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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인도답사


떠날 수 있어 행복했다. 떠나기 위해 맡긴 몸은 알아서 움직였다.


헤벌쭉 거리며 빨아먹는 사탕처럼 답사는 울림의 연속이다.





      


답사는 역동성을 가장 풍부하게 드러낸다. 답사는 언제나 모호해서  철학적이며,철학적이어서 내맘대로이다. 답사는 온전히소유의  충동을 갖고 오는 자의적 행동의 발현이다. 시선의 일방성은 근대성의 하나이다. 하지만 인도에선 보는 쪽이 보여지고보여지는 쪽이 보는것이다. 델리에서  자이푸르로  가는 길이다. 가도가도 끝나지않는 데칸고원의 마른 길 위에서는 보든, 보여지든 알아서 순연(順延)해진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걸어가는 사람과 차를  사람은 마주보고 나란히 가고 있으므로 평등하다. 익숙하기보다 덤덤해지는 것에 몸이 반응해야 편해지는 인도의 길은 무질서의 질서에 편입해야 맘도 너그러워진다.

 

인도의 마음은  넓고 깊다. 소의 눈망울과 어린 아이들의 큰  눈은 하나로 모아져 꿈벅거린다. 나고 죽고   영속으로  이어져온  시간의 가루들은 수만의 신들로 반짝이는 힌두의 역사로 명멸했다.  위에 덧입혀진 브라만과 자이나교와 붓다와 무함마드와 시크의  융합은 외지인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포용을 허락한 것인가. 수백의 눈을 가진 시바와 비슈누가 허락한 공존을 감히  경험하지 못한 답사객은 온갖 신들을 향해  익숙한 웃음을 막무가내로 뿌릴 뿐이다

 

과거의 역사와 영광이 장엄했던 궁전을 점령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온갖 새와 염소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이 아닌 아름다워서 살아남은 무굴의 아멜성에서 허기적거리는 객은, 난해한 인도의 역사를 외울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하더라도 살아서 만나는 인도는 기어코 보고 싶은  매력이 넘쳐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집밖을 나와서야 길이 보인다.  길을  수 있으려면 길위에 나가봐야 안다. 그러므로 오늘  길을 걷는 난 행복하다. 머물지 않는 햇빛과 바람이 엉긴 인도를 안다는 것은 무던히 걷는 것이다. 심장까지 파고들어온 영겁의 역사로 인해 눈이 저리다저무는 길위에서 지친 답사객은, “가야지요. 환상의 인도가 아닌 일상의 인도를 보려면...”을 주문처럼 외우며 일어섰다.

 

신비가 아닌 현실의 인도는, 허덕이는 삶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몸에 박혀서 한동안 머물 것이다. 시크리성의 늙은 소와 등굽은  말의  허연 눈망울이,  붉은 아그라성과 델리 거리의 늙은 개들이, 건조한 바람에 바스락대는  눈동자에서 떠나지 못하고 아른거렸다. 장엄하고 거대한 성벽을 만들었을 무굴제국의 악바르와 아우랑제브 보다  가엾은 짐승들의 숨소리가 깊게 후벼올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땅도 초라하지 않다수천년의 빛과 바람이 부딪쳐온 인도에서나는 여전히 아둔할 뿐이다. 시간을 소생시킬  없는 땅위에서 간디가 사랑한 인도와 왕비 뭄타즈 마할에 대한 샤자한의 사랑을 비교하며 아직 사랑을 꿈꾸며 걷는다.  몸은 지는데 사랑은 여전히 봄날이길 소망하는 미생(未生)은 걷기위해 인도에 왔다. 삶은 흩어지고 세월이 소멸해 하얗게 빛나는 타지마할 앞에서 멍해버린  오룡은, ‘나의 잊히지 못하는 인도에서 깨닫는다. 문밖에 나가면 모든 길이 내 길이었던 인도, 내가 찾은 사랑은 햇빛 비치는 길과 그늘진 길이 공존할 수 있는 흔적에 대한 연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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