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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56

   
최은진의 BOOK소리 65

삶의 본질을 묻고 답하다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 저자 : 성철, 법정 / 출판사 : 책읽는섬 / 정가 : 13,000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대중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한 성철과 법정의 만남. 상상만 해도 주의가 엄숙해지는 기분인데, 그들의 대담집이라니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들게 된다.

두 사람의 강한 내공이 서로 대면했으니 어마무시한 법문, 혹은 한순간에 우리를 깨우쳐 주는 속시원한 현답이 나오리란 기대를 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진리란 늘 평범하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것이라는 정도는 우리 모두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물처럼 향기처럼, 은근하고 잔잔하게 우리를 스며들게 한다. 약하다는 게 아니다. 강한 어조로 말하지 않아도 책장을 덮고 나면 가슴에 큰 돌 하나를 얹은 듯 묵직한 기분이 든다.

먼저,‘책을 시작하며’라는 법정의 글로 책을 열고, ‘자기를 바로보라’라는 첫 번째 이야기, ‘처처에 부처이고 처처가 법당이네’라는 두 번째 이야기, 그리고 ‘네가 선 자리가 바로 부처님이 계신 자리’로 세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다. 끝으로 ‘한 덩이 붉은 해가’라는 법정의 글로 책을 마무리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와 인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삶의 본질을 이끌어낸 질문과 대답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책의 뒷날개에 이 책의 제목이 왜 설전인지 알게 하는 글이 실려 있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스님들이 한 문답이라고 해서 특정 종교인들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을 듯하다. 종교인으로서가 아닌, 삶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조금 나눠 갖는다는 생각으로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되겠다. 두 스님의 한국불교에서의 영향력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터이다. 두 분이 동시대를 거쳐 갔다는 것도 우리에겐 행운이지만 그 시대 안에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