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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46

   
최은진의 BOOK소리 46
짝사랑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저자 : 모리미 토미히코 / 출판사 : 작가정신 / 정가 : 12,000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직 리얼리즘 기법으로 풀어나가는 일본의 모리미 토미히코 작가의 경쾌한 소설이다. 천진난만한 여대생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선배의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판타지.

일본의 경주라고 불리는 조용한 도시 교토를 배경으로 소설 속에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일본식 여관과 강가에 위치한 주점, 요리점 그리고 다다스 숲이 등장한다. 개성강한 기인들이 등장해 주인공과 얽히고 설키는 관계가 되는데 대개의 소설이 주는 숨막히는 갈등이라든가 깊은 슬픔 따윈 느낄 수 없다. 몽환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와 전개가 절로 미소짓게 만들 뿐이다. 허구와 판타지로맨스가 뒤섞인 이런 류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황당하게 느껴질지도.

단발머리 여대생 걸음을 뒤쫓아 밤의 도시를 걷다보면 상쾌한 밤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온다. 그러다 어느새 그 뒤를 몰래 뒤따르는, 그녀를 짝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이 마음에 들어온다. 화자와 시간이 쉴새없이 바뀌며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전개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한권의 묵직한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느끼는 가슴 답답함이 없어서 오히려 기분 좋아진다. 어린아이들이 보는 동화는 왠지 유치하고 공감하기엔 너무 우린 늙었다고 느껴질 때, 그렇지만 무겁고 어둡고 아프고 슬픈 세상이 없는, 밝고 유쾌하고 잠시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 줄 책을 찾고 있다면 딱이다.

어딘가 조금 모자란 듯한 모습의 두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매력적인 것은 꾸미지 않은 천연의 순수함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투를 능청스럽고도 태연하게 끌고 나가는 위트있는 문체 때문인 듯도 하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소심해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책 속 주인공 선배같은 짝사랑으로 애태우는 청춘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지금 당장 헌책방 구석진 자리에서 운명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혹은 그)에게 달려가서 위풍당당하게 고백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