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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96

최은진의 BOOK소리 96

꿈꾸는 다음세상이 첫눈처럼 오길

공터에서

저자 : 김 훈 / 출판사 : 해냄 / 정가 : 14,000

 

 

작가 김훈의 적막한 세상을 응시하는 깊은 눈이 공터에 가서 닿으니 그 곳은 처절하고 황량하고 쓸쓸해졌다. 오직 작가 김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가슴 먹먹한 가족사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삶이란 다 이런 것이구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렇게 주인공 마차세를 중심으로 보여지는 가족사는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영웅적이지 못한 소설 속 인물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없이 쫓겨 다닌다. 마차세도, 그의 아버지 마동수도, 형 마장세도 늘 닿을 수 없는 곳에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그가 말하는 그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은 지금 우리 가까이에도 늘 있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대적인 배경을 중심으로 마동수와 그의 아들들, 마차세, 마장세가 꾸려나가는 굴곡진 삶을 담은 이야기. 급변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내는 사람들이 겪는 처절한 삶은 지금과도 이어져 있다. 그들에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곳이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을 처절하게 찾고 있는 그들. 마동수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황량하고 쓸쓸하다. 너무 고집스런 문장에 질리는 사람도 있다지만, 한편 펼치면 눈을 뗄 수 없는 작가의 단단한 문장, 손톱자국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판다. 그 문장은 비정상적이고 안정이 없는 현실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실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과거는 격동의 시대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한 격동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은 한 해의 출발점에서,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 보니 살아진 그들의 이야기가 작은 위안으로 다가온다. 비루한 삶을 살고 있는 어느 거리의 골목길 안쪽, 그들이 다 내보여주지 못한 모습과 속마음이 쓸쓸히 떠다니는 듯하다. 원래 삶은 이들의 모습처럼 비루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꿈꿨을 다음세상(차세)이 새벽 첫눈으로 오길 믿을 수밖에.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듯 태어난 마차세의 딸 누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