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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07

최은진의 BOOK소리 107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차가운 피부는 누구일까?

차가운 피부

저자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 출판사 : 들녘 / 정가 : 9,000

 

 

인간이 가진 폭력성의 원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스페인 작가 알베르트 산에스 피뇰의 첫 소설. 어느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무섭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외계 생물체를 닮은 괴물과의 사투 뒤에 숨겨진, 인간 폭력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극한 상황에 맞닥뜨린 공포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을 생생하게 파헤친다.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전개로 등골을 서늘하게 해주다 못해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가벼운 공포오락물은 아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와의 사랑의 한계에 대해 묻고 있다.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에 지쳐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로 한 아일랜드 청년은 외딴 섬의 기상관에 지원한다. 그러나 무인도에서의 첫날부터 그를 공포로 밀어 넣는 괴생명체의 등장은 파격적이다 못해 호러물을 연상케한다.

 

존재에 대한 의문도, 이유도 없이 차가운 피부를 가진 그들과의 길고 지루한 전쟁을 벌이는 주인공. 그러나 그들은 괴물도, 적도 아니었다. 실은 그가 그들의 땅에 침입했으므로. 처음엔 살기 위한 사투였으나, 점차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끼는 주인공. 여기서 인간의 근원적인 공격성과 폭력성을 엿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인간인 우리가 누군가에겐 그들보다 더한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과 결코 멀리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진정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라는 인상적인 첫문장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절대적인 고독과 소통의 부재가 외로움을 극대화하고, 그 외로움이 기이한 사랑으로 변해가는 모습 또한,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괴물과 같은 종족인 아리네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언어소통의 부재가 두사람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따뜻한 피부를 가진 인간이 사실은 차가운 피부의 그들보다 더 폭력적이며 사랑이 결여된 차가운 존재가 아닐까? 우리 인간은 어쩌면 따뜻한 온기를 갈구하는 차가운 피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묻고 있다. 차가운 피부가 필요로 하는, 따뜻한 온기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