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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이란 나이는. . .


울울창창한 6월에 다시 생각해보는


이순(耳順)이란 나이는. . .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른 아침부터 새소리가 부산하다. 까치며 까마귀, 뻐꾸기들이 동트기 전부터 울어대기 시작한다. 어둠을 깨우고 동살을 틔우는 그런 새소리를 신호로 마을을 둘러싼 산길을 한 바퀴 돌며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젊어선 밤일도 참 많이 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원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밤은 귀신들의 시간인가. 끙끙 대며, 혹은 술술 잘도 풀리며 쓴 원고를 아침에 보면 내가 아닌 무슨 귀신이 와서 쓰고 간 글 같아 그냥 접어버린 원고들이 한 두 편이 아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밤은 귀신의 시간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새삼 떠올라 점점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작업을 하게 됐다.

 

아니 누구든 그렇듯 나이 들면서 새벽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다보면 나이 들어감에 씁쓸해지기 십상이었다.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생각,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의 씁쓸함 등 망상을 털어버리기 위해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간다는 6, 맥하(麥夏)의 산길을 걷다보면 봄꽃들은 다 지고 여름꽃들이 막 피기 시작한다. 벚꽃, 앵두꽃 진 자리에는 버찌와 앵두가 익어가고 있다. 뽕나무에도 언제 꽃이 피었든가 6월에는 오디도 검붉게 익어가며 입맛을 다시게 한다. 달마다, 계절마다 묘미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6월에는 여름꽃들도 참 많이 핀다. 도심의 화사한 장미꽃이나 능소화뿐 아니라 외진 들길, 산길에선 망초꽃과 감자꽃 등도 피어나고 있다. 지들도 꽃이라며, 눈길 좀 주라며. 나는 관상용이 아니라 자연으로 피는 그런 꽃들에 눈길이 더 간다. 자연스러우니까, 지 혼자 피어나고 있으니까.

 

그렇게 제 홀로 자연스레 피는 망초꽃이며 감자꽃 등 여름꽃들을 들여다보고 쓰다듬다 씁쓸한 마음이 울컥, 다시 치고 올라온다. 자연은 제 스스로 다들 꽃인데 나는 아직도 저런 꽃이 되기 멀었다고. 그런 씁쓸한 마음이 이런 시를 자연스레 쓰게 했다.

 

가만히 보니

개망초꽃도 꽃이데요

바람 부는대로 꽃이데요

 

가만히 보니

감자꽃도 꽃이데요

하얀빛 자줏빛

바람에 날리는 꽃이데요

 

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여직 꽃이 아니데요

건들건들

바람만 맞고 있데요

 

이 산 저 산 뻐꾹,

뻐꾸기소리 공명共鳴

올 여름도 익어 가는데.

 

공자가 말한 나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50, 자연의 소리를 자연스레 듣는다는 이순(耳順)60살도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뭔가에 미혹돼 흔들리고 있음에 허망하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도 삶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미완이어서 되레 살맛이 난다.

 

그렇다. 공자 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지금 이순이면 다시 일어서야하는 이립(而立), 30세의 나이에 살고 있다. , 30세 때 세웠던 지향점과는 분명 달라야한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세워야한다. 사회, 제도에 편입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 천명에 편입되기 위해 뜻을 세워야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부나 명예 등 사회적 가치를 좆고 있는 내 자신이 씁쓸하고 허망하다.

 

사이버대학이나 각종 기관이나 단체에서 운용하는 강좌에 나가보면 이순 지난 나이의 수강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틈만 나면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 말씀에 환호하며 이 강좌 저 강좌 찾아다니는 노년의 학생들에서 우리 사회는 이제 100세 시대로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똑같은 강좌더라도 20, 30대의 젊음과 이순 지난 노년의 배움은 물론 다를 것이다. 지식보다는 한 생애 체험이 총동원된 지혜로운 배움으로 달라야 할 것이다. 허망, 씁쓸함에 빠져들지 않는, 배움과 인생과 자연이 하나 된 실감으로서의 삶이어야함을 이 산 저 산 공명시키는 뻐꾹새 소리가 들려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