말한다. 문유석은 과거 법조인들이 누린 특권이 거의 사라지고 오직 하나가 남았는데 이를 ‘그
[용인신문] 2022년 2월 26일, 한국문학의 큰 별이었던 이어령은 89세를 끝으로 어머니가 계신 먼 곳으로 길을 떠났다. 문학을 공부했고 수많은 저작물을 남겼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어령의 저작 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저자가 길어 올렸던 문학의 원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필자는 자신의 문학을 낙타와 선인장의 언어에 비유한다. 사막을 지나는 낙타는 하늘을 보기보다 긴 속눈썹 아래 자신의 심연에 있는 꿈을 보며, 선인장은 가시 아래 강을 품고 별이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어령에게 어머니는 물의 원천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이어령의 어머니는 수술을 위해 서울에 가셨다. 병문안 오신 손님이 당시엔 귀했던 귤을 선물했는데 어머니는 그걸 드시지 않고 어린 이어령에게 보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귤이 도착할 즈음 어머니의 유골도 함께 도착한다. 그래서인지 산문은 온통 깊은 회한(悔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 나간다. 어머니와 함께 기억하는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바다(海)는 어머니(母)라는 말을 품고 있다 거의 한 세기를
[용인신문] 기억은 사실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있다. 『책들의 부엌』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힘든 감정들이 기억을 지배한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소양리 북스 키친을 방문하고 나서는 그 기억을 생을 위한 따뜻한 에너지로 대체하고 떠날 수 있게 된다. 배경이 되는 소양리는 마이산이 보이는 어느 시골이다. 그곳에 식당을 차린 사장과 스테프그리고 방문자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생의 방향과 목적을 잃은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결말을 향해 가고 있어서 특별할 것 없는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랑비와 같다. 어느 새 다인의 공허감에 공감하게 되고 마리의 거짓말을 이해하게 된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옆에 있는 스테프가 되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스테프가 되어 마치 바느질을 하듯 한땀 한땀 생각을 살피고 마음을 살피고 다음 걸음을 걷게 할지도 모른다. 눈앞에 북스 키친 통유리 바깥에 매화가 보이고 밤늦게까지 담소를 하는 방문객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지고 빗소리가 눈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북스 키친에서 나누는 1년 동안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휴식과 추억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들게
[용인신문] 전래동화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를 말한다. 우리 옛이야기를 기록한 최초의 3대 동화집은 『조선동화집』(조선총독부, 1924), 『조선동화대집』(심의린, 1926), 『조선전래동화집』(박영만, 1940)이다. 『조선동화집』은 최초의 기록이긴 하지만 당대 일본인의 시각에서 편집되었다. 『조선동화대집』은 한국어로 기록된 최초의 전래동화집이지만 근대적인 문물이 등장해 옛이야기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조선전래동화집』은 박명만이 채록한 이야기 75편이 실려 있다. 도서는 저술 동기와 저자 소개로 시작되어 75편의 이야기가 소개되며 마지막 부분에는 원문 영인본을 싣고 있다. 우리 이야기인데도 번역자가 필요한 이유는 오래 전 기록된 문헌이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야기마다 채록한 지역 이름을 기록하기도 하고 저자가 자신의 기억을 참고했다고 적기도 한다. 60여 편의 이야기들은 북한의 옛이야기이다. 어떤 이야기는 근원적인 인간의 마음 탐구에 대한 열정이 드러나며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구술하는 현장감을 살려 표현했다. 민담이 갖는 특유의 재미를 찾는 즐거움도 있다. 전래동화의 변화무쌍한 변화를 관찰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도 하
[용인신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실학자였다. 남인 출신으로 성호 이익의 영향을 받았으며 정조 재위 당시 과학자의 면모도 보였다. 이 때 관심을 갖게 된 천주교로 인해 19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는 거대한 저술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다산이 예순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적은 글을 엮어낸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고도 예순에 “자신을 잃은 자”라고 적고 있는 다산의 글귀를 인용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탐구해 보는 책이다. 다산의 습관은 삶 속에 습관이 된 관성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만큼 거리가 먼 것이 없다는 배움의 이야기는 독자의 지금을 살피게 할 것이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어른이라는 말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재능을 발휘하는 데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니 꾸준함을 유지하라는 말은 정권이 바뀌는 시기에 다시 곱씹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말은 무겁고 울림은 크다. 다산의 습관에 관한 조언들은 어찌보면 자기계발서에서 익히 발견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말이 자신의 삶으로부터 비롯되
[용인신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겨우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었다. 30년간의 기자생활 후 은퇴한 그는 실크로드를 걷기로 마음먹고 봄부터 가을까지 길을 걷는다. 그 과정을 적은 책이 『나는 걷는다』이다. 세 권으로 출간된 책의 인세는 쇠이유(Seuil)라는 비영리재단의 재원으로 쓰이고 있으며, 재단은 프랑스 비행청소년이 2000km 걷기에 참여해서 성취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갖고 바람직한 시민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나는 걷는다』는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달리 사진이 없다. 편집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길만이 중요할 뿐이며, (중략) 길이란 게 걷는 사람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가 세계에-그리고 자신에게-부여하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시선이 물질화된 것임을 알고 있다. 이를 인식하는 데에는 말만으로도 충분하다.”(8쪽) 60세라는 나이는 은퇴 후 풍요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기였다. 여정엔 인간이나 자연에서 오는 위협도 존재했다. 하지만 저자는 마르코폴로가
[용인신문]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폭풍우) 에서 차용해 왔다. 템페스트에는 미란다라는 여성인물이 ‘아름다운 세계’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 동생에게 쫓겨난 아버지와 외딴 섬에서 살던 미란다는 난파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며 아름답다(Brave New World)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해치려고 했던 인물들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멋진 신세계도 제목과 내용이 아이러니한 관계에 있다.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속에서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세계관은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다. 이를 위해 개별성이나 다양성이 무시되고 인공수정과 교육을 통해 계급을 유지한다. 충만한 사랑으로 태어나야 할 아이들을 공장에서 생산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야만으로 치부한다. 소설에서 아이들이 꽃과 책을 증오하게 만드는 훈련과정은 주도면밀하다. 지배계급을 만드는 과정 역시 정교하게 설계되어 오랜기간 빈틈없이 진행된다. 효율이 중요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수단으로 쓸 수 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궁극적으로 멋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보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