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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의 BOOK소리 91

최은진의 BOOK소리 91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빈자의 미학

저자 : 승효상 / 출판사 : 느린걸음 / 정가 : 12,000

 

 

 

탐욕의 밑바닥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참담한 요즘,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빈자의 미학이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여기서는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이 문구는, 차고 넘치는데도 부족함을 느끼는, 저 높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고하는 경종같달까?

 

20년 전 건축서적 판매상들이 큰 책 팔 때 끼워팔던 이 책이 절판된 후 베스트셀러가 되고 경매에서 수십만 원이 넘는 고가에 팔리는 희귀본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28페이지의 적은 분량이지만, 그의 철학이 반영된 11점의 건축물과 그가 높은 안목으로 엄선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에 달린 독특하고 탁월한 주석은 이 책을 건축 전문 책이 아닌, 삶의 철학과 방식에 관한 책이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건축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짓는 것이다. 그의 생을 지탱하는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들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의 미학이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돈이 있지만, 스스로를 절제하고 검박할 줄 아는 사람들, 집을 지을 때도 남보다 작은 집을 짓고 남하고 나눌 줄 아는 집을 짓는 것’. 다른 사람들 눈 의식해 크고 화려해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철학이겠지만, 행복의 크기는 빈자의 미학을 평생 실천해 온 그의 것이 훨씬 더 크고 빛나 보이는 건 내 눈에만 그럴까?

 

지금의 이 추잡한 시국에서도 몸값 높으신 분들은 앞을 다투어 자기 목소리를 내느라 바쁘다. 그들의 시궁창 같은 입을 틀어막고 싶은 기분을 이 책으로 달래보자. 건축물에도 침묵과 비움이 필요하듯 삶에도 침묵은 숨구멍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하단다. 외치고 과시하고 위압적인 건물들 속에서 인간도 건물처럼 소리치고 목적에 맞게 자신을 바꾸어 권력을 탐한다.

 

20년 전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진지한 응답으로 이 책을 펴 낸 승효상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그리고 다시 이 혼란의 시대에 스스로 선언하고 지키고자 했던 빈자의 미학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있다.