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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68

   
최은진의 BOOK소리 68

선악의 경계가 사라진 잔혹동화의 매력

빨간 구두당

◎ 저자 : 구병모 / 출판사 : 창비 / 정가 : 12,000원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동화가 아니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이미 잘 알려진 구병모의 단편소설집. 안데르센 동화와 그림형제 민담 등을 토대로 여덟 편의 동화를 새롭고 낯설게 펼쳐 보인다. 살아오면서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지만, 뒤틀린 변주로 우리를 당황케 한다. 모티브를 동화에서 따왔지만, 기발한 상상력과 악의적인 해석과 도발적인 문체를 덧입힌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를 유혹한다. 나쁜 짓을 엿보는 불편하면서도 짜릿한 심리를 저자는 잘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둡고 위험한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행복해 보이는 삶의 이면을 들춰보면 항상 비루하고 뒤틀린 모습이 존재하니까.

우리가 아는 ‘빨간 구두 아가씨’의 빨간 구두가 여기서는 쾌락과 욕망의 상징이 된다. 색이 존재하지 않는 마을에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난 소녀. 춤을 멈출 수 없는 끔찍한 저주에 걸린 소녀의 구두에서 ‘빨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감각과 감정을 알아가는 사람들. 흑백의 세상에서 도발적인 빨강은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는 계기가 된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사람들은 현혹시킨다는 명목하에 소녀의 발목은 잘려서 구두와 함께 불 속에 던져지고 ‘빨강’을 추종하던 ‘빨간구두당’원들도 발목이 잘린다. 마을은 다시 조용하고 공평하고 고요한 무채색의 세계로 돌아가 평화로워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문제와 현실 비판을 묘하게 담아낸, 독특한 상상력과 감감적인 문체가 아주 매력적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결말이 늘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던 전래동화에 익숙한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옛이야기의 변주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영원히 반복되는 고대의 모티브와 패턴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는 까닭”은 “어느새 거기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지. 그 낡고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이 여덟 편의 동화를 통해 누려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