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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100

최은진의 BOOK소리 100

진실이 아니라 비밀이 결혼의 성공적인 열쇠?

운명과 분노

저자 : 로런 그로프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6,500

 

 

삶이란, 혹은 결혼이란 건 원하는대로, 꿈꾸던 대로,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이 소설 속 그들의 삶은 아름답게 그려진다. 600페이지나 되는 이 이야기가 단숨에 읽히는 것은 저자인 로런 그로프만이 가진 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의 힘이다.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 “산문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왜 붙여졌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은 남편 로토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전반부 운명’, 아내인 마틸드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후반부 분노’, 두 부분으로 나뉘어 두 사람의 삶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보여준다.

 

첫 눈에 반해 스무 두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한 두 사람은 이십년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운명을 따라 삶을 살아왔던 로토는 아내의 비밀 혹은 거짓말에 절망한다. 로토의 어머니는 말처럼.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말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마틸드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 그렇다면 말하지 않은 진실은 거짓일까, 아닐까. 분명한 한 가지는 진실이 아니라 비밀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결혼생활에 대한 남녀의 상대적인 입장, 감정의 차이를 묘사한 것이라 생각하며 읽는다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충격적인 반전에 헤어 나올 수 없을 듯. 아내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운명을 죽음으로써 끝내버린 로토와 파국으로 치닫게 된 마틸드의 결혼생활.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다 허상이었을까? 아니다. 분명 두 사람은 진실로 사랑했다. 여기서 우린 진실보다 거짓이, 침묵이 사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 희극이냐, 비극이냐?’ 하는 문제 역시 우리가 어떤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