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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ogether/참사랑마을(원장 서한철 목사)

오른손 장애 동병상련… 온갖 고난에도 ‘오직 사랑’

   
▲ 원장 서한철-길거리 모금시절 들고 다니던 모금함과 함께
처인구 모현면 왕산리 300-2, 참사랑 마을(원장 서한철 목사)은 2층을 계획하고 건물을 짓기 시작했지만 1층에서 머물렀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자금부족이었다.
참사랑마을은 10인 거주시설로 완공을 눈앞에 두고 현 상태로 머문 건물에서 천장이 새는 이유로 빗소리를 무서워하며 장애인들과 함께 구석구석 빗물을 받고 퍼내며 2층이 마무리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아직 걷기 전인 생후 8개월, 혼자 남겨졌던 안방에서 피워놓은 화롯불을 잡아당겨 안에 담겨 있는 숯불을 쏟았습니다. 마침 달궈진 숯이 오른손에 부어졌고 뜨거워 울부짖는 소리에 뛰어 들어온 식구들은 놀라 당황했을 뿐, 적당한 치료로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민간요법이라고 처치를 감행했던 양잿물, 돼지비계는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 열심히 운동을
오른손에 장애를 갖고 성장 과정에 고난과 외로움을 겪은 서한철 원장은 농어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도시 개척교회에서는 장애인으로서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가령 설교를 듣고 신자로 등록했지만 신방 때 장애가 있는 목사를 보고는 갖가지 핑계를 대고 다음 설교 때는 보이지 않았다. 신자 등록을 취소했던 것.

   
▲ 원장님 고맙습니다
송파 지체장애인협회와 장애인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장애인협회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정작 본인도 장애인이지만 다른 장애인들의 삶에서 장애인들의 고통에 눈을 뜨고는 장애인 돌봄이 시작된 것이다.
불법하우스에 둥지를 틀고 장애 아이들을 돌보며 선교를 통해 정신적 치료도 겸했다. 하지만 불법하우스를 벌한 것인지 철거 한 번과 두 번의 화재를 겪어야했던 서 원장은 지난 2005년, 용인의 현재 자리에서 조립식 건물을 이용해 장애인공동체를 시작했다.

   
▲ 에버랜드나들이
용인에 둥지를 틀기 전인 1999년, 전소로 밥그릇 하나 건지지 못한 화재를 겪어 막막했던 서 원장은 길거리를 다니며 언제까지일지 기약 없는 노방모금활동을 시작했다. 매일 10시간씩 송파, 강동, 성남, 잠실 등 눈보라 속 칼바람을 맞으며 걷고 걸었다.

구멍가게 할머니가 서 원장의 얘기를 듣고는 꼬깃꼬깃한 하루 매상 3000원을 손에 움켜쥐고 손자 반찬값으로 써야하는지를 망설이다가 쾌척하는가 하면 귀찮아하는 제법 큰 마트의 주인을 대신해 여종업원이 2만원을 들고 나와서는 미안하다며 쾌척하는 경우도 겪었다. 컴컴한 거리에서 아가씨들이 자꾸 오라하기에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화끈하게 주머니를 털었던 경우도 경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은 성남의 성매매 골목이었다.

   
▲ 내 작품이 최고다
울어서 코가 맵고 약이 올라서 엉엉 울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또 한 번의 시련인 직장암을 발견했다. 지금은 완쾌됐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장애물을 만났던 것.
조립식 건물에서 장애 아이들을 돌보며 기적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석촌동 어느 지하 교회의 여신도가 자궁암을 치료하고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며 1000만원을 전달했기에 옹벽을 마무리 할 수 있었고, 여의치 않아 지금의 상태에 머물었지만 건축사 협회에서는 우리가 가능한 만큼 선물을 주겠다며 건축물도 지어졌다.

   
▲ 참사랑마을
서한철 원장은 “오른손 장애는 아직 걷지도 못했던 시절이라 빼놓고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물고기 잡으러 초등학교시절 저수지에 가서 욕심 부리다가 깊은 곳에 빠져 실신했던 일과 모금함 들고 어느새 깜깜해진 때 낯선 곳 다리 난간에서 떨어져 실신했던 일, 직장암 등 세 번의 죽을 고비를 겪고도 지금 생활하는 것을 보면 아직 세상에서의 할 일을 못 다한 결과 같다”고 말했다.

   
▲ 옥상이 2층을 기다리며... 내부에서는 양동이로 새는 빗물을 받고 있다
그는 “이제 우리 아이들, 빗물 새는 것이라도 막아서 이곳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한 알의 열매가 맺어지려면 성장의 아픔을 겪어야 하듯이 아직 겪어야할 시련이 남아 있다면 피할 생각 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의 마음 속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을 보며, 운동에 빠져, 이야기 삼매경으로... 거주하는 장애 아이들의 표정은 마냥 해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