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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23 -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나요?

나는 기다립니다. / 글:다비드 칼리/ 그림:세르주 블로크/ 출판사:문학동네

최은진의 BOOK소리 23 -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나요?
   
◎글:다비드 칼리/ 그림:세르주 블로크/ 출판사:문학동네/ 정가:10,000원

우리 삶은 수많은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다. 삶의 끈을 따라서, 기다림의 미학을 아름답게 그려낸,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가로로 길기만 한 이 그림책이 왜 이렇게 불편한 판형이어야 하는지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이해하게 된다. 스위스 출신의 작가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것을. 단순하고 간결한 그림 한 페이지에 문장 하나가 주는 깊은 여운이 오래 가슴이 멈춰있다.

빨간 털실의 기다림은 어린 시절엔 빨리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고 잘 구워진 케이크이고, 크리스마스이다. 그러다가 기다림의 끈은 사랑이었다가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가 한 통의 편지였다가 태어날 아기와의 만남으로 성장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우리는 기다린다. “미안해”라는 따뜻한 한마디를, 아이들의 안부전화를, “괜찮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그리고 우리는 기다린다. 그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다시 봄이 오기를...굽은 허리를 한 그림의 사내는 초인종 소리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그를 보러 오기를 기다리고 새 식구가 될 아기를 기다린다.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노후의 생활을 빨간 털실을 이용해 풀어간다. 때로는 이어짐으로, 엉킴으로, 풀어짐으로, 심지어 끊어짐으로...우리의 인생을 연결해 주는 것을 묘사한 빨간 털실. 이야기의 끝에는 빨간 털실 한 뭉치가 놓여 있다. 이야기는 끝이 나고 인생도 끝이 난 듯 보이지만 “끝”이라는 글자의 받침 “ㅌ”에 X표를 하고 “ㄴ”를 그려 놓는 센스넘치는 감각을 보여준다. 기다림의 끈을 놓지 말라는, 인연의 끈을 이어 가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저 단순한 그림과 한 두 문장의 짧은 글뿐이지만 책장은 그리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담백한 문장과 간결한 그림속에는 숨겨진 생각과 울림이 있다.

어떤 기다림은 설레이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어떤 기다림은 지루하고 불안하며 견디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기다릴 무엇인가 있단 사실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는 이 책을 보며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