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최은진의 BOOK소리 98

최은진의 BOOK소리 98

동화와 현실의 접점에서 건져올린 사랑

동화처럼

저자 : 김경욱 / 출판사 : 민음사 / 정가 : 11,000

 

 

 

동화를 읽고 자라온 우리들. 세상이 동화처럼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세상살이에 치이면서 저절로 터득한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엔 동화같은 기적을 기대하게 된다.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란 평을 듣고 있는 김경욱 작가가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동화를 아름답게 완성시켰다. 동화 속 상상의 세계를 살았던 아이가 성장하여 동화 세계 언저리를 배회하다 현실에 자리를 잡아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다. 열렬한 사랑 뒤 결혼했으나 곧이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사소한 다툼과 지독한 상처들. 그 모든 걸 겪고 난 후의 애틋한 성장을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동화로 이 책은 시작된다. 눈물이 그치지 않아 고통스러운 여자와, 침묵 속에서 고독하게 살다 죽을 저주를 받은 남자가 만나 서로의 고통을 치유해주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꿈같은 결말의 동화. 그러나 현실 속에는 공주가 되지 못한 여자인 장미들과 개구리 왕자는커녕 개구리도 못 되는 두꺼비 같은 남자, ‘명제들로 가득하다. ‘침묵의 왕인 명제와 눈물의 여왕인 장미는 남들처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지만 알다시피 그게 삶의 끝이 될 수 없다. 그들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동화 속 판타지들은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잔인한 현실. 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수많은 동화가 결혼식과 함께 서둘러 끝난 이유를.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나서도 성장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 몸은 어른이지만, 내 안의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른아이들의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운명처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학교에서 혹은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혹은 결혼생활을) 배운 적 없기에 모든 게 뒤죽박죽일 수밖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원한다. ‘최후의 결전을 앞둔 병사처럼 농담이 끼어들 여지도 없이 사랑을 하는 우리들. 심장이 터질까 봐 쇳대를 두른 하인리히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서.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다만 살아가거나 죽어가거나 둘 중 하나이듯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하지 않고 있거나둘 중 하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