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최은진의 BOOK소리 56

   
최은진의 BOOK소리 56
존재의 불안이 덮칠 때, 위로가 되어 줄 책.
사랑의 지혜

◎저자: 알랭 핑켈크로트 / 출판사 : 동문선 / 정가 : 6,000원



제목만 보고서 이 책에서 사랑의 지혜를 찾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한다면 실망할 테지만, 덮는 순간 그보다는 더 고차원적인 성숙한 타인에 대한 태도를 갖게 되는 충만함을 맛보게 해줄 책이다.

‘삶은 곧 얼굴의 실존을 통해 구현된다’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의 철학 에세이다. 크림트의 <키스>가 표지 그림인 것을 보고 가볍게 접근했다가 그 깊이에 화들짝 놀라서 끝까지 읽게 되는 책. 서양철학의 존재론에 반박하면서 타자(他者)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 철학자 레비나스의 철학 에세이쯤으로 보면 되겠다.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이나 그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감정을 “항상 당신으로부터 도망가는 사람으로부터, 막상 당신은 도망가지 못하는 것”이고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는 한, 사랑을 할 때는 사랑받지 못할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로, 사랑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거라는 위로를 준다. 그러나 이 책은 남녀 간의 사랑에 국한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화두로 시작해 존재에 관한 실존적 문제 제기와 ‘타자’와 ‘얼굴’에 관한 사유로 깊이 있게 독자를 이끈다.

“타인은 우리에게 얼굴로 나타난다”는 레비나스 철학에서부터 헨리 제임스, 프루스트, 롤랑 바르트, 샤르트르, 윌리엄 블레이크 등의 많은 철학자와 문학거장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문학작품을 가지고 철학을 풀어나가니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지혜>란 ‘알 수 없고 환원되지 않는 타자의 얼굴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역자)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오로지 내가 그와 ‘함께 있기’를 바라지 않고 ‘그를 위해서’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것.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 해소할 수 없는 존재의 불안이 엄습해 올 때 이 책을 권한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음식처럼,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다보면 본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