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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김완영의 의미 있는 섹소폰

   
▲ 색소폰 연주 재능봉사로 더불어 행복찾는 김완영(71세) 행복전도사

맹호부대 소속 참전 화랑무공훈장
뒤늦게 목회자로 새인생 ‘연주봉사’
처인노인복지관 최고의 ‘인기스타’


“1967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습니다. 수색작전에 40명이 투입됐고 한 순간적의 기습으로 거의 사망했습니다.

“1967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습니다. 수색작전에 40명이 투입됐고 한 순간적의 기습으로 거의 사망했습니다.

저는 살아남은 3인의 병사 중 1인으로 전우들의 시신을 후송시킨 뒤 지원 병력과 함께 작전에 투입돼 적1787명을 생포했습니다. 베트남전쟁 역사에 빛나는 ‘화랑 67-6호 작전’이었고 이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수색작전에서 우박 파편을 맞고 우측 어깨가 부서졌으며100여개 파편을 어깨에 간직한지 20년이 지난1987년, 6급 상이군인으로 판정받았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서원유탱크와 송수관을 제조하는 리비아 공사장파견근무에 참여하는 등 기울어진 가세를 바로세우기에 노력했다.귀국 후 공장 신축 등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막일을 하던 도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듯 실신했고 깨어난 즈음 독실한 신심으로 신학대학에 입학, 40일간의 금식기도를 체험하고 목회자의 길을 시작했다.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면 범죄치 않는다.’ 김완영 목사가 명함에까지 새겨 넣고 늘 가까이서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좌우명이다.김 목사는 “늙고 병든 이웃을 친구로 삼았다”며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병든자 등 우리가위로하고 사랑을 나눠야할 이웃”이라고 말했다.우박 파편에 당한 우측 어깨를 치료할 당시,입원했던 병원에서 색소폰 연주봉사를 목격하고 색소폰의 아름다운 소리에 감명을 받았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3년여 동안 악기를 배웠고 평생학습센터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목회자의 길을 걷던 어느 날 직접 설립했던 교회를 젊은 목사에게 양도하고 지니고 있던 악기다루는 재능을 이웃과 나누며 본인도 행복을 찾기로 했다.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한 김 목사와 비슷한 처지의 상이군인, 보훈환자들을 볼 때면 가슴이아팠다.

이들에게는 사비로 위문품까지 준비해서 연주봉사를 다닌다. 자택이 용인으로 용인시처인노인복지관에서는 매주 수요일 3층 대강당과 화요일 바람골에서 재능봉사를 펼친다. 비슷한 또래의 복지관 이용자들에게 호응을 받아 연주장은 매번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는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노후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며 “하모니카와 색소폰은 장르를 넘나들며 모든 신청곡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베테랑급”이라고 말했다.

또 “연주하며 즐기는 행복에, 듣고 행복해 하는 관중의 모습을보는 행복까지 합쳐져 두 배의 행복을 느끼고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이군경회, 무공수훈자회, 월남참전유공자회 등 회원 활동을 하면서 오른손이 하는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모범활동으로 각 회장은 물론 용인시장으로 부터 표창장도 수상했다.
그는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면 모두가 친
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