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진의 BOOK소리 103
야구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야구 냄새가 난다
◎ 저자 : 하국상 / 출판사 : 고슴북스 / 정가 : 12,000원
책날개에 ‘야구와 음악으로 어린 시절을 보냄. 야구선수가 되려 했으나 실패, KBO직원에 도전했으나 실패’라는 독특한 실패 이력만 가득 채워놓은 작가. 남들이 보기에 그는 그저 ‘야구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는’ 주변인일지 몰라도 이 소설에서 그가 보여준 세계관의 관점으로 보자면 ‘사람’으로서의 작가 하국상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멋진 삶을 펼쳐나가고 있을거란 확신을 들게 한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읽고나면 야구 냄새가 어쩐지 사람 냄새로 읽힌다. 야구란 늘 변화하는 무한한 가능성이기에, 단순한 기록이나 타율을 뛰어넘어 그 사람만의 ‘무엇’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삶의 본질에 다가가게 해준다.
아홉 개의 야구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엮은 책이니, 그에 관한 어려운 용어와 해박한 지식이 잔뜩 나올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야구를 포함해 스포츠는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같은 스포츠 무식쟁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 걸로 봐선 작가는 고수다.
야구의 근본에 관해,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본질에 관해 말하고 있다. 숫자가 전부가 아닌 삶을 추구하려는 의도는 「관찰자 이창섭」에서 확연하게 보여진다. 「백년전쟁」에서는 야구에서 선수의 개인적 능력과 환경 중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갈등이 벌어지는데 여기에 작가는 냉동인간을 등장시키는 파격적인 SF적 요소까지 가미했다. 각 단편마다 예상치 못한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뛰어난 상상력과 전개가 가독력을 높여준다.
문학을 공부한 적 없는 자칭 ‘야구덕후’가 쓴 야구소설. ‘야구’라는 특정분야를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소위 ‘덕후’를 자칭하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 소설이 놀라운 이유는 그런 점에서다. 야구에 관한 지식의 친절한 설명이 없는데도 즐겁게 읽힌다. 아니, 그래서 더 고급스럽고 매력적인 서사가 탄생했다. 의도적으로 야구에 관한 정보를 배제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현란한 문장력이나 세련된 소설기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 이유는 지적허세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고도 솔직하게, 그러나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야구’라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재해석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