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숨*
정끝별
허공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처럼
종일 제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거미처럼
모른 듯 모든 걸 걸고
내민 엄마 손을 잡는 아가손처럼
엄마 손을 놓고 달려가는 아가손처럼
모른 듯 모든 걸 놓고
벼락에 몸을 내준 밤나무가 바람에 삭아내리듯
절로 터진 밤송이가 제 난 뿌리로 낙하하듯
남은 숨을 군불 삼아 피워올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첫 숨을 앗 숨으로!
* 앗숨(Ad Sum) :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정끝별 시인은 독특한 상상력과 언어의 파괴적 운용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러나 「앗숨」은 그의 이와 같은 시세계에서 비껴있다. 시적 화자가 있는 곳은 허공에 쳐 있는 거미줄이다. 거미는 그러므로 화자의 은유다. 종일 거미줄을 치고나서 그 거미줄에 걸려 있는 거미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것을 허공에 다 걸고 있는 화자의 모습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엄마의 손을 잡은 아가손처럼, 엄마의 잡은 손을 놓고 달려나가는 아가손처럼 모든 걸 놓는다. 모든 걸 거는 행위와 모든 걸 놓는 행위 사이의 간극에 인간이 있다. 인간의 온갖 욕망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시의 비의는‘모른 듯’이라는 표현이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처럼이라는 의미로 읽히는‘모른 듯’은‘모든 걸 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라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걸 놓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놓는 것은 남은 숨을 군불로 삼아 삶을 다시 피워올리기 위한 용기 있는 행위임을 깨닫게 한다. 매일 아침 첫 숨을 앗숨으로,‘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삶을 용기 있게, 희망차게 이끌어가겠다는 의지의 시편이다. 시집『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