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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용인신문] 공자가 송나라에 간 것을 연의하면 이렇다. 공자가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에 가서 큰 나무 아래서 제자들과 함께 “예에” 대하여 공부를 강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큰 나무를 보면서 하는 말이 저 나무도 사마환퇴가 죽으면 장례에 쓴다고 베어가겠구먼. 이 말을 듣게 된 공자는 제자들이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무덤을 사치해서 만드는 것보다는 죽으면 빨리 썩는 게 낫다. (예기단궁 상편)

 

이때가 어느 땐가 하니 사마환퇴가 죽으면 쓸려고 석곽을 만드는데 얼마나 거창하게 만드는지 장장 3년을 공사했음에도 끝이 안난 그때이다. 이 말을 소문으로 듣게 된 사마지 위에 있던 환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공자가 강의하는 큰 나무 아래까지 요즘 말로 하면 형사와 검사를 잔뜩 거느리고 가기에 이른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인편으로 듣게 된 제자들은 행여라도 스승 공자께 불미한 일이 생길까 염려하여 “사마환퇴가 죽이러 오니 빨리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며 재촉하는데 논어술이편7-22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는 말한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는데 환퇴 따위가 나를 어쩌겠느냐?” 그럼에도 공자는 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미복(수수한 차림새)으로 갈아입고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로 간다. 이때가 어느 때인고 하니 사기 송미자세가 53편에 따르면 宋나라 경공 25년 기원전 492년 공자 나이 59세 때 일이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해 둘 글자가 있다. “환퇴 따위가 나를 어쩌겠느냐?”이라는 환퇴기여여하桓魋其如予何에서 여여하如予何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如予何는 如何로를 어쩌겠는가의 의미를 지닌 관용구로 何如의 도치로도 쓰는데 ‘어떠랴’ 쯤으로 새김 할 수 있다.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에게 불러줬다는 노래 중 하나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하여가’라 한다. 이 두 글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여何如가주는 글의 무게는 만만찮다. 옛사람들의 글쓰는 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사마환퇴는 송나라 군주 경공에게 있어서 아주 애물단지다. 춘추좌씨전 애공 14년조 전傳에 따르면 송나라 환퇴의 총애가 되려 송나라 경공에게는 해가 되었다고 기록할 정도이다. 사마환퇴는 그야말로 영과 욕을 다 살다간 인물로 백성들에겐 태어나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사마환퇴는 죽기 전까지 백성들에게 제 잘못을 빌지 않고 죽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