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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출격’ 탁경현, 아직도 착륙을 못하다

LOCAL FOCUS_8.15 특집

 

 

 

 

 

용인 법륜사 ‘가미카제 위령비’ 논란, 그후 10년

 

‘신풍작전’ 투입 된 망국의 청년

작전 실패 오키나와 해상서 최후

전후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친일파 시비 고국땅 위령비 수난

 

[용인신문] 현재 도쿄올림픽이 한창이지만 한일 갈등 양상은 여전하다. 광복 76주년이지만, 일본은 식민지 기간에 자행된 강제동원과 식량 수탈, 위안부 성 노예화 등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지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뜻있는 일본인들의 용서와 참회조차 반일 감정 또는 친일 논란으로 배척한다면 문제다. 용인신문은 8.15 특집으로 일본 영화 ‘호타루’의 실제 주인공(영화 속 김선재)으로 알려진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 위령비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과 의미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용인 법륜사에 ‘가미카제’ 위령비

“태평양 전쟁 때 한국의 많은 분이 만리타국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이나마 그리워하던 고향 산하로 돌아와 편안하게 잠드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배우이자 수필가인 일본인 구로다 후쿠미(65세) 씨가 2009년 10월 26일 용인시 소재 법륜사에 세운 ‘귀향기원비(歸鄕祈願碑)’ 뒷면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쓰여 있는 글이다. 하지만 현재 귀향기원비는 삼족오 조형물과 분리되어 땅바닥에 눕혀져 있다. 당연히 뒷면과 옆면의 글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2년 당시 법륜사에 있던 위령비는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광복회 등 시민단체들이 법륜사와 총본산인 조계사에 위령비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항의 방문 집회는 물론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위령비를 땅에 묻으라고 압박했다.

 

그들은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희생된 탁경현에 대해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나라의 승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의 위령비를 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탁 씨는 일본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졸업한 뒤 비행학교도 단기과정으로 마친 사람이다. 타의에 의해서 (참전)했다고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탁 씨는 1945년 5월 11일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미군함대로 돌진하는 가미카제 임무를 맡았으나 작전에 실패하고 오키나와 해상에서 스물넷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일본의 군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됐다. 그는 또 2001년 개봉한 일본 영화 ‘호타루’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법륜사는 이 같은 항의와 압력이 계속되자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굴착기를 불러 사실상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기원비와 삼족오 석물이 분리됐고, 땅속에 묻기 위해 쓰러뜨린 후 나무판자로 덮었다. 하지만 여론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서 눕혀 있던 비문을 청소하고, 삼족오 조형물을 비문 옆에 세워 현재 모습이 됐다.

 

법륜사는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귀향기원비 앞에서 가미카제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때 구로다 후쿠미 씨를 비롯한 일본인 30~40명도 매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륜사 연화지 인근에 눕혀 있는 귀향기원비 옆엔 ‘귀향기원비의 유래’를 쓴 안내판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

 

#논란의 기원비 어떻게 용인까지 왔나?

구로다 후쿠미 씨는 일본 연예계의 대표적인 친한파다. 그런 그녀가 1991년 일본 남쪽 섬을 여행하던 중 이상한 꿈을 꾼다. “나는 비행 병이었는데 여기서 죽었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것이 후회는 없지만 단 한 가지, 조선인이면서 일본인 이름으로 죽은 것이 아쉽습니다”라고. 그녀는 직접 답사 취재를 통해 가고시마현 지란 육군 특공기지에 11명의 조선인 특공대 병사가 존재했음을 확인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 한국명 탁경현(卓庚鉉)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날 이후, 그녀는 이 청년의 위령비를 대한민국에 세워 넋이나마 귀향시켜 위로하겠다고 다짐한다. 배우 활동 중에도 틈틈이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한 일본 내 자료를 찾고,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탁경현의 친인척을 수소문하는 등 자비를 들여 위령비 제작 건립에 매진한다. 그 결과 몇몇 한국인의 도움으로 탁경현의 고향인 경남 사천 땅에 위령비를 건립, 제막식 행사까지 사천시장으로부터 약속받았다. 하지만 ‘귀향기원비’가 설치되고, 제막식을 하기 직전 무산된다. 사천 체육공원에서 공식적으로 약속된 제막식마저 ‘사천진보연대’와 ‘광복회 경남지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귀향기원비’를 받아 준 곳은 공교롭게도 용인 법륜사 현암 주지 스님이다. 하지만 불과 3년 후 광복회를 비롯한 반일 시민단체의 협박과 위력에 또 한 번 시련을 겪는다. 현재 귀향기원비는 앞면만을 드러낸 채 반쯤 묻혀 있어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는다. 탁경현을 비롯한 조선인 청년들은 조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더 낮은 곳에서 영혼마저도 숨 죽인 채 더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어있다.

 

#법륜사 “원상 복원 계획…영혼의 귀향기원”

영화 ‘호타루’에도 나왔듯이 탁경환이 부른 노래는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망국 조선의 노래 ‘아리랑’이었다. 탁경현은 자기 죽음이 일본 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 민족과 고향의 가족, 약혼녀를 위한 것이라고도 말한다. 조선 말과 일본어로 잇따라 부른 ‘아리랑’은 당시 식당 ‘호타루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일명 자살특공대가 운영된 1945년 4~7월까지 4개월 동안 가미카제 희생자는 38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인 희생자는 탁경현을 포함한 18명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반인륜적인 만행으로 희생된 조선의 청년들을 친일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법륜사 측은 가미카제로 희생된 조선의 청년들도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현암 주지 스님은 “여건이 되는대로 위령비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할 계획”이라며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희생양이 된 불쌍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을 반일 감정과 친일 문제로 몰아가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